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보아야 승리한다 - 초기 로마제국과 독수리
멀리 보아야 승리한다 - 초기 로마제국과 독수리
  • 승인 2016.05.17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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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후섭 아동문학가
교육학박사
지난 5월 초 터키 일원을 여행하고 왔습니다. 그런데 독일이나 스페인, 포루투갈 등 다른 유럽 나라에 비해 독수리 형상물이 매우 적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다른 유럽 나라에서 아침마다 나오던 베이컨이나 햄 등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여기가 이슬람 국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래 된 건물 위에서 가끔씩 독수리 형상물이 올려져 있는 것은 볼 수 있었습니다. 콘스탄티누스의 로마가 자리를 잡은 곳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로마가 독수리를 상징물로 삼은 데에는 여러 가지 함의(含意)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로마신화에서 절대적 주신(主神)으로 등장하는 제우스의 상징이 독수리였기에 이를 이으려 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제우스의 대표적 상징물은 번개와 독수리였습니다. 제우스는 긴 수염이 나 있는 강인하고 위엄 있는 남성의 모습으로 조각품에 나타나는데 가끔씩 발치에 독수리가 앉아있기도 합니다. 상체는 나신이며, 한쪽 손에는 번개 혹은 홀(笏)을 들고 있습니다. 제우스는 번개나 비 같은 기상 현상을 주재할 뿐만 아니라 세계의 질서와 정의를 유지하며, 왕권 및 사회적 위계질서를 보장하는 절대자였습니다.

제우스를 상징하는 독수리는 높이 날아올라 멀리 바라보는 예지력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목표를 위해서는 과단성 있게 추진합니다. 뿐만 아니라 날카로운 발톱과 부리로 상대방을 여지없이 제압합니다. 로마 사람들은 대제국을 세우고 지키려면 이러한 독수리의 위력을 지녀야 하는 것으로 보았을 것입니다.

독수리는 로마 건국신화에도 등장합니다. 로마를 세운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어머니는 공주였는데 처녀의 몸으로 아기를 낳게 되자 형제는 갈대바구니에 담겨 강에 띄워지게 됩니다.

이 쌍둥이가 이른 곳은 늑대들의 보금자리 기슭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쌍둥이는 잡아먹히지 않고 도리어 늑대가 물려주는 젖을 먹고 자라게 됩니다. 젖이 떨어지고는 딱따구리가 물어다 주는 먹이를 먹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다가 어느 농부의 눈에 띄어 농부의 집에서 자라게 되는데 뛰어난 목동이 됩니다.

청년이 되어 차츰 많은 사람을 대하게 된 로물루스 형제는 자신들의 출생비밀을 알게 되고, 이에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찾아갑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었고, 간신배들이 우글거리고 있었습니다. 이에 형제는 그곳을 징벌하고 새로이 나라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함께 나라를 세웠으나 따르는 무리들에 의해 왕위를 다투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각각 다른 지역을 담당하기로 하고 경계를 설정하였습니다만, 서로 위협을 느끼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마침내 두 사람은 신에게 가서 누가 왕이 되어야 할지를 물어보게 되었습니다.

“로물루스의 머리 위에는 독수리가 열두 마리 있고, 레무스 머리 위에는 여섯 마리가 있구나.”

이렇게 되자 로물루스는 내가 왕이 되면 나라가 1천200년 계속될 것이고, 레무스가 왕이 되면 600년 밖에 가지 못할 것이라는 계시라며 왕위에 오르려 하였습니다. 이에 레무스는 칼을 뽑았지만 재빠른 형의 손에 죽음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로물루스의 이름을 따서 ‘로마’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뒤, 로마는 실제로 1천200년을 이어갔고, 유화적인 병합 정책으로 갈수록 세를 늘렸습니다. 이에 합스부르크가,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는 물론 나폴레옹의 프랑스 등 옛 로마의 많은 후손 나라들이 독수리를 상징물로 내세웠습니다. 최근에는 히틀러까지도 로마 군단 상징물인 독수리를 휘장으로 내걸었습니다.

모두가 로마 제국의 번영을 닮고 싶어 했던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결코 그냥 보아 넘길 수 없는 독수리입니다. 멀리 보는 예지력과 적극적인 과단성이 절대 권력의 이미지와 닿아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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