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의 현장, 중정 6국자리
고문의 현장, 중정 6국자리
  • 승인 2017.09.04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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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열 전북대 초빙교수
고문이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몽둥이로 때리는 것을 연상한다. 틀림없는 얘기다. 고문은 국가권력이 저지르는 불법적인 폭력행위인 것은 맞는 말이지만 사회에는 조직폭력배와 같은 폭력집단도 존재한다. 그들 역시 폭력배사회에서의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서 상대단체의 소속원을 붙들어다가 모진 고문을 다하는 수가 있다.

이로 인하여 목숨을 잃는 사람이 생겨나는 것은 불법폭력이 국가기관이나 조폭이나 매한가지임을 보여주는 일이다.

우리나라는 광복 이후 미군정 시기에 일제 강점기의 경찰을 그대로 수용하여 당장 시급한 경찰행정을 꾸렸다. 그 통에 가장 나쁜 고문의 수단과 방법까지도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자유당 시절 악명 높은 경찰의 수사행태는 전형적인 일제경찰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었다.

내가 4.19혁명 당시 전북대에서 4.4데모를 주도했다가 전주경찰서 사찰과에 붙잡혀갔다. 형사가 나를 한 구석에 있는 큰 나무상자로 데리고 가서 뚜껑을 열었다. 거기에는 놀랍게도 온갖 고문도구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다행히 고문을 하진 않았지만 공포감에 잠시 떨어야 했던 그 순간이 지금 57년이 지났어도 눈에 선하다. 4.19혁명 1년이 지난 후 5.16군사쿠데타로 민주정권이 무너졌다. 박정희는 김종필을 시켜 중앙정보부를 만들어 군사독재의 전위로 삼았다. 경찰과 특무대로만 버티던 정부 정보력을 한 단계 높인 후 그것으로 정권정보력을 강화한 것이다. 잡다한 세력으로 구성된 정권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할 수 있는 정보력은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국가기관인 중정은 박정희와 김종필의 사유물이 되어 영구집권의 도구로 전락했다. 국가예산으로 박정희를 비판하는 사람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막걸리반공법으로 처벌하고 납북되었던 어부가 귀환하면 북한에 회유된 간첩이라고 잡아넣는 무지몽매한 권력이 남용되었다.

독재를 옹호하던 바로 그 고문의 현장이 남산자락에 자리 잡았던 중정 6국이다. 긴급조치9호로 긴 옥살이를 마치고 나오자마자 신군부가 5.18쿠데타를 일으켰다. 김대중일파는 5월17일 밤 대부분 체포되었으며 나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중정6국 지하실에서 60일 동안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악독한 고문을 당했다.

수사관들이 조작한 시나리오대로 진술하지 않으면 전기고문도 서슴지 않았다. 광주에서는 학생들이 주동적으로 궐기하였으나 열흘 항쟁에서 200여 명의 아까운 민주투사들이 총탄에 맞아 숨지는 비극으로 끝났다. 우리는 군사재판을 받고 사형에서 징역20년에 이르기까지 중형이 확정되었다. 대법원은 형식상의 최종심이었을 뿐 이미 중정6국에서 작성한 각본대로였다. 바로 그 6국 자리를 서울시에서 탈바꿈한다고 한다.

사회참여예술을 전공한 배다리(47)작가가 고문을 받았던 고은 최민화 양보승 등 6명을 인터뷰하고 그 이야기를 토대로 이 공간의 재구성 방식을 정했다고 한다. 다만 이 공간이 어둡고 괴로웠던 과거에만 사로잡힌다면 전시실을 찾는 시민들을 답답하게 만들 것 같아 여기서 벗어나는 건전한 사고를 배다리작가의 능력에 기대고 싶다. 그는 전시실을 빨간 우체통 콘셉트로 제시하여 “옛일을 기억하되 현재 시민들에게는 쉼터가 되고 역사적 치유공간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란다. 빨간색은 과거 인권침해역사 중 많은 것이 해결되지 않았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주변의 푸른 숲은 빨간 전시실을 시각적으로 잘 전달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 전시실은 중정6국의 아픔을 잊지 않겠다는 의미로 ‘기억6’으로 명명된다. 내년 8월 공원화사업이 완공되면 수 십 년 만에 맨 처음 한번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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