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이 그어준 국경선 - 멀리 보는 눈이 필요하다
닭이 그어준 국경선 - 멀리 보는 눈이 필요하다
  • 승인 2016.06.28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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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후섭 아동문학가
교육학박사
이탈리아 중부 지방의 두 도시 피렌체(Firenze)와 시에나(Sienna)는 지금도 서로 경쟁하는 라이벌 관계입니다.

피렌체는 14세기 경 시작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중심지로 미켈란젤로, 지오토, 레오나르도 다 빈치 등 유명 예술가들을 배출한 곳입니다. 이곳이 피렌체 즉 ‘꽃의 도시’라고 불리게 된 데에는 피렌체의 접두어 ‘Fiore’가 ‘꽃’이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도시를 지배했던 메디치 가문의 문장이 바로 ‘백합꽃’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이곳은 영어식 발음으로도 역시 꽃의 마을이라는 뜻을 지닌 플로렌스(Florence)로 불리고 있습니다.

이 피렌체와 메디치가가 있어 수많은 예술가들이 예술혼을 불태울 수 있었습니다.

시에나도 대단한 예술 도시입니다. 시에나는 전 지역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역사지구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15세기까지 상업과 교통의 중심지로 번성했고, 십자군 원정의 통과점이 되기도 했습니다. 14세기 초에 일어난 시에나 화풍(畵風)은 피렌체와 로마에 영향을 줄 만큼 예술도 크게 발전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뒤, 이웃도시인 피렌체와의 경쟁에서 밀려 다소 쇠락하였는데 오히려 그 덕분에 옛 모습이 더 잘 보존되고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청이 있는 ‘캄포 광장(Piazza del campo)’을 중심으로 중세 자치 도시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당시 사람들의 건축 의도와 예술 정신을 잘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시에나와 피렌체는 같은 토스카나주(州)에 있으면서 서로 경쟁하여 지금은 피렌체가 토스카나주의 주도(州都)이고, 시에나는 거기에 속한 시에나현(縣)의 현도(縣都)입니다. 외형적으로는 시에나가 다소 밀리는 형국입니다만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그 거리는 50여 킬로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경계선은 피렌체에서 40여 킬로미터, 시에나에서 10여 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에 그어져 있습니다.

이 경계선은 일찌감치 날기를 포기하고 인간에게 순치(馴致)된 조류인 닭이 그었다고 합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져 옵니다.

우리나라가 삼국시대를 거쳐 왔듯이 이곳도 피렌체공국과 시에나공국으로 나뉘어 치열하게 전쟁을 치렀습니다. 전쟁은 오래 계속되었고 희생은 점점 늘어났습니다.

이에 이곳 사람들은 평화협정을 맺기로 합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문제는 어디까지를 국경으로 할까 하는 문제였습니다. 이리하여 짜낸 묘안이 이른 새벽 첫닭이 울 때에 양쪽에서 각각 말을 탄 기사가 자기 나라에서 출발하여 만나는 지점에 국경을 정하기로 한 것입니다.

기사가 출발하는 시각은 양쪽 나라에서 파견된 장관이 지켜보기로 하였습니다.

시에나는 크고 힘센 흰 닭을 구하여 모이를 많이 주었습니다. 모이를 많이 먹고 건강하여야 일찍 일어나 또 먹을 것을 달라고 울어댈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피렌체 사람들은 모여서 의논을 한 결과, 중간 크기의 검은 닭을 구하여 모이를 제대로 주지 않았습니다. 이른 새벽에 울게 하려면 모이를 적게 주고 굶겨야 한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결과는 피렌체의 승리였습니다. 쓰러지지 않을 만큼만 모이를 주고 이른 새벽 스스로 먹이를 찾도록 훈련을 시킨 피렌체의 판단이 옳았던 것입니다. 시에나의 장관이 지켜보는 가운데에 첫닭 울음소리를 듣고 달리기 시작한 피렌체의 기사가 40여 킬로미터 달려갔을 때에 시에나의 기사는 겨우 10여 킬로미터를 달려왔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모든 일에 어떠한 지혜를 동원해야 하는가에 대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이곳 피렌체 와이너리에서 생산되는 와인에는 지금도 검은 닭이 그려져 있는 상표가 붙어있습니다. 이는 아마도 당시의 교훈을 오래 이어가기 위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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