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진 헌 바지 남에게 그냥 주기를 아까워 한 왕
헤진 헌 바지 남에게 그냥 주기를 아까워 한 왕
  • 승인 2016.05.30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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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규 전중리초등
학교장
영원한 짝사랑이라고 하는 손자가 광명에서 기차를 타고 대구에 왔다. 남들은 무어라 하든지 나에게는 귀여운 다섯 살짜리 손자다.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기도 하고 행동이 곱살스럽다. 그저 사랑스럽다. 그래서 짝사랑인가.

다음날 섬진강에서 다슬기를 줍고 저녁 무렵 돌아오는 승용차 안에서 손자는 신이 나서 노래를 부르고 떠들었다. 손자의 입에서 좋아하는 사람의 순위가 나오는데 할머니는 3위이고, 할아버지는 4위이다. 조용히 듣던 사람들이 까르르 웃는데 ‘엄마는 500위이다.’한다. 더욱 충격적인 말은 외계인보다도 못하다고 하였다. 다들 웃는데 나는 입을 다물고 손자의 말을 곱씹어 보았다.

‘아이에게 엄마의 존재는?’ 참으로 궁금하였다. 며느리는 결혼 후 부부간에 언쟁조차도 없었다고 한다. 시부모 앞에서는 자식을 꾸짖는 것을 본 적도 없었다. 그들 가정의 일상생활을 살펴보면 그저 평범한 요즘 젊은이와 일상 다르지 않다. 손자에게는 엄마와의 관계에 어떤 비밀이 있을 것만 같다. 무심코 ‘한두 번 찡그린 일은 없었을까?’

김진섭이 쓴 ‘모송론(母頌論)’은 어머니의 절대적인 사랑에 대한 수필이다. 감동적인 모성 다섯 가지의 특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자신을 잊어버릴 만큼 지극한 사랑, 한없는 자애로움, 최대한의 동정, 애틋하고 가깝게 여기는 연민,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사랑, 괴로움이나 즐거움 등을 함께 느끼는 사람이 어머니이다.

어머니의 고결한 사랑은 결코 변함이 없다. 어린아이가 울 때 어머니를 향해서 우는 것만 보아도, 괴로움이 있을 때 어머니의 품에 안기는 것만 보아도 기댈 언덕은 어머니인 것이다. 평소 어린 손자의 모습도 매한가지이다.

다슬기를 잡으면서 물에 젖어 벗어놓은 손자의 헌 바지를 집에 가져왔다. 버릴까 말까 생각이 복잡하였었다.

이익의 성호사설에는 ‘애일고(愛一袴)’라는 글이 있다. 헌 바지를 남에게 주기를 아까워해서 아껴둔다는 뜻이다. 고의(袴衣)는 남자의 여름 홑바지를 말한다. 적삼은 홑저고리를 말한다. 어릴 적 많이 듣던 고의적삼은 여름에 입는 남자의 홑바지와 홑저고리다.

이익은 통감절요에 나오는 ‘명주애일빈일소(明主愛一嚬一笑)’라는 소소한 이야기를 요점만 적어서 사설(僿說)로 남겼다.

중국 한(韓)나라 왕 소후는 신불해를 재상으로 등용하여 부국강병책과 법치주의에 의한 통치로 나라를 강국으로 만들었다. 어느 날 왕 소후는 가신에게 낡은 바지를 장롱에 잘 보관하라고 주었다.

가신은 왕 소후에게 낡은 바지를 다른 신하에게 주지 않고 장롱에 넣어 두면 백성들이 인색하고 덕이 없는 군주로 여길 것이라 하였다.

왕 소후는 ‘현명한 임금은 한 번 찡그리거나 한 번 웃는 것도 아낀다.(明主愛一嚬一笑)’는 말을 들었다. 군주가 함부로 얼굴을 찡그리거나 웃으면 안 되듯이 신하에게 옷을 내리는 일도 삼가야 한다. 이 옷을 내가 가진다는 말은 아니다. 공을 세운 신하에게 옷을 주려고 하는데 아직 그런 신하가 없으니 맡아두는 것이라 하였다.

이 말은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은 생각 없이 감정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모름지기 남의 앞에 선 사람은 항상 언행을 조심하고 신중해야 한다는 것을 비유로 나타낸 고사이다.

이익은 덧붙여 찡그리고 웃는 것은 자취가 없지만, 오히려 그렇게 하는 것조차도 아꼈다. 하물며 쓸모 있는 저고리나 바지에 있어서는 더욱 아껴야한다는 것이다. 바지는 여공이 여러 날 동안 겨우 한 필을 짜서 자기 옷을 해 입지 못하고 위에 바친 천으로 만든 것이다. 임금은 재물을 쓸 적에 그것을 만드는 어려움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손발이 얼어 터져도 추위를 면치 못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반드시 백성을 구제하는 바가 있을 것이라는 내용이 애일고이다.

남명 조식은 ‘삼동에 베옷 입고 암혈에 눈비 맞아’가면서 살았다. 추운 겨울에도 여름에나 입는 베옷을 입고 움막에서 눈비를 맞으며 지냈다. 대학자의 풍모를 엿볼 수 있다.

앞으론 이런 인물이 나왔으면 좋겠다. 교직에 있을 때 학생들에게 시도 때도 없이 생각 없는 감정을 드러낸 적이 너무 많았던 것 같아서다. 그래서 욕심 많은 사람들만 판치는 세상이 온 것 같아 그저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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