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와 베짱이의 반전
개미와 베짱이의 반전
  • 승인 2017.02.01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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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환 부국장
고대 그리스에 살았던 노예이자 이야기꾼인 아이소포스가 지은 이솝우화(Aesop‘s Fables·Aesopica) 가운데 개미와 베짱이 편은 미래를 위해 계획하고 일하는 가치에 대한 양면적인 도덕적 교훈을 준다. 이 우화는 겨울철을 대비해 열심히 일하는 개미와 여름철 노래를 부르며 한가롭게 시간을 보낸 베짱이에 대한 이야기다. 겨울이 오자, 베짱이는 굶주림에 시달리다 개미에게 음식을 구걸하고 개미는 베짱이의 게으름을 비난한다. 이 이야기는 그동안 삶을 추구하는 방식에 대한 가장 올바른 교훈으로 회자되며 유소년기 교육의 지침으로 활용됐다.

요즘 개미와 베짱이를 평가하는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 그동안은 개미처럼 일만 잘하는 사람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게 일반적인 상식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세대에서는 일만 하는 개미는 어리석다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일만 하고 쉴 줄 모르는 개미와 놀기만 하고 일할 줄 모르는 베짱이 둘 다 문제라는 인식이다. 일부에선 베짱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니 개미보다 훨씬 낫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런 현상을 빗대 새로 각색한 일본판 개미는 과로하여 죽고, 옛 소련판 개미는 동무와 나눠서 굶어 죽고, 미국판 개미는 냉정하게 등 돌린 결과 각자의 재능을 계발하여 양쪽 모두 잘사는 것으로 꾸며졌다. 이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경제체제 방식을 빗댄 풍자지만 시대를 따라 진리를 평가하는 방식도 달라지고 있는 현상을 보여준다.

최근에는 개미와 베짱이의 반전동화가 화제다. 반전동화는 개미에게 음식을 구걸하던 베짱이가 노래를 갖고 떠난다는 줄거리다. 음악이 없는 세상이 얼마나 지루한 것인지를 개미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새로운 논리로 접근했다. 베짱이는 호모 파버(Homo Faber), 일하는 존재라는 명제보다 호모 루덴스(Homo Ludens),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관점으로 해석해서 새로운 콘텐츠를 생산하는 창조적인 존재로 재탄생하고 있는 것이다.잘 노는 사람이 일도 더 잘한다는 인식이 점차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일과 삶에 대한 가치와 기준에 대한 다양성을 중요시하는 세태를 반영하고 있다.

신명나게 살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같아도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다. 2015년 경제협력개발기구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의 근로 시간은 멕시코와 코스타리카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다. 연간 노동시간 2천 시간을 넘은 나라 4곳 중 하나로, OECD 평균인 1천766시간을 훌쩍 뛰어 넘는다. 지난해에는 근로 시간이 오히려 더 늘었다. 고용노동부 조사를 보면, 지난해 11월 기준 월평균 근로시간은 1년 전보다 5.6시간이나 증가했다. 생존과 성공을 위해 한눈팔 새 없이 앞만 보고 달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잘 노는 것도 경쟁력이다. 같은 일을 해도 즐겁게 하는 사람의 생산성이 더 높고 훨씬 효율적이라는 것은 통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욜로(YOLO) 또는 욜로족이라는 새로운 트랜드가 형성되고 있다. 욜로는 ‘한번뿐인 인생’이란 영문인 ‘You Only Live Once’의 이니셜을 따 만들어진 것으로 현재를 즐기며 사는 태도를 일컫는 신조어다. ‘오늘을 즐기라’고 인용되는 라틴어의 ‘카르페디엠(Carpe Diem)’과 유사한 표현으로 한 번뿐인 인생을 충분히 즐기며 살라는 의미다. 장래를 위해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절약하고 저축하면서 살아온 기존의 인생방식이 아닌 현재를 중시하는 20·30세대의 가치관이 욜로 문화로 나타나고 있다. 오늘의 즐거움보다 미래를 위해 투자했던 기성세대와는 다른 삶의 방식으로 지금 가진 것으로 현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겠다는 생각이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주 4일제 근무를 도입하는 기업들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새 정부에서도 OECD 최고 수준의 노동시간을 제한해 삶의 질을 개선해야 한다는 노동계, 시민단체 등의 요구를 수용해 그동안 주당 68시간이었던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단축을 추진하고 있다. 충분한 휴식이 일의 능률을 올린다는 생각이 확산된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먹고 살기 힘든 세상에 한가한 소리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재 충전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여유 정도는 누릴 수 있는 세상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 번뿐인 인생, 평생 하늘 한 번 못 쳐다보고 일만 한 개미가 열심히 모은 돈을 자식들에게 나누고, 일하느라 다친 몸을 치료하는데 쓰면서 아픈 노년을 보낸다면 한번 사는 인생이 너무 슬프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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