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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달구벌아침

소녀, 할머니가 되다

기사전송 2017-10-15, 20:4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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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란 (자유기고가)


들어도 내 머릿속으로 들어오지 않게 하고 싶지 않고, 튕겨나가게 만든 말이 있다. 알아도 그 아픔을 내 마음속으로 끌고 들어와 같이 아파하지 않고 싶은 아픔이 있다. 느껴도 그 분노를 함께 하고 싶지 않는, 내 온몸에서 활화산처럼 솟구칠 것 같은 분노가 있다. 오늘 그 속으로 들어가 볼 결심을 한다. ‘위안부 할머니’, ‘평화의 소녀상’, ‘한일협상’이다.

최근 7월 23일 김군자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한달 후 8월 29일에는 하상숙할머니가 돌아가셔서 현존하시는 할머니는 36명이라고 한다. 현재 생존해계시는 위안부 할머니들은 연세가 80대후반에서 90세에 이른 분들이다.

할머니들이 강제동원되던 나이는 중학생에 해당하는 14세에서 16세경이다. 철모르고 사춘기를 겪을 어린 나이에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취업사기에, 협박 및 폭력에, 인신매매 및 유괴등으로 강제 동원되었다. 일본은 강제동원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따라갔다고 거짓말을 해대며 ‘종군 위안부’라고 썼다. 1996년 이후 UN 등 국제사회에서 모집동기, 모집과정, 폭력성 등을 고려해 ‘군대성노예제’로 규정하고 있다.

낯선 이국여행을 가도 처음에는 불안할 것인데, 강제로 군인에 이끌려 군인들이 들끓는 감옥같은 군 위안소에 도착했을 때 어린 마음은 오죽했을까?

위안소 내부구조를 알아보니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뒤틀리고 협소한 침실로 약0.9m × 1.5m 넓이의 침대 하나만 들어갈 수 있는 크기’였다고 한다.

1인 감옥 독방만한 크기이다. 가만히 있어도 답답하고 숨막힐 것 같은 공간에서 더 숨막히게 하는 일은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매일수십명이나 되는 군인들에게 성적 ‘위안’을 제공하도록 강요받았다는 것이다.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타의에 의해, 매번 다른 군인들에게 강요당하는 것은 그들에겐 ‘위안’일지 몰라도 어린 소녀들에겐 육체적, 정신적폭력이요 죽임이다.

어떻게 견뎌냈을까? 어떻게 살아냈을까? 하루에도 몇 번씩 죽고 싶었을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탈출하고 싶었을 것이다. 자신의 가슴을 쥐어뜯고, 머리를 쥐뜯었을 것이다. 이렇게 짐승만도 못하게 살아 무엇하나? 이렇게 수치스럽게 살아 무엇하나? 내일 또 오늘처럼 군인들이 몰려올 것을 생각하면 너무 끔직해 미칠 것 같았을 것이다. 이대로 있을 수 없다. 무슨 수를 써야 된다. 오만 궁리를 했을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급기야 자살을 시도한 사람들도 많았다 한다. 살해사건도 일어났다한다. 그러나 사건을 조사하거나 하는 등의 절차는 없이 유기되는 경우가 많았다 한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기적이다. 욕됨과 분노를 이겨내고 살아남아 귀국하고도 힘든 나날을 보냈을 것이다. 육체적, 정신적 후유증으로 고통을 받고, 경제적 어려움에도 처했을 것이다.

끔찍한 생활을 한 위안부 할머니들이 역사적으로 조명을 받은 것은 1991년 8월 14일 고김학순할머니의 증언부터이다. 1990년 6월 일본은 ‘종군 위안부’란 용어를 쓰며 ‘일본군은 군대위안부 문제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발표하자 격분하여 폭로를 결심하고, 1년후에 “정신대 ‘위안부’로 고통받았던 내가 이렇게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라며 일본군 위안부의 실상을 실명으로 증언했다. 1993년 한국정신대문제연구회가 발간한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이라는 증언집에서 참담했던 자신의 위안부 생활을 구체적으로 공개했다.

자신의 욕됨을 공개하기에는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겠는가? 이후 매주 수요일 주한 일본대사관앞에서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집회를 하였다. 평화의 소녀상은 1000회를 맞은 2011년 12월 14일, 높이 130cm이며 치마저고리를 입고 짧은 단발머리를 한 14~16세 소녀의 모습을 한 평화의 소녀상이 서울 일본대사관앞에 세워져 그 당시를 잊지말기를 말하고 있다.

2015년 한일위안부 협상이 있었다. 강제성, 피해의 지속성 등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가짜 사과를 하였고, 피해자 배상 및 진상규명과 재발방지조치가 없는 협상이며, 협상이행조건으로 평화의 소녀상을 철거하기를 전제로 하고 있다. 위안부할머니 및 정대협은 한일협상 무효를 주장하고 있다.

평화의 소녀상은 치욕의 삶이 시작되기 전 순수한 소녀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할머니들의 마음을 담은 모습이다. 어린 나이에 군화발에 짓밟힌 한 떨기 야생화처럼 삶을 살고도 살아내고 증언한 할머니들은 용기있는 분들이다. 그 분들의 아픔과 분노를 느끼며, 일본이 진정한 사과를 하고, 적절한 피해배상을 하며, 진상규명을 통해 치유해주기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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