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의 다른 이름, 영어 조기교육
아동학대의 다른 이름, 영어 조기교육
  • 승인 2017.04.06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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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정 ‘우리아이 1등 공부법’저자
한국의 아이들은 세계 어느 나라 아이들보다 영어를 오랜 시간 공부한다. 내 아이가 영어를 자유롭게 말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부모들은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영어 태교를 시작해서 한국어도 제대로 말하기 전인 어린 나이에 영어 유치원에 입학시킨다. 이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하면 더 많은 시간을 영어학원에서 머물러야 한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우리나라 학생들의 영어구사력이 세계적 수준이라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영어교육에 지출되는 비용이 이렇게 막대한데 왜 한국의 아이들은 영어를 잘하지 못할까?

육아정책 연구소에서는 외국어교육이 적절한 시기가 언제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중국어로 실험을 했다. 영어와 달리 중국어는 생소한 언어라 실험에 적합했다. 5세 유아들, 초등 3년생들, 대학생들을 각 20명의 그룹으로 묶어 일주일에 5일씩 총 20회의 교육을 실시했다. 세 그룹은 모두 즐겁게 중국어를 배웠지만 가장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은 5세 유아들이었다. ‘역시 아이들은 언어를 빨리 습득하나보다.’라는 기대를 갖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4주 후 말하기, 듣기, 읽기로 나누어 테스트를 해보니 세 영역 모두에서 유아의 점수가 가장 낮았다. 특히 자연스러운 중국어 문장과 부자연스러운 중국어 문장을 보여준 후 실시한 뇌파검사와 안구의 움직임을 분석하는 실험에서 대학생들은 중국인과 비슷한 뇌파와 안구의 움직임을 보여 중국어 문장을 제대로 이해했다는 것을 보여준 반면 유아들은 그렇지 못했다. 이 실험을 통해 유아정책연구소 우남희 소장은 ‘유아기는 외국어 교육의 적령기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일부 사람들은 유아들은 뇌 발달이 가장 왕성하게 이루어지는 시기이므로 이 시기에 반드시 외국어를 가르쳐야한다고 말한다. 물론 이 시기에 뇌가 가장 왕성하게 발달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이 시기는 언어발달, 신체발달, 사회성 발달이 함께 이루어지는 시기다. 언어에 올인하는 시기가 아니란 말이다. 그런데 이 시기에 모국어와 함께 영어까지 배우느라 아이가 자신이 가진 에너지를 다 써버리면 아이는 다른 발달을 이루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또한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말해야할 나이의 아이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고 외국인 강사로부터 알아듣지도 못하는 언어를 배우게 되면 사고가 움츠려들고 행동이 위축된다. 자유롭게 생각하며 사회성을 배워야할 아이에게 막대한 양의 영어단어를 외우게 하고 영어로 말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명백한 아동학대다. 그래서 영어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의 일부가 위축의 성향을 보이거나 또래관계를 어려워하기도 하고 퇴행증상을 보이는 것이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이 영어를 말한다는 것은 어차피 학습의 결과물이다. 그런데 학습은 ‘꼭 배우고 싶다.’라는 간절함이 있을 때만 효과가 있다. 한국 TV에 자주 등장하는 외국인들이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것은 그들이 어릴 때부터 한국어를 배웠기 때문이 아니라 한국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한국어 능력이 가장 절실히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영어를 잘 하려면 ‘영어를 꼭 배워야겠다.’는 간절함을 아이 스스로 가지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 그런데 유아들은 자신이 왜 영어를 배워야하는지 그 이유를 전혀 모르기 때문에 영어를 제대로 학습할 수 없다. 유아에게 영어교육이 필요 없는 또 다른 이유다.

부모들은 외국인과 자연스럽게 얘기하기 위해 영어를 가르치지만 최근에 사람의 말을 바로 통번역해주는 스마트한 통번역기가 속속 출시되고 있다. 최근에 나온 ‘스마트톡’이나 ‘매직톡’ 등은 모두 사람의 말을 빠른 속도로 통번역해주는 제품들인데 이런 제품들은 매년 성능이 빠른 속도로 향상되고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각광받는 직업이었던 ‘통번역가’라는 직업은 향후 10년 이내에 없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에 영어는 더 이상 경쟁력이 아니다. 그러니 어린 아이들에게 영어단어를 외우게 하고 문장을 독해하라고 하지 말자. 더 이상 영어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를 학대하지 말자. 대신 아이의 창의력이 자랄 수 있도록 뛰어놀게 하자. 그것이 아이를 21세기형 인간형으로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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