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회 스승의 날도 지나갔다. 스승이란 말에 가슴 뭉클하던 지난 사십여 년의 생활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제자들과 함께 즐거움과 기쁨이 공존했던 교직생활과 때로는 괴롭고 가끔씩은 슬픔도 있었던 그 때 생활을 돌이켜보면 기억들은 무정형으로 뇌리에 추억으로 남는다.
지난 교직생활의 잘잘못에 대한 사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는 아마 변명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알려질 어떤 부끄러움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다.
초등학교 시절/나는 도화지 한 장으로/한 학년을 넘겨야 했다./형이 먼저 연필로 살짝 그리다 말면/내가 지우고 다시 그리고/다시 형이 그리다 말면/내가 지우고 다시 그리고/먹구름 낀 하늘이 될 때까지 /지웠다 그리고 다시 그리고/드디어는 눈물 비 내리게 했던/그 도화지 한 장/아, 그렇구나!/형은 형대로 그렸다 지우고/나는 나대로 그렸다 지우고/우리는 여전히 여기 이렇게/그렸다 지우며 살고 있구나./인생은 이렇게 그렸다 지워지는/한 장의 그림이었구나.//(도화지 한 장, 김시천)
옛날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의 모습을 떠올려 인생을 반추한 시이다.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절, 전쟁이 끝나고 가난의 고통이 연속이었던 시절에도 책보자기를 어깨에 들쳐 메고 학교만은 열심히 다녔었다. 너무나 가난한 나머지 크레용을 육남매가 공용으로 쓰며, 도화지 한 장을 형제가 아껴 쓰면서도 학교엔 결석하지 않았었다. 가난한 가정형편을 어린 마음에도 알고 있는지라 부모에게 사달라고 떼를 쓰며 울며 보채지도 못했었다.
형제가 시간표가 같은 날에는 크레용도 모자라고 도화지도 모자라 분명 형제 중 한 명은 선생님께 야단을 맞았었다. 호랑이처럼 무서운 선생님께 이유도 말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호된 꾸지람을 들어야만 했었다.
‘선생님은 이유도 물어보지 않으셔….’하고 눈치를 보면서 답답한 가슴을 짓눌려야만 했었다. 그렇지만 한 번도 선생님을 원망하지 않고 가르침을 받고자 했으며 선생님을 우러러 존경했었다. 선생님은 항상 아이들에겐 높은 하늘처럼 위대했고 넓은 대지처럼 포근하고 부드러움의 대명사였던 것이다.
그러한 선생님께 부모는 ‘때려서라도 인간되게 해 주십시오’하고 당부하고 부탁하였었다. 오직 인간되게 해달라고 염원하고 기대하는 마음에서 머리 숙여 가르침을 베풀라고 청원하였었다. 그 때 어린 눈에 비친 선생님은 전지전능이셨다.
나의 희망도 자연스레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다. 존경하였던 선생님이 되고 존경받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교육대학을 다니면서 페스탈로치를 배우고, 소크라테스의 진리 탐구 대화법인 산파술을 배웠다. 그리고 아동발달과 심리학을 익히며 교육의 원리를 이해하려 하였다. 모두가 교육에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이 될 만한 것들을 배우고 익혔다.
현직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교육이론과 실제의 시행착오로 때로는 좌절을 맛보았고 가끔은 회의와 권태로 교육에 임했었다.
오직 공부라는 명목으로 아이들을 호되게 꾸짖고, 엄청나게 나무라고 질책하며 심지어는 반성문을 쓰게 하면서까지 가르쳤다. 열정이 넘쳐 부작용이 발생하기도 했었다. 사제지간의 간극만 생겼다.
과연 모두가 인성형성에 필요한 것이고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인지 지금 자문자답해본다. 그 때 제자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중용에도 ‘성품은 하늘이 준 것이고, 그 성품에 따르는 것이 도리이고, 그 도리를 닦아 나가는 것이 교육이다’라고 나와 있다. 인성은 가르침에 의하여 길러지는 것임을 알지만 실제는 어려웠다. 자신과의 갈등이 생겼었다.
학창 시절 사이먼이 부른 팝송이 생각났다.
‘그대 지치고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져, 그대 눈에 눈물이 가득할 때 내가 그것을 말려주겠어요. 난 당신 곁에 있어요. 곤경의 순간이 닥쳐오고, 친구들을 찾을 수 없을 때. 거친 물결 위에 놓인 다리처럼…’의 가사를 그냥 흥얼거렸었다.
명심보감에 ‘일일청한(一日淸閑) 일일선(一日仙)’이라는 말이 있다. ‘하루라도 마음이 깨끗하고 한가로우면, 그 하루는 신선이 된다’는 뜻이다.
스승의 날엔 하루라도 깨끗한 마음,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하루의 신선이 되어보는 것도 교직생활에 무한한 활력소가 되리라.
지난 교직생활의 잘잘못에 대한 사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는 아마 변명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알려질 어떤 부끄러움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다.
초등학교 시절/나는 도화지 한 장으로/한 학년을 넘겨야 했다./형이 먼저 연필로 살짝 그리다 말면/내가 지우고 다시 그리고/다시 형이 그리다 말면/내가 지우고 다시 그리고/먹구름 낀 하늘이 될 때까지 /지웠다 그리고 다시 그리고/드디어는 눈물 비 내리게 했던/그 도화지 한 장/아, 그렇구나!/형은 형대로 그렸다 지우고/나는 나대로 그렸다 지우고/우리는 여전히 여기 이렇게/그렸다 지우며 살고 있구나./인생은 이렇게 그렸다 지워지는/한 장의 그림이었구나.//(도화지 한 장, 김시천)
옛날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의 모습을 떠올려 인생을 반추한 시이다.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절, 전쟁이 끝나고 가난의 고통이 연속이었던 시절에도 책보자기를 어깨에 들쳐 메고 학교만은 열심히 다녔었다. 너무나 가난한 나머지 크레용을 육남매가 공용으로 쓰며, 도화지 한 장을 형제가 아껴 쓰면서도 학교엔 결석하지 않았었다. 가난한 가정형편을 어린 마음에도 알고 있는지라 부모에게 사달라고 떼를 쓰며 울며 보채지도 못했었다.
형제가 시간표가 같은 날에는 크레용도 모자라고 도화지도 모자라 분명 형제 중 한 명은 선생님께 야단을 맞았었다. 호랑이처럼 무서운 선생님께 이유도 말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호된 꾸지람을 들어야만 했었다.
‘선생님은 이유도 물어보지 않으셔….’하고 눈치를 보면서 답답한 가슴을 짓눌려야만 했었다. 그렇지만 한 번도 선생님을 원망하지 않고 가르침을 받고자 했으며 선생님을 우러러 존경했었다. 선생님은 항상 아이들에겐 높은 하늘처럼 위대했고 넓은 대지처럼 포근하고 부드러움의 대명사였던 것이다.
그러한 선생님께 부모는 ‘때려서라도 인간되게 해 주십시오’하고 당부하고 부탁하였었다. 오직 인간되게 해달라고 염원하고 기대하는 마음에서 머리 숙여 가르침을 베풀라고 청원하였었다. 그 때 어린 눈에 비친 선생님은 전지전능이셨다.
나의 희망도 자연스레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다. 존경하였던 선생님이 되고 존경받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교육대학을 다니면서 페스탈로치를 배우고, 소크라테스의 진리 탐구 대화법인 산파술을 배웠다. 그리고 아동발달과 심리학을 익히며 교육의 원리를 이해하려 하였다. 모두가 교육에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이 될 만한 것들을 배우고 익혔다.
현직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교육이론과 실제의 시행착오로 때로는 좌절을 맛보았고 가끔은 회의와 권태로 교육에 임했었다.
오직 공부라는 명목으로 아이들을 호되게 꾸짖고, 엄청나게 나무라고 질책하며 심지어는 반성문을 쓰게 하면서까지 가르쳤다. 열정이 넘쳐 부작용이 발생하기도 했었다. 사제지간의 간극만 생겼다.
과연 모두가 인성형성에 필요한 것이고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인지 지금 자문자답해본다. 그 때 제자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중용에도 ‘성품은 하늘이 준 것이고, 그 성품에 따르는 것이 도리이고, 그 도리를 닦아 나가는 것이 교육이다’라고 나와 있다. 인성은 가르침에 의하여 길러지는 것임을 알지만 실제는 어려웠다. 자신과의 갈등이 생겼었다.
학창 시절 사이먼이 부른 팝송이 생각났다.
‘그대 지치고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져, 그대 눈에 눈물이 가득할 때 내가 그것을 말려주겠어요. 난 당신 곁에 있어요. 곤경의 순간이 닥쳐오고, 친구들을 찾을 수 없을 때. 거친 물결 위에 놓인 다리처럼…’의 가사를 그냥 흥얼거렸었다.
명심보감에 ‘일일청한(一日淸閑) 일일선(一日仙)’이라는 말이 있다. ‘하루라도 마음이 깨끗하고 한가로우면, 그 하루는 신선이 된다’는 뜻이다.
스승의 날엔 하루라도 깨끗한 마음,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하루의 신선이 되어보는 것도 교직생활에 무한한 활력소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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