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의 점심 약속
어느 날의 점심 약속
  • 승인 2016.08.01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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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윤 새누리교회
담임목사
얼마 전 제대한 아들과 함께 서울에 있는 딸을 만나 점심을 같이 먹기로 했다. 약속 장소를 보니 마침 그 근처에 올해 교회에 새로 온 성도 한 분이 살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그 분을 소개할 겸 해서 그 분에게 혹시 시간이 되는지 물어 보았더니 마침 시간이 된다고 한다.

다행스런 마음으로 그 분과 약속을 하고 이 사실을 바로 가족 SNS로 아이들에게 알렸다. 그런데 일이 이상하게 된 것은 그 때부터였다. 아들 녀석이 영 석연찮은 반응을 보이고 딸도 오랜만에 동생과 함께 하는 자리인데 다른 사람이 끼면 어색하다고 한다. 내가 그 분에 대해 다시 설명을 하고 그 분이 너희들에게 도움이 될 자료도 주실 것이라고 부연설명을 해도 영 시큰둥한 반응이다. 믿었던 아내마저 애들 편을 들며 당신은 왜 그리 일을 키우느냐며 핀잔이다. 불편한 마음을 애써 가라앉히며 그러면 너희 둘이 따로 식사를 하고 우리는 따로 이야기하겠다 했더니 당연한 듯 금방 수용을 해버린다.

집에 돌아와서 아들에게 내가 왜 그 분과 함께 만나자고 했는지를 설명하니 금방 이런 답이 돌아온다. ‘아버지가 왜 그렇게 하셨는지 이해하겠고 그게 우리를 위한 것임도 알겠다. 그런데 만나기로 한 날이 내일인데 사전의논도 없이 오늘 갑자기 아버지 혼자 결정하고 우리들에게 통고하는 방식은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내도 아이들의 일정상 그 날 점심시간이 아니면 적어도 앞으로 1년은 서로 만날 시간이 없다는 것을 당신도 알지 않느냐고 거든다.

내가 식사하며 잠시 얼굴보자는 것인데 뭐가 그리 복잡한지 모르겠다고 항변했더니 세 사람 모두 내가 억지를 부린다며 답답해한다. 아버지라는 권위로 가족의 의견도 묻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결정하고 그 결정대로 따라 오라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아니 이런 간단한 약속까지 일일이 아이들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면 어떻게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나는 그 분에게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자료를 부탁한 상황이었다.

섭섭하기도 하고 괘심하기도 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더니 아내가 다시 결정타를 날린다. 당신이 일하는 방식이 이 정부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합리적인 설명이나 사후대책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사드를 성주에 배치한다고 발표하는 방식이 어찌 그리 똑 같은가 하고 주절거린다.

동병상련이랄까. 불쑥 아내가 나랑 대통령을 같이 취급하니 은근히 대통령을 변호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대통령과 정부는 국민과 국가의 안위를 위해서 사드 문제를 결정한 것이다. 그에 따른 국가 안보적인 그리고 국제 정치적인 문제는 국민 개개인이 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긴급하고 중대한 안보상의 문제를 어찌 국민 모두에게 동의를 얻어서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우리 아이들이 평소에 비교적 순응적인 편이고 아내도 무조건 아이들과 한편이 되어 대드는 성격도 아니었다. 그런 네 명의 가족 중 세 명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내 방식에 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약속한 그 날, 아이들과 함께 그 분을 만나 잠시 인사만 하고 식사는 다른 식당에서 따로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덕분에 그 전날의 논란으로 인한 어색함 없이 모두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앞으로 일을 진행하면서 일일이 사람들의 동의를 얻고 설득하는 것에 대한 본능적인 피로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제 가정에서도 가장의 권위로 어떤 것을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쉽지 않게 되었다. 가족 구성원들의 원만한 합의가 요구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다소 시간이 늦어진다 하더라도 합리적인 절차를 밟고 충분히 설명을 한 후에 최종 결정을 하는 것이 공동체의 평안을 위해서 훨씬 유익하다는 것이다.

요즈음 사드 배치로 인한 갈등과 다양한 의견들이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더 뜨겁게 분출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정부는 사드배치와 관련된 합리적인 절차와 의견 수렴을 위해 지금보다 훨씬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비록 모든 사람의 동의를 얻고 모두가 만족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을지라도 정부의 그러한 노력과 태도는 우리 민족 공동체의 아픔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건강한 가족 공동체의 가장 큰 걸림돌이 가장의 가부장적 권위의식인 것처럼 이런 노력에 가장 큰 걸림돌은 정부 당국의 경직된 권위의식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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