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똥도 역사를 바꾼다
새똥도 역사를 바꾼다
  • 승인 2016.08.09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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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후섭
아동문학가·교육학박사
중국 어느 강가 가느다란 나뭇가지에 앉았던 작은 나비의 조그마한 날갯짓 하나가 미국의 미시피강에 폭우를 내리게 하여 수많은 이재민을 내게 한다는 가설이 있듯이, 이 세상의 역사는 늘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닌가 합니다.

신흥 강국을 자랑하던 페루는 1884년 이웃 칠레와의 전쟁에서 많은 땅을 잃고 남미 최빈국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그 뒷면에는 새똥이 있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기 40여 년 전 페루에서는 노동자들 사이에서 한 소문이 퍼졌습니다. 돌섬으로 이뤄진 친차 군도(群島)에 가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친차 군도에는 구아노라 불리는 바닷새와 박쥐 등의 배설물이 산처럼 높이 쌓여있었습니다. 구아노는 비료의 3요소인 질소, 인산, 칼륨 중에서 특히 인산이 풍부한 천연 비료였습니다.

여러 차례 역사의 소용돌이를 거치면서 지력(地力)이 떨어져 농산물 생산이 줄어든 유럽에서 이 새똥을 수입해 갔습니다.

특히 영국에서 이를 대거 수입해 가면서 페루 정부에는 많은 수익이 생겼습니다. 그리하여 이 섬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새똥을 채취하여 배에 싣는 일을 하는 노동자에게 비싼 임금을 주었던 것입니다.

페루는 구아노를 팔아 남미 최고 부국으로 발돋움하였습니다. 그러나 페루 정부에서는 이 새똥이 언젠가는 고갈될 것을 짐작하였습니다. 비록 지금은 무한정으로 보이지만 모든 자원은 유한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하여 페루 정부에서는 보다 항구적인 수입원을 마련하기 위하여 국채를 발행하여 카리브해에 있는 사탕수수밭 경작권을 대거 사들였습니다.

이 사탕수수밭은 주로 유럽국가가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설탕 수요가 많아지면서 사탕수수밭은 미래의 수입원으로 떠올랐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탕수수밭은 엄청난 가뭄으로 흉작이 되었고, 정부는 채무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거기다가 친차 군도의 구아노도 서서히 바닥을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이에 페루는 새로운 구아노 생산지를 찾게 되었습니다. 나라 안에서 더 이상 구아노 생산지를 찾지 못한 정부에서는 볼리비아 사막 가운데에 구아노가 많이 매장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볼리비아와 협상을 합니다.

때마침 볼리비아는 인근 칠레와 영토 다툼으로 전쟁 중이었습니다. 이에 볼리비아는 페루에게 구아노 채굴권을 주는 대신에 칠레와의 전쟁에 동참해 줄 것을 요구합니다.

페루에서는 볼리비아 군대와 자국의 군대를 합치면 칠레 군사의 곱절에 가까운 수이기 때문에 당연히 이길 것으로 생각하고 이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거기다가 구아노의 주 수입국가였던 영국이 전쟁에서 이기면 일정한 보상을 받는다는 조건으로 칠레를 도와주고 있었으므로 페루는 더욱 고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국에서 구아노 수입을 멈추자 페루는 다른 나라에 팔아야만 하였습니다. 가격은 크게 떨어졌고 그 수량도 줄어들었습니다.

또한 전쟁 중이라 구아노 발굴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고, 발굴 조건도 열악하였습니다. 섬에서 바로 배에 싣던 때와는 달리 사막에서 해안까지 구아노을 운반하여야 했는데 그 수량은 만족할 만하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구아노로 한때 남미 최고 부국을 자랑하던 페루는 그만 남미 최빈국으로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페루 입장에서 보면 새똥은 큰 횡재로 보였지만 그것은 잠시뿐이었고, 결국은 비극을 부르는 서곡이 되고 말았습니다.

페루는 이 구아노로 인하여 태평양전쟁(1879∼1883)에 개입하게 되었고, 결국 칠레와 영국 동맹국으로부터 온전히 자국 영토를 지키는 전쟁으로 이 전쟁을 떠안아야 하였던 것입니다.

마침내 페루는 이 전쟁에서 패배, 친차 군도를 비롯한 많은 영토를 칠레와 영국에 넘겨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새똥더미 구아노, 수많은 사람을 살렸지만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갔습니다.

한때는 영광이었지만 한때는 쓰라린 고통이었습니다.

자, 이제 역사는 또 어디에서 시작되고 어떠한 방향으로 전개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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