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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달구벌아침

배추 겉잎에 대한 단상

기사전송 2017-11-27, 21:2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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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숙 수필가
해질 무렵 퇴근 길, 동네시장을 찾았다. 옷깃을 여며도 선득선득 불어오는 바람을 피할 수 없는 난전 한 켠, 배추겉잎을 떼어내고 있는 할머니가 보인다. 다가가서 그 앞에 쪼그려 앉아 물었다.

“할머니 겉잎을 왜 그렇게 다 떼어 내세요.” 라고 묻자 할머니는 “요새 젊은 새댁이들은 속엣 것만 달라고 한다 아이가. 겉잎은 아예 다 떼 내고 줘야 좋아 하니 어쩔 수 없다 아이가?”하시며 혀를 끌끌 차신다.

배추 전을 구워 먹을 요량으로 한 포기만 달라고 했더니 할머니는 한쪽으로 밀려나 있는 배추겉잎까지 덤으로 얹어 주신다.

맛있게 해 먹으라며 레시피까지 오목조목 일러 주신다. 배추겉잎이 든 검은 봉지를 들고 시장을 빠져 나오며 정체를 알 수 없는 슬픔과 후회 속에 지난날들을 되돌아보게 한다.

입동을 기점으로 김칫독 바닥이 서서히 보인다.

뚜껑을 열자 배추 겉잎은 김칫소가 빠져나가지 않게 복주머니처럼 껴안고 있다. 겉잎은, 쓴맛과 짠맛을 넓은 품으로 받아내며 김치를 옹골차게 삭혔을 것이다. 저 넓은 품은 누구를 닮았을까.

저 넉넉한 품성은 척박하고 엄혹한 현실 속에서도 깊고 풍성한 멋을 가지셨던 아버지를 닮았다.

아버지는 유난히 배추김치의 겉잎을 좋아하셨다.

그런 아버지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어머니는 항상 김치의 잎 부분만을 따로 썰어 아버지 앞에 내어 놓는 것으로 쌈을 싸 드실 수 있도록 배려 해 주셨다.

사는 내내 생의 바람막이였던 아버지는 늘 배추 겉잎 같은 분이셨다.

이맘때쯤이면 묵은지는 절정의 맛을 낸다.

언젠가 ‘달팽이 박사’로 유명한 권오길 선생은 ‘농익은 김치의 과학’에서 김치가 제 맛을 내려면 배추가 다섯 번 죽어야 한다고 했다.

”배추가 땅에서 뽑힐 때 한 번 죽고, 통배추의 배가 갈라지면서 한 번 죽고, 소금에 절여지면서 다시 죽고, 매운 고춧가루와 짠 젓갈에 범벅이 돼서 또 죽고, 마지막으로 장독에 담겨 땅에 묻혀 다시 한 번 죽어야 비로소 제대로 된 김치 맛을 낸다”고 쓴 글을 읽었다. 풋내 나는 겉절이 인생이 아닌 농익은 묵은지 같은 인생을 사는 것도 좋겠다.

김장철이면 속만 빼먹고 남은 김칫독 속엔 겉잎만 남는다.

배추김치 한 포기를 헐어놓으면 우리들은 속엣 것만 홀라당 파먹고 하얀 접시 위에는 시퍼렇고 억센 겉잎만 남아있다.

묵은지가 떠나고 남은 자리엔 새로 담은 김치가 다시 밥상에 오를 것이다. 가끔, 김치 속이 다 빠져나간 후 덩그러니 남은 겉잎을 보면 아버지가 그리워진다.

뚝배기에 겉잎을 넣고 생선찌개나 비지찌개를 끓이기도 하고 묵사발 위에 고명으로 얹은 별미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아이들이 생선을 발라먹는 동안 나는 시래기를 건져 먹는다. 그러면 내가 아버지께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 역시 내게 묻곤 했다. “엄마는 그게 맛있어?” 라고.

아버지는 정말 겉잎이 맛있어서 좋다고 하셨던 것일까. 김치 한 포기 내어놓기가 무섭게 우리들은 속부터 팠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눈을 흘기며 속엣 것을 골라 아버지의 밥 위에 올려 주시곤 했다. 그땐 왜 전혀 눈치 채지 못했을까.

김장을 할 때만해도 아등바등 풀풀 살아 도망 갈듯 하던 배추는 세월의 풍상 때문인 듯 부들부들해진다. 속을 품어 안고 견뎌낸 껍데기처럼 나도 시퍼렇게 세월에 물들어 간다. 속엣 것들이 이젠 잘 익어 딸은 학교로, 아들은 취직 시험 준비를 한다고 바삐 대문을 나선다.

주말 오후, 남편은 축 늘어진 배춧잎 같은 몸을 추스르기 위해 아들과 목욕을 갔다. 그동안 나는 어질러진 방안을 청소하고 고양이 밥도 챙겼다. 겨울 볕에 잘 익은 빨래들은 거둬 속옷은 잘 개켜놓고 겉옷은 다리미질을 해 옷장에 챙겨 넣었다. 잠시 후, 계단을 오르는 소리 들리고 종이 울린다. 현관으로 들어선 아들을 향해 한 마디 던진다.

“아들! 네 껍데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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