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 간병
여성과 간병
  • 승인 2017.09.2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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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19년간 중풍으로 자리에 누운 시아버지를 돌보았다. 시어머니와 시누이도 있었지만 시아버지는 맏며느리인 그녀에게만 유독 의지했다. 시아버지를 돌보느라 여행도, 취미생활도 접어야 했건만, 그녀는 그 모든 것을 감내했다. 시아버지가 누워 계신 동안 시어머니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 아이가 자라 성인이 될 때까지 시아버지 병구완을 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지만 오로지 그녀만을 의지한 시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았다. 어느 날 그녀는 사람들이 힘들지 않느냐, 시아버지가 원망스럽지 않느냐고 하는데 자신은 사실 힘들지 않았다고, 오히려 자식도 어려워하는 시아버지에게 사랑을 많이 받았다며 자신은 간병이 힘들지 않았다고 한다.

필자가 잘 아는 지인의 사연이다. 요양원도 없던 시절 새댁이 중년이 될 때까지 집에서 시아버지 간병을 했던 그녀의 한결같은 헌신을 나는 존경한다. 그 헌신 덕분에 시아버지는 환자로서 존중 받고 존엄 있는 임종을 맞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얼마 전 시어머니에게서 반신이 마비되는 뇌졸중이 왔다. 수술이 불가능한 부위에 뇌졸중이 와서 재활병원에 입원 하셨다. 입원 후 반복되는 미열 때문에 실시한 복부 초음파검사에서 오른 쪽 콩팥에 종양이 발견되었다. 정밀검사를 통해 다행스럽게도 외부 장기로 전이는 되지 않은 상태인 것으로 진단되었다.

종양이 확실하다는 의사의 소견을 듣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감정들이 밀려와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뇌졸중 치료를 받고 있는 상황이어서 종양수술 여부는 또다시 종합병원 신경과의 정밀진단을 받아야 한다. 수술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여든이 다 되어 노쇠한 어머니가 수술을 견딜 수 있을지 전문가들조차 의견이 갈린다.

최근 여성주의 인터넷 매체 ‘일다’에서 고령화와 비혼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현실에서 부모나 조부모, 형제들을 간병하는 비혼여성들의 경험을 사회적으로 드러내고자 기획한 비혼여성들의 글을 싣고 있다. 그 시리즈에서 전업주부의 가사노동처럼 드러나지 않는 노동이라 해서 ‘그림자 노동’이라 불리는 비혼여성들의 치열한, 혹은 막막한 ‘간병기’가 있다.

간병과 같은 ‘돌봄 노동’의 영역은 여전히 여성들의 몫이다. 여성들 중에서도 정규적인 직업이 없거나, 수입이 낮은 여성에게 그 몫이 돌아갈 확률이 크다. 그 여성들이 주로 전업주부이거나 비혼여성이다. 최근 비혼여성이 늘어나면서 비혼여성이 병든 가족을 맡게 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장기적으로 가족에 대한 간병이 지속될 경우 간병인의 신체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우울증과 같은 정신적인 문제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 따라서 노인환자를 비롯한 환자를 돌보는 일은 가족의 문제를 넘어서는 사회적인 해결이 필요한 것이다.

최근 시어머니가 쓰러지시고 검사와 재활 등으로 이 병원과 저 병원을 옮겨 다니며 의료비 계산을 하면서 우리 사회가 이 정도의 의료보험과 사회보장정책을 갖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으로 여겨졌는지 모른다. 당장 출근을 해야 하고, 돌보아야 하는 아이가 있는 가정에서 병든 부모를 돌보아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얼마나 당황스럽고 막막할 것인가. 필자는 19년간 중풍으로 누운 시아버지를 돌보았던 지인처럼 시어머니를 돌볼 자신이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족을 대신하여 간병을 해 줄 간병인을 쓸 수 있고, 스스로 일상을 돌보는 일이 불가능한 환자들을 위한 요양병원이 존재하는 것이 감사한 것이 필자의 솔직한 심정이다.

치매진단을 받은 친정아버지를 돌보는 친정어머니에게 국가가 80%의 비용을 부담하는 요양보호사의 방문은 얼마나 귀한 것인지 모른다.

시어머니의 갑작스런 병환을 맞으며 멀지 않은 나의 미래를 본다. 많은 것이 자동화 되어 일자리가 사라져가는 21세기의 경쟁력은 사회복지를 통해 제고가 될 것이다. 환자와 노인들이 자신을 책임질 수 없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존엄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인권에 기반한 복지의 증진이라는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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