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를 기억한다
광주를 기억한다
  • 승인 2017.09.18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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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미
대구여성의전화 대표




광주의 첫 하늘은 맑고 푸르렀다. 생애 처음 방문하는 광주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위험한 고속도로로 악명이 높았던 88고속도로를 확장한 덕분에 서부정류장을 출발하여 지리산 휴게소에서 10분을 쉬고도 2시간 30분 안에 닿을 수 있었다. 한국여성의전화 25개 지부 전국대표자회의가 열리는 광주여성의전화는 광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매우 가까운 곳에 있었다.

1층 교육실 문 옆에는 ‘성평등 촛불, 당신 덕분입니다’라는 동판에 광주여성의전화 터전 마련에 기여한 수백 명의 기부자 명단이 자랑스럽게 새겨져 있다. 오랜 시간 수많은 후원자들의 성원과 활동가들의 헌신으로 마련한 삼층 건물은 뿌듯함과 부러움을 동시에 느끼게 했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이어지는 긴 회의를 마치고, 5.18 당사자의 증언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증언자는 광주여성의전화 부설 쉼터에서 근무하고 있는 활동가였다. 그 분은 몇 번의 고사 끝에 그 자리에 섰다며 겸손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5.18 광주민주항쟁 당시를 증언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노라고 했다.

5.18 당시 그녀는 20세 초반이었다. 직장을 다니다 5.18을 맞게 되었고, 시민군이 끝까지 항쟁을 했던 전남도청에서 계엄군이 무력으로 진압하기 직전까지 전남도청에 남아있었다. 무고한 학생과 시민들이 계엄군에 의해 무차별 살상을 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거리로 나서 총을 들어야만 했던 광주시민들처럼 그녀도 무엇이라도 해야 했기에 전남도청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옷가지를 가지러 잠시 들렀던 집에서 사지(死地)로 향하는 딸을 온 몸으로 막아섰던 어머니 몰래 뒷담을 넘어 다시 도청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그들을 두고 살아남기 위해 혼자 집에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민군 지도부는 계엄군이 들이닥치기 전에 여성들을 모두 도청 밖으로 피신하도록 설득했다. 여고생을 포함한 여성들은 남자 대학생 두 명의 엄호를 받으며 인근 교회로 피신해 생존할 수 있었다. 피신한 교회에서 자신들을 엄호했던 남학생들에게 함께 남을 것을 강권했지만 그 남학생들은 여성들이 안전하게 피신한 것을 보고해야 한다며 기어코 도청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돌아가는 길에 한 남학생은 계엄군의 흉탄에 결국 젊은 목숨을 잃어야 했다.

계엄군의 무지막지한 살상에 얼굴형체 마저 이글어진 시신들을 보며 너무나도 무서웠다며, 도청에서 나올 때도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보다 시신들 옆을 지나가는 것이 더 무서웠다는 그녀의 증언을 들으며 5.18의 참상이 어땠는지 몸서리가 쳐졌다. 광주시민들을 무참히 살해하며 집권한 전두환 정권 동안 오히려 광주시민들은 폭도로 몰려 침묵을 강요당했다. 피해자들이 마치 일제 강점기 불량선인처럼 핍박을 받아야 했던 기가 막힌 현대사의 한 단면을 당사자의 목소리로 직접 듣는 것은 책이나 풍문으로만 접했던 5.18 민주항쟁을 보다 생생하게 만나는 경험이었다.

살해당하고 부상당한 시민들,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을 끔찍하게 잃어야만 했던 한 사람 한 사람의 고통을 생각하면 가슴 깊은 곳에서 아픔과 분노가 일었다. 그러나 5.18 광주의 항쟁은 1987년 6.10 민주항쟁으로 이어져 전두환 군사정권의 종지부를 찍고,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장을 열었던 역사적 투쟁이 되었음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하리라.

최근 5.18 당시 광주시민들에 대한 무차별 헬기 사격이 사실로 밝혀졌다. 실제 공군 전투기들이 폭탄을 장착하고 출격 대기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다. 불법적으로 찬탈한 권력으로 국민의 혈세로 국가와 국민을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군대를 동원하여 자국민을 잔인하게 살상하게 하고, 발포를 명령한 살인자들이 버젓이 잘 살고 있는 현실은 대한민국의 크나큰 비극이다. 그 뿐 만 아니라 가해자들이 사과는커녕 아직도 피해자들을 간첩이나 폭도로 몰며 자신들의 범죄를 정당화 하는 뻔뻔함이 용인되는 이 사회를 우리는 통렬하게 성찰해야 한다.

다음 날 방문한 목포 신항의 세월호를 보며 국가적 범죄를 용인한 우리 사회의 안일함이 무고한 시민들에 대한 끝없는 비극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목격하는 것 같았다. 미처 청산하지 못한 일제의 잔재가 독재의 뿌리가 된 것처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5.18의 유산은 세월호참사와 같은 국가폭력으로 끊임없이 이어진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그 폭력의 희생자는 언제나 무고한 시민들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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