50·70의 분열과 수평폭력
50·70의 분열과 수평폭력
  • 승인 2017.04.03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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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미 대구여성의전화 대표
“군대여, 일어나라, 계엄령을 선포하라.” “빨갱이는 죽여도 돼.” “미친개들은 사살해야한다. 국회에 위험한 250마리의 개들이 있다.” 박근혜 탄핵반대 집회에서 난무한 섬뜩한 막말의 일부이다. 애국을 표방하며 태극기를 들었지만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헌법의 기본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했다. 엄중한 시국이지만 축제와 같은 분위기에서 끝까지 시민이 중심이 되어 질서정연하게 “박근혜 탄핵과 구속”을 주장했던 촛불집회와는 매우 대조를 이루는 광경이었다.

최근 탄핵정국 동안 이어졌던 태극기집회의 동력과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 대결 양상은 세대나 보혁 갈등이 아니라 ‘5070세대의 분열’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보도에 따르면 4월 2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산하 한국민주주의연구소 최종숙 연구원은 보고서 ‘촛불, 태극기, 그리고 5070세대 공감’에서 이같이 밝혔다.

보도에 따르면 보고서는 태극기집회 참가자들이 과거 전쟁에서 경험했던 공포감, 국가의 산업화와 근대화에 이바지했다는 향수에 의해 광장으로 나왔다고 해석했다. 이들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둘러싼 사실관계에 주목하기보다 신념과 감정에 기대 매주 집회에 참석했다는 것이다.

영어사전에서 분열을 의미하는 “splitting”은 파편, 쪼개지는 등의 의미를 담고 있다. 자신의 자아가 파편화 되고, 분열되어 통합적 현실인식이 어려울 때 “분열(splitting)”이라는 용어를 쓴다.

이른바 태극기집회의 열렬 참가자들은 근대화의 신화를 만든 박정희와 그의 딸인 박근혜를 조국의 근대화를 이룬 세대인 자신과 동일시하며 박근혜에 대한 비판을 자신들 세대에 대한 비판으로 받아들인다.

그리하여 그들에게서는 근대화의 영웅이라고 생각하는 박정희와 노동자와 농민을 희생하며 재벌위주의 정경유착 구조를 만들었던 독재자 박정희를 구분 할 수 없고, 그의 딸 박근혜의 실정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인식의 구조나 정서적 힘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한 분열의 기저에는 식민지와 동족상잔의 전쟁, 긴 독재 속에서 자신을 부정해야만 생존할 수 있었던 역사적 환경에서 생존과 죽음에 대한 불안이 무의식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보고서로 돌아가 보자. 보고서를 발표한 연구원은 “어쩌면 이들이 처한 상황이 비상식적으로 비참하기 때문에 과거로 도피하며 인정투쟁을 벌이는 것”이라며 “장·노년층이 현재 겪고 있는 소외감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계속해서 과거의 향수에 젖어 비상식의 동원에도 쉽사리 응하게 된다”고 보았다.

이 대목에서는 프란츠 파농의 ‘수평폭력’을 떠올리게 된다. 프랑스의 피식민지 알제리의 지식인 프란츠 파농은 자신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부당한 식민지 지배권력의 수직폭력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로인한 분노를 같은 알제리인에게 폭력을 행사함으로써 표출하는 것을 ‘수평폭력’으로 개념화 했다. 수평폭력은 수직 폭력을 가하는 폭력의 근원을 은폐시키고 수직 폭력이 발생하는 구조적 문제(알제리의 경우 식민지배)를 은폐시키게 된다. 그래서 수평폭력은 결국 폭력의 피해자들 사이에서 맴돌며 폭력이 그저 피해자들의 개인적 자질 문제에 불과할 뿐이라는 생각을 만들어내게 되는 셈이다.

우리는 5070세대의 불안을 이용하여 부당한 권력을 유지하려는 세력의 실체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민주주의를 파괴한 책임을 엄중하게 물어야 한다.

한편 보고서의 주장처럼 이번 촛불집회에는 전통적으로 여당과 박 전 대통령을 지지했던 5070세대가 다수 참여했다는 사실이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그들은 박근혜 전대통령의 국정농단으로 상식이 무너지는 현실을 목도하며 분열의 고착상태에서 상황을 객관적으로 통합하여 인식할 수 있는 성숙을 경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5070세대의 사회적 소외를 최소화 할 수 있는 사회안전망과 복지체계의 구축이 지속 가능한 민주주의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은 불의한 한 세대를 마감하며, 5070세대의 분열을 넘어 통합의 성숙을 이루어가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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