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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달구벌아침

김장을 누구와?

기사전송 2017-12-18, 21: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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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란
주부


김장철이다. 주부들은 둘만 모이면 서로의 김장근황을 묻는다. 언제쯤 할 것인지? 생배추를 살 것인지, 절인 배추를 살 것인지? 해남배추가 좋은지, 강원도 배추가 좋은지? 새우젓을 넣는지, 보리새우도 넣는지 각자의 의견을 내놓는다.

배추포기수에 따라 부재료의 양도 달라지고 김장담는 사람의 부담도 달라진다. 4인 가족 기준으로는 아무리 적게 담는다 해도 10포기정도는 되어야 한다. 그래야 생김치도 먹고 김치찌개나 김치전도 여유롭게 해 먹을 수 있다. 주부혼자서 10포기를 담그려면 재료구입부터 손질, 배추절이기, 양념버무리기, 뒷정리까지 하면 적은 양의 가사노동이 아니다.

홍희가 김장걱정이 시작된 것은 2년전 부터이다. 그전까지 김장은 엄마몫이었다. 결혼 전에는 엄마가 다 해놓으면 조금씩 가져다 먹었고, 결혼 후에는 엄마가 버무릴 준비를 해 놓으면 당일 아침에 가서 언니, 오빠들과 함께 양념을 발라 몇통씩 가져와 먹었다. 배추김치 뿐만 아니라 삭힌 깻잎김치, 무말랭이김치, 고들빼기김치, 물김치까지 가져오면 월동준비는 끝났다. 아이들도 외할머니의 무말랭이와 깻잎김치를 특히 좋아했다.

엄마덕택에 김장재료 살 준비도 안 하고, 김장담글 걱정도 없었다. 김장철이 오히려 친정나들이 갈 기회라 즐겁기까지 했다. 언니,오빠네와 함께 모여 양념과 절인배추를 가운데 두고 빙둘러 앉아 빨간 양념을 바르면서 이야기꽃도 피우고, 돼지수육을 삶아 소주 한 잔씩 주고받는 재미가 쏠쏠했다.

2년전부터 엄마가 체력이 약해지고 치매초기증상을 보여 엄마가 김장을 하기에는 무리라고 판단했다. 기억력이 약해지고 했던 말을 반복하고 자신의 밥 챙겨먹는 것도 잊었다. 언니와 새언니가 직장을 다니고 있어서 홍희는 누구와 함께 김장을 할지 걱정이 되었다. 남편과 둘이서 김장을 담은 적이 있었는데 온갖 재료를 써서 만든 적이 있는데 엄마의 김장맛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혼자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엄마가 나이들어 돌아가시면 언니랑 같이 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있다. 그런데 엄마가 돌아가시기도 전에 김장을 다른 사람과 함께 해야하는 상황이 생길 줄은 몰랐다. 엄마는 언제나 힘이 세고 건강할 줄 알았다. 엄마는 늙지 않을 줄 알았다. 엄마는 동네에서 누구보다 힘세고 억척스럽기까지 하였다. 자주 전화를 하면 왜 이리 자주 전화하노 하던 엄마는 혼자두어도 백년은 끄떡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자식들이 반찬을 싸들고 수시로 날라도 밥을 챙겨먹지 못하고 약도 챙겨먹지 못해 자식들이 일주일에 한 두 번 방문하는 상태가 되었다. 요양보호사가 하루 두 번 방문하여 식사와 약복용을 챙겨야되는 몸이 되었다.

아직 막내딸은 나이 오십이 되었어도 혼자 김장 10포기도 담글줄 모르는 철부지 그대로인데 엄마는 어느새 늙고 병들어 버렸다. 홍희에게 엄마는 지금 자신의 나이와 같은 50대에 머물러있다. 그때의 엄마는 어른스럽고 자식과 생활의 무게를 힘겹게 감당해내고 있었다. 김장 담그는 것은 엄마에겐 사소한 일이었다. 늘 어리기만 한 홍희에게 엄마는 50대모습 그대로인데 엄마는 막내딸에게 김장을 담그어 줄 수도 없는 나이가 되었다. 피터팬신드롬처럼 자신이 늙기를 바라지 않아 어리게 살고 싶어도 엄마는 세월따라 늙어가고 있다. 엄마의 늙음 끝에 올 무언가가 두렵다. 엄마의 늙음을 붙들고 싶다. 자신의 나이듦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한 해가 가는 12월에 2주후면 해가 바뀌고 나이가 듦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엄마의 늙음을 붙잡을 수 없다. 시간을 붙잡을 수 없다. 그렇기에 홍희는 오늘도 아침, 저녁으로 엄마의 안부를 묻는다. 왜 이리 자주 전화하냐고 말을 해도 간 밤에 잘 잤는지, 아침은 먹었는지, 춥지는 않는지 똑같은 질문을 하고 대답을 듣는다.

홍희가 2년전 누구와 함께 김장을 할지 걱정하니 엄마는 “나랑 하면 되지.”하여 그 전날 미리 가서 같이 배추를 절이고 양념을 만들어 함께 김장을 했다.

그러나 올해는 그 말은 못할 것 같다. 홍희는 누구와 함께 김장을 할지 걱정을 다시 시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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