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칭의 포장시대
호칭의 포장시대
  • 승인 2016.05.10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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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복
영진전문대 명예교수·지방자치연구소장
공무원시절, 대학에 시간강사로 나간 때가 있었다. 일주일에 한번, 3시간짜리 강의였지만 학생들은 나를 교수님이라고 불렀다. 기분이 엄청 좋았다.

대학에서 가르치는 사람은 일단 교수님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대학 부설 평생교육원의 강사도 교수처럼 행세하는 것이 작금이다. 하지만 정작 대학의 교수들은 자기학과에 나오는 강사를 교수라고 부르지 않는다. 선생이라고 호칭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누구나 자신을 높여주는 호칭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가르치는 사람이 선생임에도 요즘은 누구에게나 노소를 가리지 않고 선생님이라고 불러주는 경우가 많다. 호칭하는 데 실수도 부담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지나친 친절은 모욕’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종편 TV를 보면 유독 전문가라고 불리는 인사들이 많이 나온다. 전문가 시대이니 만큼 전문가가 많은 것은 좋지만 객관성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다. TV에 자주 나오면 전문가가 되는지도 모르겠고 언론이 전문가를 만들어 주는 형상이다.

전문가는 ‘어떤 분야를 연구하거나 그 일에 종사하여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자’를 일컫는다. 정치 평론가나 문화평론가라고 소개되는 사람들이 온갖 채널을 섭렵하면서 광범위한 분야에서 전문가로 행세하는 것을 보면서 의아심을 가질 때가 많다. 정치나 문화의 장르 폭이 얼마나 다양하고 깊고 넓은가. 그들은 어느 분야든 방송에서 불러만 주면 다 소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전문가이다. 엄격히 말해 종편 이곳저곳 온갖 분야에서 얼굴을 자주 접할 수 있는 인물들은 모두가 전문가라 볼 수 없고 말 잘하는 재주꾼일 뿐이다.

TV 자막에서 정치평론 전문가로 소개되는 인사 중에는 교수가 의외로 많다. 일반 시청자들이 이해 못하는 교수 종류가 너무 많아 의아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는 말을 주위에서 듣는다.

보통사람들은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교원을 교수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 특임교수, 겸임교수, 초빙교수, 객원교수, 대우교수 등으로 소개되고 있으니 이해 못할 만도 하다.

고등교육법(제14조2항)에서는 ‘대학교직원을 교수, 부교수, 조교수, 강사’로 구분하고 있다. 영미에서 교수 요원 또는 특정대학의 교수들을 칭하는 패컬티(faculty)가 여기에 해당한다. 대학교육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같은 법 제17조에서 교원 외에 ‘겸임교원, 명예교수, 시간강사 등을 두어 교육이나 연구를 담당하게 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패컬티에 속하지 않는 교원은 넓은 의미에서 모두 초빙교수라고 보면 된다.

일부 대학교수가 범법행위로 사회적 비난을 받는 경우도 많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교수를 비교적 호의적 직업으로 보고 있다. 그 때문인지 자신의 위상을 교수의 반열에 맞추려고 애쓰는 것 같다.

대학에서는 교수 인건비 등의 이유로 패컬티에 속하는 교원들로 충원하지 못하고 겸임, 외래 등 초빙교수를 쓸 수밖에 없다. 교육부에서도 일정한 범위 안에서 이를 허용하고 있다.

겸임교수는 직장에 다니면서 강의를 맡는다. 전문대학에서 학생들에게 현장 경험이 있는 인사가 꼭 필요할 때 적극 활용해 온 제도로 지금은 현장실습이 필요한 4년제 대학에서도 널리 활용하고 있다. 의과대학에서는 오래 전부터 의대생들의 실습을 위하여 외래 교수를 써 왔다. 초빙교수들은 일 년 내내 강의를 맡는 것이 아니라 대학의 사정에 따라 한 학기를 쉬어야 하는 경우도 있고 시간 배정도 일정치 않다. 대학 강의를 직업으로 삼는 시간강사들은 이 대학 저 대학 전국으로 뛰면서 고달픈 삶을 산다. 오로지 그들의 희망은 정식 교수가 되는 것이다.

아무리 자기 포장시대라고 하지만 주· 부업은 확실히 구분하는 것이 당연하다. 번듯한 직장이 있으면서도 겸임교수란 이름으로 대학 강의를 하는 인사는 직장을 우선적으로 내 세우는 것이 사리에도 맞을 것이다.

왜 그렇게 TV자막에 교수라는 이름으로 소개되는 것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자기만족, 자기 포장을 위한 것이겠지만 결코 장려할 일은 못된다. 일부 대학 가운데는 종편에 자주 나오는 인사를 대학 PR을 위해 의도적으로 초빙교수로 불러들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모두가 포장하는 일에 정신이 팔려 있다. 갖가지 포장의 모순이 없어져야 신뢰 사회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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