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의 돌로 동해를 메우려는 뜻은 - 아무리 헛되다 하더라도
서산의 돌로 동해를 메우려는 뜻은 - 아무리 헛되다 하더라도
  • 승인 2016.07.26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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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후섭 아동문학가·교육학박사
무오사화로 희생된 선비 탁영 김일손(濯纓 金馹孫, 1464∼1498) 선생이 쓴 ‘두류기행록(頭流紀行錄)’ 중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내가 중(僧)에게 말하기를, ‘하늘과 땅 사이에 바다는 넓고 육지는 적은데, 우리 청구(靑邱)는 산이 평지보다 많고 국가의 인구는 날로 번성하여 수용할 곳이 없습니다. 그대의 자비심은 곧 중생을 위하는 마음일 테니, 두류산이 뻗어 내린 뿌리를 거슬러 올라 장백산(長白山)에서부터 평평하게 깎아내려 남해를 메워 만 리의 평원을 만들면, 백성들이 편히 살 곳을 마련해주는 일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 들판을 복전(福田)으로 삼으면 정위(精衛)보다 오히려 낫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자, 스님이 말하기를, ‘감당할 수 없는 일입니다’라고 하였다”

이 장면은 탁영 선생이 일두 정여창(鄭汝昌, 1450∼1504) 선생과 더불어 당시 두류산으로도 불린 오늘날의 지리산으로 산행을 가서 만난 스님과 이야기를 나눈 장면을 적은 것입니다.

탁영 선생은 스님에게 높은 도력으로 우리나라의 모든 산을 깎아 바다를 메우면 넓은 밭이 될 테이니 그게 어떻겠느냐고 묻습니다.

참으로 치기어린 듯 하면서도 호탕한 대화로 다가옵니다.

그런데 이 구절에서 그냥 흘려보낼 수 없는 것이 ‘정위(精衛)’라는 새(鳥)입니다. 정위는 한 움큼의 크기도 안 되는 작은 새인데도 제 입에 맞는 돌멩이를 물어와 동해를 메우려 합니다. 물론 그 결심의 원천에는 복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탁영 선생은 인간을 무모한 복수에 불타고 있는 한낱 새에 빗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위에 대한 이야기는 ‘문선(文選)’ 오도부 편과 ‘산해경(山海經)’ 등 여러 고전에 나옵니다.

여름(夏)을 관장하는 염제(炎帝)의 딸 여왜(女娃)가 유람 중 동해에 이릅니다. 이때 용왕의 방탕한 아들이 이 여왜에게 흑심을 품습니다. 여왜의 ‘왜(娃)’는 글자 자체에 이미 ‘예쁘다, 미인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용왕의 아들은 어떤 의도에서였는지 큰 파도를 일으킵니다. 이에 그만 발을 헛디딘 여왜는 바다에 빠져 숨을 거두고 맙니다. 그 순간, 여왜의 혼령은 새(鳥)로 변해 날아오릅니다.

정위는 자신이 억울하게 죽은 것에 대해 복수를 하려고 날마다 서산(西山)의 나무와 돌을 물어날라 동해를 메우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매울 수가 없었습니다. 정와는 아무리 목이 말라도 자신이 빠져죽은 동해의 물은 결코 마시지 않았습니다.

이 새의 울음소리가 ‘정위 정위!’로 들렸다 하여 ‘정위’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물론 기어이 복수를 하겠다고 맹세를 한 새라 하여 서조(誓鳥), 원망을 품고 있다하여 원금, 결심하는 바를 꼭 지키려 하는 뜻을 세웠다 하여 지조(志鳥)라고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쌀 찧을 정(精)’, ‘지킬 위(衛)’에서 보듯이 정위(精衛)라는 이름 자체에 이미 무엇을 지키려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정위전해’라는 고사성어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이 말은 ‘정위새(精衛鳥)가 바다를 메우다’라는 뜻이지만 ‘목적 달성을 위해 온갖 곤란을 무릅쓰고 고군분투하다’, ‘깊은 원한을 갚으려고 노력하다’ 등의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무모한 일을 하여 헛된 고생이 되다.’와 같이 어떤 일에 대한 인간의 한계 등을 비유하는 말로도 많이 쓰입니다.

그러나 ‘우공이산(愚公移山)’과 더불어 뜻이 가상하면 그 어떤 불가사의한 힘이 도와줄 것이라는 믿음도 품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의 새가 많은 이름으로 불리며 그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은 그만큼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일상의 여러 사상(事象)을 대할 때마다 어떠한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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