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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달구벌아침

외할머니의 첫 기일

기사전송 2017-08-28, 21: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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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미 대구여성의전화 대표
20세기 초엽에 태어나 21세기를 훌쩍 넘기고, 10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신 나의 사랑하는 외할머니 하막달레나씨의 첫 기일을 맞았다. 마흔도 되기 전에 외할아버지를 떠나보내고 60년이 넘는 세월, 20대에 청상이 된 홀시어머니를 모시고 대한민국의 온갖 풍파가 지나갈 동안 가족을 이끌어 오셨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외할머니는 “집 안에 남자가 필요하다”며 19살이 된 필자의 어머니에게 결혼을 재촉하셨다고 한다. 당시에 19살이 결혼할 나이로 이른 편이 아니었지만 결혼이 두려우셨던지 결혼을 거부했던 어머니는 외할머니에게 태어나고 처음으로 등짝을 맞으셨다고 했다. 철저한 가부장중심사회에서 어린 외삼촌을 제외하면 집 안의 유일한 남성이던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과부 둘만 남게 된 집안이 외할머니는 불안하셨던 모양이었다. 어머니와의 결혼을 원했던 아버지는 그렇게 어머니와 결혼을 하고 외할머니에게 평생 든든한 맏사위 역할을 하셨다.

음식솜씨가 뛰어난 외숙모가 푸짐하고 정갈하게 차려낸 제사상을 앞에 두고 거실을 꽉 채운 자손들이 정성들여 절을 했다. 첫 기일이라 대부분 한번 씩 외할머니께 잔을 올렸다. 외할머니의 살아생전 성정처럼 무언가 경건하지만 경직되지 않은 따뜻함이 자손들 사이를 감도는 느낌이었다.

제사가 끝나고 모두가 모여 앉아 음복을 하며 외할머니에 대한 추억을 나누었다. 마흔을 넘기고도 아직 20대 아가씨처럼 앳된 외모의 외사촌 동생이 한 추억담을 들려주었다. 찢어진 청바지가 막 유행할 무렵, 무릎이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외사촌 동생을 본 외할머니가 가만히 자신을 불러 만 원짜리 몇 장을 손에 쥐어 주며 측은한 목소리로 “청바지 하나 사 입어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외할머니의 눈에는 외손녀가 형편이 어려워 찢어진 청바지를 그대로 입고 다니는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그 동생은 이어서 외할머니가 어느 날 “내가 조금만 더 늦게 태어났으면 운전을 한 번 해 보고 싶다”하시면서 요즘 여성들을 부러워 하셨다고 한다. 운전을 해 보고 싶으셨다는 외할머니의 모습을 전해 들으며 불행한 시대에 여성으로 태어나 한 생이 얼마나 억울하고 답답하셨을까 안타까움이 일었다.

큰딸아이가 유학을 가겠다며 외할머니에게 인사를 드리러 갔을 때 외할머니는 막 새로운 세상을 시작하려는 증손녀에게 “여자라고 못할 거 없다. 나가서 니 하고 싶은 거 마음대로 해라”라고 뜻하지 않은 응원을 보내 주었다. 여성이어서 받았을 무수한 제약과 여성이어서 접을 수밖에 없었던 무수한 꿈들을 여성이어서 다시 반복하기보다 여성이라도 무엇이든 할 수 있음에 대한 용기를 주었던 외할머니. 누구나 운전을 하는 시대에 너무 많은 나이가 들어 버려 운전을 해보고픈 소망조차 실현할 수 없었던 외할머니가 증손녀에게는 자신이 살아 온 시대가 강요한 여성의 삶을 요구하기보다 인간으로서 더 넓은 꿈을 쟁취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으셨던 것 같다.

외할머니의 그 진취성을 느낄 수 있었던 또 하나의 기억이 있다.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에 대한 자부심이 컸다. 지금도 고향 면사무소에 2대 면장으로 사진이 걸린 외할아버지는 영화배우처럼 잘 생긴 외모를 지녔었다. 품성도 자상해서 어딜 가나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그런 외할아버지에게 외할머니는 “내가 아들을 낳은 후에 마음대로 해라라고 허락을 했다”고 말씀하셨다. 너무나 호탕하게 외할아버지의 외도를 “내가 허락을 했다”고 말씀하시는 외할머니에게서 아들을 낳아야지만 인정을 받을 수 있었던 가부장적 운명의 수레바퀴 속에서 아들을 통해 자신의 지위를 지키고자 하셨지만, 막을 수 없었던 남편의 외도를 자신의 선택으로 전복시킨 한 여성의 당당함을 보는 것 같았다.

한편, 시집 온 이후로 40여년 시할머니와 시어머니, 층층시하를 견디며 맏며느리 역할을 감당하신 외숙모는 연신 “와 이래 덥노”를 연발하셨다. 제사상에 놓인 갖은 음식들을 정성을 다해 장만하고도 정작 뒤에서 묵묵히 챙겨주시기만 하는 외숙모. 젊었을 때는 보이지 않던 외숙모의 삶이 외할머니의 삶과 겹쳐진다.

어쩌면 101세가 되도록 한 자손도 앞세우지 않고 복할머니로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행운은 외숙모의 보이지 않는 헌신과 희생으로 가능했으리라. 모두가 그리움으로 기억하는 외할머니가 외숙모에게는 어떤 존재였을까. 외할머니 첫 기일 제사상 앞의 그 따뜻함과 훈훈함은 바로 외할머니의 맏며느리인 외숙모로 인해 가능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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