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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달구벌아침

엄마 없는 셈 치셔

기사전송 2017-05-17, 17: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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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숙 자유기고가
새벽 세 시, 쿵 하고 건넛방에서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지진이라도 난 것일까. 머릿속이 하얘졌다. 근래 들어 자주 경주지역에서 지진이 났다는 긴급재난 문자가 오던 때라 덜컥 겁이 났지만 소리가 난 진원지는 안방과 마주한 딸의 방이었다.

“잠이 와 죽겠는데 이게 머꼬. 산이 몽이 너희들 잠 안자고 와 자꾸 후다닥 뛰어다니노, 느그들 때문에 못 살겠다 제발 조용히 좀 걸어 다녀라 응”

앙칼진 딸아이의 목소리가 문지방을 넘어 안방까지 점령했다. 야행성 고양이의 특성상 낮엔 자고 밤이면 활동을 시작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만 인간인 나는 가끔 그 기본적인 것마저도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런데 산이와 몽이가 뛰어 다니다가 뭔가 자빠뜨린 모양이다.

“엄마, 일나봐라 혼자 엄두가 안 난다 와서 좀 도와 줘”

침대 옆에 세워 둔 전신거울이 깨져 방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었다. 거울 주위엔 유리 파편이 뒹굴고 그 위로 고양이들이 신나게 넘나들고 있었다.

딸아이는 어쩔 줄 몰라 하며 고양이부터 방에 가두라는 내 말도 듣지 못 하고 갈팡질팡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날 때마다 곁에서 도와 줄 수도 없는데 혼자서 해결하는 것도 중요 하겠다는 생각에 이른 나는 한 마디 툭 던졌다.

“엄마 없는 셈 치셔”

툭, 매정하게 직구를 날려놓고는 방문을 닫고 다시 잠을 청했다. 투덜거리던 딸아이의 볼멘소리가 청소기 돌아가는 소리에 섞여 메아리처럼 들린다.

“도와 줄 걸 그랬나. 유리조각에 손이라도 베이면 어쩌지”

영 마음이 쓰였다. ‘없는 셈 치라’는 내 말 속에도 너는 나에게 꼭 필요한 존재라는 말의 비밀이 들어있다는 것을 딸아이는 풀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직은. 비록 쌀쌀맞은 잔소리라 할지라도 사랑이 담겼다는 사실을 딸아이는 알까. 나 또한 엄마의 딸이었던 시절, 엄마의 잔소리 때문에 받은 상처도 있었고 등판이 얼얼하도록 맞거나 호되게 꾸지람을 먹고 원망하기도 했다.

딸이란 비오는 날 처마 끝에 쉬어가는 나그네 같은 존재인 듯하다.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이자 인생의 도반 같기도 하지만, 때론 해법 없는 갈등 때문에 고통 받아야 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가족이라서, 같은 여자라는 교집합 속에서 상처를 주기도 하고 치유해 주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사소한 것들을 공유하기도 하고 필요이상으로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기도 한다.

친정엄마는 가끔 내가 소식이 뜸하다 싶으면, “어릴 적엔 잘 몰라서 철이 없어 그렇다치고 너도 자식 놓고 사는 년인데 왜 내 맘을 몰라 주노”라며 못내 서운함을 못 감추시며 서럽다고 하신다. 생각해보면 모녀관계란 가장 멀고도 가까운 사이다. 가장 사랑하면서도 가장 아프게 하는 관계가 바로 엄마와 딸이다. 엄마는 그 누구의 딸이며, 그 딸은 다시 그 누구의 엄마가 되는.

‘말뚝에 묶인 소의 자유는 새끼줄의 길이 만큼이다. 그 이상의 자유를 누리려다 잘못하면 제 말뚝을 감고 돌면서 자꾸자꾸 줄의 길이만 줄이게 된다. 결국, 옴짝달싹도 할 수 없게 되는 수가 있다’고 한다. 딸과 엄마의 거리가 이런 것은 아닐까. 따지고보면 나는 말뚝 같은 존재고 딸은 묶인 소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 일과가 끝난 늦은 저녁, 분리한 쓰레기를 들고 계단을 내려서다 퇴근하는 딸아이와 마주쳤다. 이때다 싶어 미처 들고 나오지 못한 쓰레기봉투를 들고 따라오라고 했더니 잠시 머뭇거리던 딸이 계단을 올라가며 내 등 뒤에 대고 한 마디 툭 던진다.

“엄마도 딸내미 없는 셈 치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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