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 항쟁을 기억하다
6.10 항쟁을 기억하다
  • 승인 2017.06.12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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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미 대구여성의전화 대표
그 날 대구 하늘은 청명하고 맑았다. 계산오거리였다. “독재타도 호헌철폐!”, “독재타도 호헌철폐!” 등의 함성이 아직도 귀를 울린다. 아마도 반월당에서부터 였을 것이다. 계산오거리 방향으로 운집한 학생 시위대를 향해 헬멧과 방패로 완전무장한 전경들이 최루탄을 발사하며 전진하고 있었다.

시위대는 순식간에 흩어졌고, 그 무리 속에는 필자도 있었다. 그 때, 저 멀리 몰려오는 전경들이 보이는데 미니스커트와 하이힐을 신은 한 여학생이 넘어진 광경이 내 눈에 들어 왔다. 나는 그 여학생을 두고 그냥 달아날 수 없었다. 여학생에게 다가가 팔을 부축해 일으켰다.

아마 그때쯤이었는지 모르겠다. 어느 사인가 흰 마스크를 쓰고 베이지색 점퍼를 입은 건장한 두 남성에게 나의 양팔이 잡혀 있었다. 사복경찰인 모양이었다. 내가 팔을 부축해 일으켰던 그 여학생은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에 없다. 사복경찰에게 붙잡혔던 그 때의 기억만이 생생하다. 나는 두려움에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그날 저녁, 지금은 나의 남편이 되어 30년 가까이 아웅다웅 함께 살아가는 남자친구와 데이트 약속이 있었고, 무엇보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에게 내가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질 까봐 두려웠다.

잡혀간 여학생들이 전경차와 구치소에서 당하는 성폭력과 조사과정에서의 고문에 대한 소문이 말할 수 없이 흉흉했던 때이기도 했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 그들의 손아귀를 벗어나야 했다. 젖 먹던 힘까지 짜내는 심정으로 악에 받친 비명을 내지르며 저항하자 어디선가 비슷한 차림의 사복경찰 두 명이 더 나타나 이제는 나의 양다리를 잡아들었다. 나는 네 명의 장정들에 의해 완전히 몸이 들려져 끌려가고 있었다.

그러나, 공포는 힘이 세다! 나는 거의 제정신이 아닌 사람처럼 앙칼진 목소리로 고래고래 악다구니를 썼다. 그때였다. 지금도 그의 이미지가 선명하게 그려진다. 밤색 콤비를 입고 까만 안경에 까만 서류가방을 든 중년의 신사였다. 팔다리를 들고 여학생을 끌고 가는 네 명의 사복경찰들에게 그는 준엄한 목소리로 꾸짖었다. “여학생에게 도대체 무슨 짓이요!” 순간 내 팔과 다리를 든 그들의 손목에서 약하게 힘이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나는 다시 한번 필사의 몸부림으로 그들의 손아귀에서 탈출했다.

공포는 쏜 살보다 더 빠르다! 나는 탈출에 성공한 것이다. 온 몸이 바람 부는 사시나무처럼 덜덜 떨렸다. 동산맨션 슈퍼에 몸을 숨긴 나는 떨리는 몸과 마음을 겨우 추릴 수 있었다. 믿거나 말거나 그 날 오후 사복형사들로부터 도망치려고 내지른 나의 비명이 얼마나 처절했던지 여학생을 어떻게 하는 줄 알고 달아나던 시위대들이 다시 돌아와 전경차를 넘어뜨렸다는 소문이 들렸다.

그 날로부터 30년의 세월이 흘렀다. 나는 386세대에서 586이 되었다. 노무현의 참여정부를 뒤이어 들어선 이명박 정권의 실정을 보는 것은 내내 불편한 일이었다. 4대강 사업과 자원외교, 방산비리에 천안함까지. 내가 낸 세금으로 유지되는 이명박정권의 거짓과 비리를 지켜보는 것은 매우 괴로운 일이었다. 정권의 나팔수가 된 언론을 지켜보는 일은 더 괴로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우리 국민은 다시 박근혜를 지지했다. 18대 대선의 선거부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더 플랜’을 보면 부정선거로 당선된 대통령이었지만 말이다.

2016년이 기울어 갈 무렵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이 터졌다. 나는 직감했다. 지금 우리의 실수를 되돌리지 않으면 대한민국이 어떤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른다는 것을. 20대 후반이 된 딸아이와 주말마다 촛불집회에 참석했다. 그리고 촛불시민의 힘으로 박근혜정권은 종말을 고했다.

1987년 6.10 민주항쟁을 몸으로 겪었던 나는 국민이, 혹은 시민이 승리한다는 것을 참여를 통한 체험으로 배웠다. 그 경험은 나의 삶에서, 그리고 내 개인적 삶을 넘어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너무나 귀중한 경험이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것은 좌절과 오욕의 역사 속에서 시민의 힘으로 무언가를 바꾸어 낼 수 있다는 믿음을 주었던 최초의 경험이었다. 민주주의가 끝내 승리한다는 것을 보여준 체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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