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습관을 잡아야 한다’는 거짓말
‘공부 습관을 잡아야 한다’는 거짓말
  • 승인 2017.04.27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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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정 ‘우리아이 1등 공부법’저자
대학을 졸업하고 입시학원 강사로 오랜 시간을 보냈다. 지금 ‘자기주도학습 강사’로 살고 있는 것도 이때 만난 수많은 아이들이 알려준 노하우에 빚지고 있다.

만났던 아이들 중 고3 아이들은 여기저기 아프다고 호소하는 경우가 많았다. 스트레스성 위염이나 역류성 식도염은 가벼운 증상이었고 탈모가 생긴 아이들, 각종 염증성 질환을 앓거나 심지어 스트레스로 인한 혈변을 보는 아이도 있었다.

공부라는 적과 싸우다보니 생긴 병이었다. 입시란 건강한 아이들을 환자로 만들만큼 거대하고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입시를 통과하겠다는 일념으로 이런 저런 고통들을 견뎌냈고, 다행히도 이 증상들은 대부분 대학 합격과 함께 저절로 사라졌다.

그런데 공부를 잘하는 아이든 못하는 아이든, 습관적으로 공부하는 아이는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다. 아이들은 공부와 싸웠다. 싸우다가 좌절하고, 싸우다가 넘어지고, 싸우다가 울었으며, 그렇게 치열하게 싸우고 결국 그 전쟁에서 승리하는 아이가 합격이라는 거대한 성취를 손에 쥐었다.

그래서 나는 ‘공부 습관을 잡아야 한다.’는 말을 들으면 코웃음이 난다. 습관의 사전적 의미는 ‘일상에서 반복되는 후천적 행동 양식. 어떤 행위를 오랫동안 되풀이하는 과정에서 저절로 익혀진 행동 방식’이다.

오랫동안 하다보면 그 일이 저절로 되는 경우 우리는 ‘습관이 든다.’라고 말한다. 그렇다. 습관은 저절로 되는 일에나 쓰는 말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무 생각 없이 침대를 정리하는 일, 점심 식사 후에 별 생각 없이 커피를 마시는 일, 자기 전에 큰 고민 없이 이를 닦는 일은 습관이 된다. 하지만 습관은 치열하게 해야 하는 일에는 들지 않는다. 특히 공부처럼 절대적으로 ‘자기주도성’이 필요한 일에는 더더욱 들지 않는다. 입시공부라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험난한 길인데 그 길을 ‘습관적’으로 간단 말인가? 그러니 ‘공부’와 ‘습관’은 서로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낱말이다.

하지만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엄마 중에서 ‘공부 습관’이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 ‘그래도 공부습관이 중요하지.’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오늘부터 5년 간 매일 시댁에 가 보시길 권한다. 5년 뒤에 시댁에 가는 일이 ‘습관’이 되는지 말이다.

시댁에 간다는 것은 ‘시댁에 가겠다.’는 며느리의 의지가 뒤따라야 이루어지는 일이다. 그러니 습관적으로 시댁에 갈 수는 없는 일이다. 특히 시댁을 미워하고 싫어해서는 시댁에 가서 시부모님께 절대 잘할 수 없다. 공부 역시 마찬가지다. 공부를 습관적으로 할 수도 없지만 공부를 미워하고 싫어하면서 공부를 잘 할 수는 더더욱 없다.

공부는 습관이 아니라 의지로 하는 것이다. ‘친구들은 축구하던데 나도 나가서 축구할까? 아니지, 그래도 공부해야지.’라고, 공부를 할 때마다 자신의 의지를 끌어올려야만 할 수 있는 것이 공부다.

그렇다면 ‘공부 습관’이란 말은 어떻게 생긴 것일까? 이 말은 학습지 회사에서 나왔다. 아이가 매일 일정량의 학습지를 풀어야 학습지 회사가 운영될 테니 ‘매일 일정시간 앉아서 공부해야만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을 만들어 낸 것이다. 학원도 여기에 동참했다. 매일 아이들이 와야 학원이 운영되니 이 말은 사교육 업체의 이윤추구에 없어서는 안 될 주문이었다. 그들은 마치 공부 습관이 공부하는데 필수적인 조건인 것처럼 광고하면서 전국의 엄마들을 속이고 있다.

공부는 100% 마음이 시켜서 하는 일이다. 힘들고 어렵고 지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의지는 아이의 마음에서 온다.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은 마음, 좋은 성적을 얻고 싶은 마음, 좋은 대학을 가고 싶은 마음 등이 모여 단단한 의지가 될 때 비로소 어려운 공부와 싸워봐야겠다고 각오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공부습관을 잡겠다고 아이를 책상에 붙잡아 앉혀놓는 어리석은 일을 당장 그만두자. 잡히지도 않을 습관을 잡겠다고 아이를 다그칠수록 아이는 공부를 싫어하게 되고, 이래서는 공부와 점점 멀어질 뿐이다.

사교육 업체가 조장한 불안한 마음을 당장 내려놓고 내 아이를 믿어주자.

자신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될 때 아이 스스로 공부할 것이라고 부모가 믿어준다면, 아이가 공부의지를 끌어올릴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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