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못했던’ 피해자의 시간 - 은폐된 군대 내 성폭력
‘말하지 못했던’ 피해자의 시간 - 은폐된 군대 내 성폭력
  • 승인 2017.05.29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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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미 대구여성의전화
군대 내의 성폭력 피해와 관련해 또 한 명의 여성군인이 억울하게 스스로의 삶을 등졌다. 가해자로 지목된 상관은 성폭행 혐의로 긴급 체포되었다. 숨진 대위는 민간인 친구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고 털어놓은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 사건에 대해 해군 관계자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간 성폭력 예방 교육을 강화하고, ‘회식 지킴이’ 제도도 도입하는 등 성폭력 예방에 노력했지만 그런 일은 어디에나 있다. 술 먹고 부대 밖에서 그러는 걸 어떻게 막나”라는 입장을 밝혔다.

회식 자리에서의 성폭력이 얼마나 심각한 지경이었으면 ‘회식 지킴이’라는 제도가 다 도입이 되었을까. 부대 밖에서 그러는 걸 어떻게 막나 라는 군 관계자의 안이한 인식은 군대 내 성폭력이 왜 그토록 근절되기 어려운지 보여 주는 단면이다. 그동안 지속적으로 자행되고, 은폐되어 왔던 여성군인에 대한 수많은 성폭력 사건 중의 하나가 피해 장교의 자살로 다시 드러났을 뿐이다.

지난해 국회법사위원회 소속 더불어 민주당 금태섭의원이 군사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여군을 상대로 저지른 성범죄의 건수가 사건화 된 것만 지난 5년간 무려 111건이나 되는 것을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군대 내 여군 성폭력 피해자와 군 성범죄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가해자의 계급은 장교가 50명(45%)으로 계급과 서열에 의한 전형적인 ‘권력형 성폭력’의 특징을 보여 준다.

가해자의 죄명은 대부분 강간이나 강제추행, 감금치상, 주거침입 강간과 같은 매우 심각한 수준의 범죄였다. 그러나 이 중에서 실형은 고작 7명, 최고형벌은 징역 5년에 불과했다.

한국여성의전화를 비롯한 여성단체에서는 본 사건과 관련하여 군대내 성폭력의 심각성에 대해 경종을 울림과 동시에 제대로 된 진상조사와 가해자처벌을 요구하며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은 군대 내 성폭력의 원인이 군대 내의 강력한 위계적, 권위적 조직문화와 젠더화 된 위계질서 때문으로 보았다. 그러나 군대는 성폭력의 원인을 성군기의 해이로 보고, 성폭력 통념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행동수칙들을 나열하는 식으로 성폭력 대책을 마련해왔다며 군 당국의 성폭력에 대한 무지와 안일함을 질타했다.

또한 성폭력을 ‘성군기’ 관점으로 바라볼 때, 성폭력 문제를 드러낼 경우 모든 관련자들은 성군기를 해친 사람이 되고, 오히려 피해자가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이 된다. 이는 조직 안에서 성폭력의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드러내었을 때 마치 조직에 해를 가하는 ‘트러블 메이커’ 취급을 당하는 부당한 현실이 군대 내에서 더 심각하게 재현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군 조직은 상명하복을 생명처럼 여기며 집단생활을 해야 하는 폐쇄된 집단이다. 이와 같은 조직의 특수성은 피해자가 부담을 감수하며 피해를 알리고 그에 대응하는 것을 더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된다.

한편, 군 당국은 육군, 해군, 공군에서 제도적 방안으로 성고충상담관, 양성평등상담관, 병영생활상담관 제도를 도입해왔지만 성범죄 처리 과정에 대한 여성군인의 신뢰도는 매우 낮다. 2014년 군 인권센터 조사에 따르면, 여성군인은 성범죄 처리과정에 대해 군검찰 등에 대해서 85% 이상, 징계위원회나 헌병대에 대해서는 90% 이상이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성폭력 신고 후 피해자에 대한 불이익 때문에 90%가 성폭력 피해 시 대응하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성폭력피해자가 피해를 ‘말 할 수 없는’ 이와 같은 환경에서 수많은 ‘A대위’들은 침묵과 좌절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할 수 없었던 A대위의 죽음을 가슴 아프게 애도하며, 이 죽음이 어떻게 일어나게 된 것인지,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듣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인권의 눈으로 특별진상조사가 진행돼야 한다. 또한 국가인권위원회를 중심으로 국회, 국방부, 민간인권단체 등으로 구성된 특별조사위원회가 해군 A대위 사건에 대한 진상을 밝히고, 가해자에 대해서는 엄중한 처벌이 따라야 한다. 그리고 군대 내 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기존대책 및 재판이 종결된 군대 내 성폭력 사건들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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