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시설장에 대한 추억
장애인 시설장에 대한 추억
  • 승인 2016.04.26 17:3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진복 영진전문대
명예교수 지방자치
연구소장
그는 심한 장애인이었다. 양쪽 다리가 틀어져 지팡이에 의존해 걸음을 걸을 때마다 온몸이 요동쳤다. 이북 사투리를 심하게 쓰는 그의 얼굴에는 언제나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대구시청에서 구 원호청 골목 안에 있던 사회사업연합회 사무실까지 가는데 빠른 걸음으로 5분이면 충분한 거리를 30분 훨씬 넘게 걸렸지만 하루도 거르는 일이 없었다. 그곳은 시설장들이 사업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그 때는 장애인복지법이나 노인복지법 같은 사회복지에 관한 독립적인 법규도 없었다. 성인복지시설 지원에 관한 법적근거는 옛 생활보호법(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었다. 생활보호법은 1961년 박정희 정권 때 부모 없는 18세 미만 아동, 자식 없는 65세 이상 노인, 불구폐질자 등 생활능력이 없는 자에게 국가가 최소한의 생계지원을 위해 만든 법이었다.

예의 그 장애인은 청구혜양원(현 청구재활원)의 이사 겸 원장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 때 필자는 대구시청 사회과에 근무하는 공무원이었다.

신천동 후미진 곳에 있던 청구혜양원에는 독립적으로 가정을 영위할 수 없는 장애인 가족 세대도 함께 수용하고 있었다. 대구시가 도청산하에 있던 때였으므로 시설에 대한 지원 등 주요 의사결정권은 도지사가 갖고 있었다. 그 당시 외원단체들은 고아원(지금의 육아원)과 달리 양로원, 성인장애시설에 대해서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넉넉지 못한 국가지원에만 매달려 있으니 겨우 입에 풀칠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지금 사회복지시설은 국가경제가 커진 만큼 외적·내적으로 엄청난 성장을 했다. 6.25때 고아원에서 출발한 한국의 사회복지사업은 해를 거듭해 가면서 정부의 적극적 지원과 전문·기술적 운영으로 옛 복지시설의 형태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사회복지시설의 주체인 사회복지법인은 설립자의 가족, 자녀 등이 2대· 3대를 거치면서 시대적 수요에 따라 어린이집, 요양원 등으로 운영목적을 바꾸거나 복지관련 사업을 병행하면서 시설운영의 폭을 넓혀 나갔다.

변두리에 있던 사회복지시설이 도시화에 따라 외곽지로 옮기면서 재단의 기본 재산 증가를 가져오는 경우도 많았다. 청구재활원 역시 그렇다.

필자가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따로 있다.

최근 ‘청구재단의 그늘, 그곳엔 장애인 인권은 없었다’는 기사를 보면서 불현듯 예의 그 장애인 시설장이 떠올랐다.

대학으로 직장을 옮긴 후 필자는 수십 년 간 사회복지관련 분야의 강의를 해 왔다. 공무원 때의 실무경험과 책에서의 이론을 접목하면서 사회복지의 실상을 늘 조망하고 있었다.

청암재단은 청구재활원과 천혜요양원을 운영하고 있는데 국가인권위원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07년부터 9년간 29명의 장애인이 사망했고 이 가운데 장애인 간의 폭행 사건으로 숨지거나 넘어져 숨지는 사례가 있었다는 것이다. 또 2010년부터 최근까지 장애인 13명을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키는 등 장애인의 인권을 팽개치고 원생 관리가 엉망이었다는 것이다.

청암재단은 구 재단이 운영 비리로 물러난 뒤 사회단체 대표들로 이사진이 구성되었다. 2005년 이후 시민사회가 돌아가면서 이사장을 맡아 왔고 최근까지 5명이 이사장을 맡았는데 이중 1명을 제외하곤 모두 노동조합 간부 출신이나 시민단체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이라고 한다. 또 노조 출신들이 시설장을 맡고 있다고 한다. 매우 특이한 점이다.

여느 사회복지시설과는 달리 이 재단은 설립자의 힘이 전혀 작동하지 못하는 빈사 상태의 재단으로 변하고 말았다. 왜 이런 지경이 되었나.

그 실책은 어디가지나 재단을 지키지 못한 구 재단에 있다. 사립학교나 사회복지시설 같은 공익재단의 재산은 개인 것이 될 수 없다는 실정법과 사회통념에 따라 재단 운영은 조심성이 따르기 마련이다. 문제는 재단과 시설 운영이 매끄럽지 못한 점에 있다. 사회복지의 성공적 실현을 위해서는 정부 등의 정책적 지원과 사회복지 전문가 집단의 전문 기술적 접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청암재단의 문제는 비전문가에 의한 재단 및 시설운영의 폐쇄성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공적 재단이 사회적 지탄을 받는 다면 객관성이 인정되는 운영진이 맡는 것이 순리다. 그러나 반드시 책임성이 따라야 한다. 청구재활원의 조속한 안정을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