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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달구벌아침

여행이 가르쳐 준 것

기사전송 2017-09-20, 21: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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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사람향기 라이프 디자인연구소장)


매번 방학이 되면 여행을 다녀온다. 하지만 이번 여름방학은 어딜 다녀오질 못했다. 경기도 가천대학교에서 꼬박 2개월을 졸업예정자들 대상으로 취업세미나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거리는 대략 300Km, 시간은 빠르면 세 시간, 늦으면 네 시간. 먼 거리를 오가며 쉼 없이 보낸 여름방학이었다. 가만히 돌아보니 방학이 아니라 나는 여전히 일하는 중이었다. 두 달 강의하는 동안 넷째 누나가 있는 남양주에서 먹고 자고 했다. 하루는 강의 후 집으로 돌아와 TV를 보고 있자니 홈 쇼핑에서 방콕 파타야 패키지여행상품이 나온다. 쇼 호스트가 말을 잘 한 것인지, 내 귀가 얇은 것인지 모르나 채널은 고정되었고 어느새 나의 손가락은 상담원 해피 콜 전화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그렇게 여행은 시작되었다.

태국여행을 가본 사람은 알지만 그곳의 대표적 관광 상품이 성(性)과 관련되어 있다. 그중 세계 3대 쇼 중 하나인 알카자 쇼(Alcaza Show)를 보았다. 알카자 쇼는 성(sex)은 남자로 태어났지만 성 정체감(gender)은 여성인 사람들이 화려한 옷차림과 춤 공연으로 볼거리를 선사하는 쇼다. 왜 알카자 쇼가 세계 3대 쇼가 되었는지는 직접 보고 난 뒤에 알게 되었다. 여자보다 더 여자 같은 외모의 트랜스젠더들이 펼치는 화려한 볼거리는 관광객을 충분히 만족시키는 무대였다.

처음에는 트랜스젠더 몇 명이 무대에서 공연을 선보였다. 사진 촬영이 허락된 곳이라 신기한 장면(?)을 카메라에 담기 바빴다. 아마 수 십장을 찍은 듯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쇼는 더욱 화려해졌고 한 무대에 수 십 명이 한꺼번에 올라와서 장관을 이루었다. 그렇게 한 시간의 화려한 쇼는 끝이 났다. 그러나 수 십장의 사진을 찍었지만 지금 필자의 휴대폰에는 몇 장만 남겨져 있다. 왜냐하면 앞에 찍어 둔 사진들은 모두 삭제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트랜스젠더 한 명 만 봐도 신기했는데 몇 십 명을 보고 나니 더 이상 신기하지 않아서였다. 큰 걸 보고 나면 그전에 작은 것은 그렇게 감흥을 주지 못하는 법이다.

비슷한 경험은 올 1월 일본 아키타 현 자유 여행에서도 있었다. 아키다 공항에 내렸을 때는 눈(雪)이 우리 일행을 반겨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하지만 눈은 내리지 않았다. 사실 아키타로 여행을 온건 펑펑 내리는 눈을 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온천지가 하얀 숲 속에서 펑펑 내리는 눈을 맞으며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온천을 하는 것이 나의 버킷리스트 중에 하나였기 때문에 아키타에서 펑펑 내리는 눈을 보고 싶었다. 아키타 공항에서 출발하여 산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하니 하늘에서 눈이 조금씩 내렸다. 조금만 눈이 쌓인 곳이 있으면 연신 휴대폰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시간이 지나니 더 큰 눈이 쌓이기 시작했고 우리 일행을 태운 버스가 산속으로 깊이 들어갔을 때는 주먹 만 한 눈송이가 날리기 시작했다. 평생 볼 눈을 다 본 듯했다.

그러다 보니 휴대폰 용량이 다되었다는 신호가 떴다. 이전 것을 지우지 않으면 더 이상 사진을 담을 수가 없다. 그래서 앞서 찍은 사진. 눈이 더 적게 쌓였을 때 찍은 사진을 카메라 폴더에서 하나씩 지우기 시작했다. 더 큰 눈을 담았으니 작게 쌓인 눈은 더 이상 내게 감동이 없게 된 것이다.

문득 깨닫는다. 펑펑 내리는 함박눈을 경험한 사람은 날리는 싸락눈에 흥분하지 않는다는 것을. 더 큰 경험 앞에는 이전의 작은 경험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눈을 처음 보는 사람은 작은 눈송이에도 야단법석이다. 하지만 큰 눈을 이미 경험한 사람은 더 이상 내리는 눈을 향해 카메라를 들지 않는다.

인생도 그렇다. 큰 걸 경험해보면 그보다 작은 건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큰 시련을 경험해본 사람은 작은 시련이 왔을 때 끄떡없다. 많은 걸 봐야 한다. 더 넓은 세상을 봐야 한다. 그러면 사사로운 일로 ‘방방’ 뜨거나 마음 쓰는 일은 줄어들 것이다.

여행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 그것은 넓은 시야, 넓은 마음이다. 작은 것에 연연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을 느끼고 즐기라는 메시지였다. 떠나자 더 큰 세상으로. 카르페 디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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