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믿지 못하는 나라
아이들이 믿지 못하는 나라
  • 승인 2017.09.07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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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의 개편안이 발표되자 중3 아이를 가진 엄마들은 혼란에 빠졌다. 나 역시 중3 엄마라서 뉴스를 보며 걱정이 되긴 했지만 아직 확정된 것은 없으니 좀 기다려보는 마음이었다. 입시가 어려워진다 한들 우리아이에게만 불리한 것도 아닐 테고 정부가 정확한 정책 발표를 할 때까지 기다려보는 것이 순서였다.

하지만 정책은 확정되지 않고 ‘고교학점제’니 ‘내신 성취평가제’니 하는 어려운 단어들만 가득한 뉴스는 입시가 안개 속 같다는 것만 말해주고 있었다. 그런 뉴스를 계속 접하다보니 나조차도 불안과 혼란이 커져갔다. 더군다나 또래 엄마들을 만날 때마다 서로 모르는 정보를 공유하니 입시는 점점 미궁으로 빠지는 기분이었다.

도대체 뭐가 바뀌는 건지, 수능에는 들어가지도 않는다는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은 어떤 내용으로 구성되는 건지, 그걸 가르칠 교사는 마땅히 있는지, 사회와 과학마저 학원에 보내야하는 건지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무렵 정부의 ‘수능개편을 1년 유예’ 뉴스가 발표됐다. 중3 엄마들은 “정말 다행이다!”를 외쳤지만 그 시름은 고스란히 중2 엄마들에게 전해졌다. 일부 중3 엄마들은 “그럼 재수는 불가능 한 거냐?”는 어려운 질문과 만났다.

엄마들이 혼란에 빠져있는 동안 교육부는 어떤 믿음도 보여주지 못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갑자기 개편안을 발표하더니 ‘절대평가를 부분적으로 도입하는 1안’과 ‘전면적으로 도입하는 2안’을 던져놓고 “이 중 하나를 확정하겠다”고만 통보한 뒤 3주가 지나도록 공청회와 토론회만 계속할 뿐 이렇다 할 결론을 못 내고 있다.

개편안 발표 전에 충분한 공청회와 토론회를 거쳐 가장 현명한 결론을 확정하고, 이를 이해시키는 방식으로 학부모를 설득해야 한다는 당연한 순서를 정부와 교육부 사람들 중 누구도 몰랐다는 건지, 왜 그 공청회와 토론회에 수능을 준비시키는 교사와 수능시험을 직접 보는 학생들은 참여하지 않고 정부 부처 사람들끼리만 의견을 주고받는지, 의아하고 답답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엄마들이 혼란에 빠져 허둥대고 있으면 사교육은 그 불안을 틈타 여기저기로 퍼져나갈 텐데 사교육을 줄이고 공교육을 정상화 시키려고 시작한 정부의 입시개편안이 오히려 사교육을 부추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걱정스러웠다.

딸아이 역시 불안하고 혼란스러워 했다. 하지만 나는 “혹시 입시가 어려워지더라도 너 혼자 불리한 것은 아니니 걱정할 필요 없다”고 다독이며 “그냥 지금 하는 대로 열심히 공부하면 된다”는 교과서 같은 말만 해주었다.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우리 집에 자주 놀러오는 딸아이 친구가 갑자기 내게 이런 걸 물었다. “그런데 도대체 입시를 왜 자꾸 바꾸는 거예요? 입시가 바뀌어서 뭐가 좋아지는 거예요?”

그렇다. 우리 모두는 수능이 달라지는 것은 알고 있지만 도대체 왜 수능을 개편하는 건지는 모른다. 안 그래도 복잡하고 어려워진 입시를 왜 자꾸 바꾸는 것일까? 입시가 바뀌어서 좋아지는 것은 무엇일까? 물론 교육부와 정부는 ‘학생들의 부담을 덜고 입시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는 안일한 대답을 할 것이다. 하지만 정작 수능을 치르는 학생들과 학부모 누구도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지 못하는 이 상황에서 그들은 ‘도대체 왜 입시는 달라져야 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대답을 가지고는 있기는 한 것일까? 그들 중 누구라도 이 이유를 속 시원하게 말해줄 수는 있을까?

지금 중2~ 중3 아이들은 10여 년만 지나면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해서 한국사회를 떠받칠 아이들이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순간까지 끊임없이 계속 되는 입시 혼란과, 혼란을 가중시키는 정부와, 그 정부를 쉴 새 없이 욕하는 부모들을 보면서 자라날 것이다. 나라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아이들이 미래 사회의 좋은 일꾼이 될 수는 없다. 자신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사회인이 되라고 요구하는 것은 염치없다. 정부는 이 아이들이 ‘나라가 우리들을 위해 입시를 더 좋은 제도로 만들고 있다.’고 믿을 수 있도록 조속히 입시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은 마음과 귀를 열고 입시 당사자인 아이들의 의견을 들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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