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역할 빼고는 다 자신 있는 엄마들
엄마 역할 빼고는 다 자신 있는 엄마들
  • 승인 2017.08.10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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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정 ‘우리아이 1등 공부법’저자
가족은 종교와 같다. 맹목적인 믿음과 사랑으로 지탱된다는 면이 그렇다. ‘이 종교가 내게 어떤 이득을 줄 것인가?’를 따져서는 신에 대한 믿음을 유지할 수 없는 것처럼 ‘아이를 키우는 일이 내게 어떤 도움이 될 것인가?’를 가늠해서는 도저히 아이를 낳을 수 없다. ‘출산과 양육’이란 가족 구성원에게 너무 많은 희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류는 수만 년의 세월동안 이 희생을 감내해왔다. 부모들의 끊임없는 희생을 통해 새로운 세대가 태어나고, 태어난 이들은 부모세대의 맹목적인 믿음과 사랑을 먹고 자라났다.

그리고 그들이 부모 세대가 되었을 때 그들 역시 의심의 여지없이 이 일을 해냈다. 하지만 지금 이 오랜 이야기는 끝나가고 있다.

상담을 하면서 만나게 되는 30~40대의 수많은 엄마들이 이전 세대와 다른 점은 출산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 없다는데 있다. 그들은 엄마가 되기를 갈망하지 않았다. 최근 방송에서 이효리가 “예쁜 아기를 보면 낳고 싶다가도 주변 사람들이 육아에 힘들어하는 것을 보면 역시 애 없이 살아야겠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한 것처럼, 지금 엄마들은 아이를 낳기 전부터 ‘양육’을 커다란 두려움으로 인식하고 살아왔다. 이전의 모든 세대 엄마들이 출산과 양육을 기쁨으로 여겼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지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그들은 자녀를 통해 희생될 많은 것들이 두려웠다.

육체적으로 힘이 들고, 경제적으로 위축되는 것도 두렵지만 가장 큰 두려움은 자신이 이제까지 고생하며 쌓아 온 캐리어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공포였다. 지금 엄마들은 이전 엄마 세대와 달리 대부분 고학력자들이다.

남자들과 평등하게 경쟁했고 많은 부분 남자들보다 앞섰다. 어려운 학창생활과 고된 직장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경쟁하며 살아남았다. 그들은 자라면서 ‘좋은 엄마가 되라.’고 교육받은 사람들이 아니라 ‘너도 남자와 다름없이 당당하고 유능한 사회 구성원이 되라.’고 독촉 받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결혼과 함께 임신을 하고 출산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눈앞에 캄캄해졌다. 직업적 성취를 이루고 높은 연봉을 받는 것을 성공의 기준으로 보는 사회에서 엄마가 되는 순간은 어쩌면 영원히 성공할 수 없다는 확인을 받는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불안과 함께 시작된 육아는 여지없이 그들을 좌절시켰다. 학교에서는 공부를 잘했고 직장에서는 유능한 직원이었던 그들은 매일매일 끊임없는 희생만 반복되는 육아 앞에서 처참히 무너졌다. 공부도 일도,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잘 해나갈 수 있었는데 아이를 키우는 일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얼마 전에 만난 엄마는 내게 이런 말을 하면서 울었다.

“저는 공부도 잘했고 직장생활도 잘했어요. 뭐든지 잘하는 사람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고요. 그런데 엄마는 못하겠어요. 할수록 점점 더 내 자신이 형편없다는 것만 깨달아요. 엄마 빼고는 다 자신 있는데······.”

이런 울음을 터트리는 엄마들이 점점 늘어갈수록 이들을 바라보는 미혼세대들은 더욱 더 아이 낳기를 기피할 것이다. 이미 심각한 수준을 넘어섰다는 대한민국의 출산율이 낮아지고만 있는 이유다.

그들이 흘리는 눈물은 그들의 책임이 아니다. 능력 있는 여성은 나쁜 엄마가 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은 엄마들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의 책임이다. 여성에게만 ‘자식을 위한 사랑과 희생’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사회가 그 역할을 나누어야 한다. “여자는 공부할 필요 없다. 학교 졸업하면 시집가서 현모양처가 되라.”고 말하던 시대가 끝난 것처럼, 여자들에게만 모성애를 강요하던 시대와는 이제 이별해야 한다. 사회의 한 축을 담당해야 할 능력 있는 여성들에게 ‘출산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강요하는 것은 폭력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학교에서 남녀차별 없이 동등하게 경쟁하는 것처럼 육아 역시 남녀차별 없이 동등하게 할 수 있도록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고, 일하는 엄마가 일과 양육 사이에서 둘 중 하나만 선택하도록 강요받지 않도록 사회 시스템을 만드는 일을 정부는 조속히 추진해야 한다.

지금처럼 학교에 가지 않는 방학이면 아이를 하루 종일 학원으로 돌려야 하고 점심과 저녁을 편의점에서 해결해야하는 아이 때문에 눈물을 삼켜야하는 엄마들이 존재하는 한 대한민국의 출산율은 절대 높아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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