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세월 지나온 우리 선조들
어려운 세월 지나온 우리 선조들
  • 승인 2016.06.01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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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후섭 아동문학가·교육학 박사
일전 한국문인협회 인문학콘텐츠개발위원회 주관으로 팔공산 일원에서 세미나가 있었습니다. 첫날 일정을 끝내고 대구은행연수원에서 새벽 한 시가 넘어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첫날 개막 강연을 한데 이어, 유적 답사를 안내하고 또 늦게까지 술자리를 이어 몹시 피곤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혹시 소쩍새 소리를 들을 수 있지는 않을까 하고 창가로 머리를 두고 잠을 청했습니다. 지금이 보리가 익기 직전이고 보면 옛날에는 분명 보릿고개 철이고 그렇다면 소쩍새가 울지 않을까 해서였습니다. 더구나 이곳은 팔공산이니까요. 그러나 이곳은 이미 불빛이 번쩍거리는 도회지나 다름없이 변해서 그런지 소쩍소쩍 울음소리는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양식이 귀해 끼니를 제대로 얻어먹지 못하고 죽어 새가 된 며느리 입장에서 보면 솥이 작다고 울어대었으니 ‘솥작새’라고 해야 할 텐데, 그 새 사람들은 배가 불러서인지 ‘소쩍새’로 바뀌어 불리고 있으니 참으로 무상하다고 생각하며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끝내 소쩍새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러 소리 가운데에서 서정주 시인의 시에 나오는 대로 솟작솟작 ‘솟작새(솥작새)’ 소리를 가려들으려고 귀를 기울였으나 끝내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두어 시가 되었을 무렵 같은 방을 쓰게 된 동료가 마지막 술자리를 마치고 돌아오는 바람에 얼핏 눈을 뜨게 되었는데, 문득 뻐꾸기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뻐꾸기는 듣는 사람에 따라 포곡(布穀)새, 포복(飽腹)새, 박국새, 떡국새 등으로 불리는 슬픈 전설의 주인공입니다. 하나같이 먹는 것과 관련된 전설에서 비롯된 이름입니다.

다시 눈을 붙였으나 뻐꾸기는 꿈속에서 계속 아득하게 울었습니다. 새벽에 도 여전히 울어대었습니다. 문득 ‘새벽에 우는 새는 배가 고파 울고요, 저녁에 우는 새는 님 그리워 운다.’는 옛 노래가 스쳐갔습니다. 지금쯤 알을 낳아야 이십여 일 뒤에 물어다 줄 벌레가 많을 때에 새끼를 부화시킬 수 있을 테니 지금이 새들로서는 가장 많이 울어야 할 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날이 채 밝기도 전에 이번에는 구국구국 국국 멧비둘기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집비둘기의 울음소리와는 또 다른 안타까움이 배어있었습니다.

비둘기는 한자로 ‘구(鳩)’라고 나타냅니다. 이 이름은 ‘구구(九九)’ 거리며 울어대는 것에서 연유하였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 민초들은 여러 가지로 다르게 해석하였습니다.

필자가 초등학교 4학년 때에 여든 셋을 일기로 세상을 떠나신 할머니는 이맘때 쯤 밭둑에서 풀을 뜯다가 멧비둘기 움음 소리가 들려오면 손톱 밑에 검게 배긴 풀잎 때를 들여다보며 ‘신랑 죽고 자식 죽고 헌 투데기 목에 걸고 구국 구국 국구구국 국국!’하며 중얼거리곤 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은 당신 자신을 멧비둘기 울음소리에 대입한 것이었습니다.

그 무렵 필자는 할머니의 한숨소리와 중얼거림이 너무나 애잔하게 가슴에 다가와 그 뒤에도 멧비둘기의 울음소리에 담긴 사연을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지역에 따라 멧비둘기 소리는 조금씩 다르게 불리고 있었지만 그 밑바탕에 깔려있는 정서는 하나 같이 상실의 아픔으로 다 같은 것이었습니다.

기집 죽고 자식 죽고 전지(田地)재산 다 떨구고

나 혼자서 어찌 살꼬 어찌 살꼬 구욱구욱 국국

구꿍 구꿍 기집 죽고 자석(자식) 죽고

구꿍 구꿍 이 내 혼채(혼자) 어째 살꼬 어째 살꼬

먹고 살 길이 없어 집을 떠났다가 돌아와 보니 마누라도 죽고 자식도 죽어 땅을 치며 회한(悔恨)으로 울부짖었던 이 땅의 민초들! 이제 우리는 그 분들이 일구어 놓은 전지(田地)를 파먹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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