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릿고개
보릿고개
  • 승인 2016.05.01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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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종 시인
세계 공통 불문율이 있다. 가난한 사람을 환영하는 데는 어디에도 없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지은 대문호 괴테는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했다.

오늘을 사는 50대 이하의 사전에는 ‘보릿고개’라는 단어가 없다. 보릿고개의 말뜻을 아는 국민은 50대 이상으로 양식이 없어 굶어본 아픈 기억이 있는 사람만이 뜻을 제대로 안다.

우연한 기회에 복지방송(WBC)의 전국나눔노래자랑 프로를 보니 경연곡목에 가수 진성의 ‘보릿고개’가 자주 등장한다.

신작 대중가요 보릿고개는 가수 진성이 노랫말을 짓고, 불렀다. 진성 가수는 ‘태클 걸지마’, ‘안동역에서’ 등을 불러 인기가 이미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는데, 신곡 보릿고개도 대박이 터지기 직전이다.

보릿고개 노랫말 앞 머리만 적어보면, ‘아(아이)야 뛰지마라/ 배 꺼질라 //가슴시린 보릿고개길’ (이하 줄임)

복지방송 노래자랑에 출전하여 보릿고개를 부르는 한 여자 출연자에게 사회자가 ‘보릿고개’의 뜻을 아느냐고 물으니, 보리밥을 많이 먹고 밀가루로 찐빵을 쪄 많이 먹은 기억이 난다고 했다. 보릿고개의 뜻을 헛짚었다.

보릿고개란 가을에 농사지은 곡식(쌀)이 다 떨어지고, 햇곡식 보리쌀이 나지 않아 먹을 양식이 바닥난 음력 4월께를 말한다.

이 땅 주민들이 굶주린 배를 물로 채우고, 풀뿌리와 송기(소나무 속껍질)를 벗겨 삶아 먹고 겨우 모진 목숨을 이어가던, 죽지 못해 살던 늦봄이었다.

요사인 길가에 지천으로 있는 쑥도, 지난날 보릿고개 때는 인가(人家) 부근에선 볼 수 없었고, 아침 일찍 깊은 산속에 가서 쑥을 찾아 헤매다 밤늦게 달을 머리에 이고 귀가(歸家) 했다. 쑥 뜯는 것도 처절한 생존경쟁이었다.

힘겹게 뜯어 온 쑥을 밀가루 한 줌도 없어 밀기울을 넣고 쑥버무리를 해 먹어도 찹쌀 떡 보다도 꿀맛이었다.

보릿고개가 줄행랑을 놓은 것은, 민족중흥의 철인(鐵人) 박정희 대통령이 통일벼를 개발 재배하고, 수출진흥을 활성화 한 1975년 무렵부터라고 필자의 기억은 확신하고 있다.

보리밥도 제때 제대로 먹지 못하여 필자 또래는 키가 170㎝되는 사람도 흔하지 않다. 요즈음은 하루 세끼 실컷 이밥(쌀밥)만 먹고 살면서도 자기의 삶에 대해 고마움을 전혀 모르고 사니, 필자는 소심하여 천벌 받을까 두렵다.

정치가 불안정하고 경기침체가 이어져 옛날의 못살던 시대가 다시 안 오게, 책임있는 정치인들과 국민들도 깨어 대비를 꼭 해야 재앙을 물리칠 수 있다.

필자는 먹을 양식이 없어 아침을 굶고 등교하는 것이 초등학교 4학년 봄철이었고, 고등학교 1학년 겨울에도 하루 종일 굶은 아픈 기억이 남아 있다.

지난날 필자가 겪은 고생과 고난은 하늘이 어린 필자에게 내린 최대의 은총이라 생각하고 고맙게 여긴다.

극빈자로 유년·청소년기를 보냈지만 부자를 부러워하거나 미워한 적은 맹세코 한 번도 없다.

천체(해, 달 , 별)의 운행괘도가 있듯이, 사람도 정해진 운명이 있음을 안다.

폭력으로 부자를 제압하려는 망상과 난동은 국가사회를 더욱 불행한 지옥으로 만들 뿐이다.

지난날 보릿고개를 극복한 끈기와 지혜를 되살려 복되고 안정된 이 땅 이 나라를 만들기 위해 애써야 한다.

남을 돕는 것보다 해코지만 하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면, 미련한 악행을 당장 중지하고 남을 돕는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방향을 바꾸어야 천벌을 면제받을 수 있으리라.

하늘은 그물을 만들어놓지 않았지만, 악인들은 저절로 그물에 걸려 도태될 것이다.

필자는 힘들었던 20대시절의 보릿고개와 가난살이에 끝까지 자중자애(自重自愛)하여 자해(自害)행위를 않고, 한(恨)을 승화하여 불멸의 아름다운 시를 남기고, 일흔 중턱의 필자가 50년 이상 된 그 때 그 시를 보면 미욱한 필자에게도 이런 슬기가 있었는가 하는 자부심이 생긴다.

지난날 어려운 보릿고개를 살면서 배고픔을 달래면서 필자가 지은 시를 애독자들에게 공개한다.

(시) ‘오뉘’ 보릿고개 아래/ 아카시아꽃 하얀 5월!/ 언제나 소녀의 노랜/ 한 옥타브 위..../ 오빠는 멋쟁이다야, 빨간 ‘타이’ 멋쟁이다! // 허름한 작업복의 꾀죄죄한 오라비는/ 새빨간 ‘타이’ 대신/ 올가밀 걸고 싶어도/ 누이의 꿈이 깰까봐/ 몸을 바로 가눈다. (1966년 7월 중앙일보)

(시) ‘보릿고개’ 봄이면 엄마 얼굴/ 노랗게 피는 외꽃. 보릿골 푸른 바람/ 마음 지레 설레는데/ 애들은 홍두께마냥/ 배를 깔고 누었다. (1969년 여성동아 4월호)

(시) ‘이별’ 네 그리 피어 있어/ 한결 밝던 내 하늘/ 너 떠난 긴긴 나날/ 못견디게 아픈 이 봄...//하르르 꽃 질적 마다/ 흔들리는 가지들. (1969년 여성동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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