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와 아직’ 사이
‘이미와 아직’ 사이
  • 승인 2016.08.14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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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윤 새누리교회
담임목사
헬라 철학자들의 지혜가 진리의 담론에 끼친 영향은 매우 크다. 진리에 대한 그들의 사색과 토론은 인류의 놀라운 지적 자산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이중적 논법도 그 자산의 하나이다. 이중적 논법은 양극의 개념을 함께 나열함으로써 더 분명한 진리를 드러내는 수사법으로 양립주의라고도 한다. 이 수사법은 기독교 신앙에서 계시에 의해 생성된 신학적 개념을 설명하는데도 매우 중요한 기여를 했다. ‘인간은 죄인이면서도 의인이다’ 혹은 ‘예수는 인간이면서도 하나님이다’라는 표현은 양립주의를 활용하여 드러낸 기독교의 신학적 개념이다.

이 양립주의를 사용하여 표현한 개념가운데 ‘이미 성취되었으나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다’ 라는 표현이 있다. ‘이미와 아직’ 이라는 말로 압축될 수 있는 이 말의 핵심은 ‘이미와 아직’ 사이에 있는 긴장성이다. ‘이미’라는 성취는 안정과 기쁨을 주지만, 거기에 고착될 때 더 이상의 성숙과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 또 ‘아직’이라는 미완성은 그것을 이루기 위한 추구의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 그것만으로는 공허함이 있다. 그러나 이 둘 사이의 긴장감과 균형은 종교와 사회 그리고 어떤 한 개인의 건강성에도 매우 중요한 동력이 된다.

종교에서 이 긴장감은 전도자와 구도자 간의 균형을 유지하게 한다. ‘이미’ 구원이나 득도에 이르렀다는 확신은 진리를 먼저 안 자, 전도자로서의 위치에 있게 하지만 지나치면 교만을 넘어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독소가 될 수 있다. 반면 ‘아직’ 완성되지 않은 구원에 대한 갈망은 그로하여금 구도자의 옷을 입게 한다. 모든 종교는 나름대로 ‘이미’라는 공간과 ‘아직’이라는 공간을 같이 가지고 있다. 그래서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이미’라는 공간에서 삶의 안정감과 기쁨을 누리고 ‘아직’이라는 공간에서 완성을 추구한다. 만약 종교가 ‘이미’라는 공간을 잃어버리면 인간은 공허의 종이 되고, ‘아직’이라는 공간을 잃어버리면, 인간은 교만하게 되고 경박하게 된다. 그래서 성숙한 종교는 ‘이미와 아직’ 사이의 선을 긴장감을 가지고 이동하며 균형을 유지한다. 어떤 시대에는 ‘이미’가 강조되고 또 어느 시대에는 ‘아직’이 강조되면서 각 종교는 그 진리가운데 현실을 담아낸다.

이 긴장의 균형은 종교에서와 같이 사회에서도 필요하다. 즉 사회에서는 ‘이미’ 이루어진 것에 대한 감사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감 간의 긴장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최소한 근현대사에서 우리 민족이 이미 이루어낸 놀라운 성취를 평가하고 그에 대해 합당한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또한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미래적 과업에 대해서 마땅한 책임감을 함께 가져야 한다. 이 둘 사이의 긴장감은 우리에게 건강한 역사의식과 시민정신을 갖게 하여 성숙한 시민사회를 이루는 동력이 될 것이다.

또한 이러한 긴장감은 보수와 진보 간에도 필요하다. 현재 우리 사회의 곳곳에는 보수와 진보가 심각하게 대립하고 있다. 이러한 보수와 진보 간의 소모적 투쟁은 우리 사회의 큰 손실을 유발하여 국가적 위기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건강한 사회는 ‘이미’라는 보수와 ‘아직’이라는 진보 간에 건강한 긴장이 유지되는 곳이다. 그것을 위해서는 보수와 진보라는 양 극단의 대립이 아닌 양 극단의 양립에서 오는 긴장감을 유발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내년에 있을 대통령 선거에서는 보수 정권 10년이 국민에 의해 평가를 받을 것이다. 시기적으로는 내년에 진보 정권이 들어서야 보수와 진보 간의 긴장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진보정당이 수권 정당으로서의 역량을 갖추지 못하거나 현재의 보수정당이 정권 재창출을 위한 악수를 둔다면 이 긴장감은 유지되지 못하고 우리 사회는 다시 퇴보하게 될 것이다.

‘이미와 아직’의 긴장성은 종교와 사회 이외에 한 개인에게도 필요하다. 개인에게 있어서 ‘이미와 아직’의 긴장성은 자족과 추구간의 균형을 이루게 한다. ‘이미’ 나에게 주어진 것에 대한 자족과 ‘아직’ 내가 성취하지 못한 것에 대한 추구는 우리 행복의 건강한 근원이 된다. 이러한 측면에서의 가장 큰 걸림돌은 청년들이다. 이 시대 우리 청년들은 주어진 것에 대한 자족감과 성취하지 못한 것에 대한 추구의 기회가 가장 작은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청년문제는 실로 심각하다. 그들이 직면하는 ‘이미와 아직’은 그들을 긴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위협한다.

왜냐하면 이미 가진 것에 비해 아직 추구할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너무 작기 때문이다. 이것이 청년들이 추구할 수 있는 기회를 확충하는 것에 국가의 정책적 집중이 이루어져야 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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