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시비
전문가 시비
  • 승인 2016.06.09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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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복 영진전문대
명예교수 지방자치
연구소장
목욕탕에서 때 밀어 주는 사람을 세신사라고 부른다. 전문가의 냄새가 물컹난다. 60줄에 들어 선 잘 아는 세신사의 말을 듣고 감명을 받은 적이 있다.

“배운 것도 없고 어쩌다 이 일에 들어선지 30년이 훨씬 넘었습니다. 일을 하면서도 늘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이제는 떳떳합니다. 자식들 대학 다 보내고 아들이 구미에 있는 대기업에 취직한 지도 3년이 지났습니다. 가까운 시골에 도랑을 끼고 있는 작은 산도 하나 장만해 두었습니다. 몸이 안 따르면 그 곳에 가서 땅을 일구면서 살려고 합니다”

몇 해 전 사우나가 끝날 시간에 늘 청소를 하는 그가 보이지 않고 한 청년이 호스로 바닥에 물을 뿌리고 있었다.

누군가 물었더니 “아버지가 몸이 편찮아 대신 청소를 하고 있습니다” 라는 대답을 들었다. 대학에 다니던 그의 아들이었다. 때밀이 직업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그 아버지, 그 아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처럼 전문가라는 말이 회자된 때도 없었던 것 같다. 직업의 수가 많고 적음에 따라 선진 문명국의 서열이 나눠지는 시대다.

우리나라의 직업 수는 11만655개(2016.2월 기준)나 된다고 한다. 어느 한 가지 일에서 상대를 뛰어넘는 특성과 개성을 가질 때 전문가라는 칭호를 얻는다. 전문가라고 하면 좋은 대접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고문전문가라는 말도 있었고 기업의 술대접 상무라든가 매 맞아 가면서 버스사고를 수습하는 전문가도 있었다.

인간사회의 변형에 따라 전문가의 종류와 기능도 달라지고 있다. 세프라는 말이 유행하면서 우리가 늘 먹는 음식분야에서도 다양한 전문가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이들은 종래의 음식을 과학적· 체계적으로 다듬어 가면서 세련된 모습으로 만들어 내는 기술이 있다. 여기에 여러 정보 체널들이 양념이 되어 그들의 활동에 고소하게 기름을 쳐 주고 있는 것이다.

인간 삶의 질과 폭이 커질수록 사회는 개성의 시대로 치닫는다. 개성과 전문성은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요즘 젊은이들 가운데는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개인이 특성을 살려서 일에 몰두하다 보면 나름의 전문성이 쌓이게 된다. 전문화가 된다고 해서 반드시 우리 사회가 행복해 진다거나 개인의 발전이 보장된다고만 말 할 수 없다.

인간은 생존에 적응할 수 있게 만들어진 총화적 개체이므로 전문화가 오히려 인간 삶을 혼란에 빠뜨릴 수도 있다. 전문화가 최상이 될 수 없다는 의미다. 야구의 홈런왕이나 축구선수는 그 분야에서는 남이 따를 수 없는 전문가지만 여타 분야에서는 맹물이다. 다소 성공한 운동선수들이 연예계에 이름을 올려 변신을 시도하는 것을 보면 뭔가 뒷맛이 개운치 않다.

친구의 아들이 증권회사 지점장이다. 증권 전문가다. 아들의 권유로 퇴직금과 모아 둔 돈을 넣었다가 깡통 신세가 되었다. 증권사의 직원 가운데 제 집 가진 사람이 없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전문가는 완전무결한 존재가 아니고 남보다 약간 뛰어 난 위치에 있을 뿐이다.

어쩌면 전문가와 비전문가는 종이 한 장 차이일지도 모른다.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사회를 어지럽게 만드는 경우를 우리는 심심찮게 보고 있다. 법률전문가인 변호사가 재물 모으기에 탐닉, 법조계를 망신시키는 행태를 보이는가 하면 전문적인 가수가 화가 행세를 하면서 대작 놀음으로 화단을 짓밟은 일을 보면서 전문가의 범주가 어디까진지 의문을 주기도 한다.

재미있는 일도 있다. 결혼상담소장은 결혼을 원하는 남녀의 정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면서 짝을 맺어주는 결혼전문가다. 반면 이혼전문 변호사는 이혼을 하려는 당사자에게 위자료를 많이 받아준다면서 이혼을 부추긴다. 이 틈새에는 이혼을 말리는 조정전문가도 있다.

인간 삶의 무대는 정말 아이러니 하다. 나는 전문가라는 말이 너무 쉽게 통용되는 우리사회가 못 마땅하다. 자칭 전문가도 활개 치는 세상이다. 전문가의 고지는 굉장히 높고 그리고 깊다. 평생 높은 산을 찾아 올라야 하고 물이 나올 때 까지 땅을 파야 한다. 요즘 젊은이들이 쉽게 하는 말이 있다. 한 곳에 물을 파다가 물이 안 나오면 여러 곳으로 옮겨가면서 땅을 파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전문가와 사이비 전문가, 비전문가의 판가름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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