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음에 대하여
어리석음에 대하여
  • 승인 2016.08.17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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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규성 논설위원
옛날 어느 곳에 아름답기로 유명한 공주가 있었다. 유명하다는 말은 남들이 그렇게 인정했다는 의미겠지만, 본인은 더욱 더 기고만장했다.

어느 날 궁궐 안의 신하들이 열심히 낚시 얘기를 하는 것을 듣고 호기심이 발동한 공주가 갑자기 숲속으로 낚시를 떠났다.

그런데 왜 공주가 숲속으로 갔느냐 하면, 듣기로는 성 뒤의 숲속에는 크지 않은 호수가 하나 있는데, 그 호수에는 엄청나게 큰 잉어가 한 마리 살고 있다고 소문이 나 있었다.

게다가 이 잉어는 누구나 쉽게 낚을 수 있는 다른 물고기와는 달리 절대로 낚시 바늘에 걸려들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었다.

이따금 잔잔한 호수의 수면위로 우아한 자태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누가 어떤 낚시 바늘로 시도해도, 어떤 미끼를 끼워도, 또 아무리 끈기 있게 기다려도 소용이 없었다. 마치 낚시꾼을 비웃듯이 낚시꾼 앞에 유유히 모습을 드러내곤 꼬리지느러미로 세차게 물을 치면서 호수 밑으로 사라지곤 했다.

궁궐 안은 온통 이 잉어 얘기뿐이었다. 누가 그 잉어를 잡을 뻔 했다는 둥, 어떤 미끼가 좋다는 둥, 새벽에 가면 잡을 수 있다는 둥, 잉어가 성안 모든 백성들의 관심을 끌고 있었다. 그 말을 들은 공주는 온통 사람들의 관심을 빼앗긴 데 대한 질투심이었는지, 아니면 단순한 호기심이었는지, 혹은 자만심이었는지, 용감하게 나섰다.

“그럼! 제가 한번 그 잉어를 잡아보지요. 남자들은 누구나 저를 한번 보면 저의 포로가 되고 말지요. 인간도 그럴진데, 고작 잉어 따위가 나한테 당하겠어요. 제가 그 잉어를 잡아 오지요.”

이 말을 듣고 있던 궁궐의 신하들은, 그 잉어가 과연 공주가 생각하는 남자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속으로는 어이없어 했지만, 겉으로는 감히 도도한 공주의 말에 반대하지 못했다. 그들은 왕국의 최고의 장인이 특별히 공주를 위해 제작한 최고의 낚싯대를 들려, 또 공주가 좋아하는 시종까지 딸려서 공주를 숲속의 호수로 보냈다.

호수에 도착한 공주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놀랍고 어리석게도 그 아름다운 얼굴을 호수의 수면에 비추는 것이었다. 공주는 호수위로 몸을 내밀고, “잉어야, 잉어야, 이리 나와, 나 좀 보렴!”하고 말했다.

공주는 생각했다. 만약 잉어가 나오면, 잉어에게 다정한 눈길을 한 번 준 뒤, 천천히 “사양 말고 내 먹이를 한번 먹어주렴!”하고 말할 생각이었다. 지금까지 어떤 남자든 공주가 곁눈질 한번만 살짝 하면 단번에 넘어왔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었겠지만, 신하들에게 으스대고 싶은 마음이 앞선 공주는 잉어에게 다정하게 미소를 보낼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잉어가 나타나지 않았다. 공주가 제 아무리 아름다운들, 잉어가 나타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랴? 게다가 잉어가 다른 남자들 같은지 아닌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애가 탄 공주가 더욱 더 아름다운 자태를 호수 쪽으로 밀어붙였다.

깜짝 놀란 시종은 공주가 호수에 빠질까 봐 공주를 말렸다. “위험합니다. 공주님!” “그럼 도대체 어떻게 잉어를 불러낸단 말이야!”

공주가 말을 듣지 않자 난처해진 시종은 자신의 뛰어난 피리솜씨를 순간적으로 떠올렸다. “공주님, 제가 피리를 아주 잘 부는데, 이 피리소리로 잉어를 한번 불러내 볼까요?” “물속에서는 아주 가까운 곳이 아니면 공주님의 아름다운 자태가 보이질 않지만, 피리소리라면 이 호수 저 건너편까지도 울려 퍼질 거예요.” “아름다운 피리소리에 이끌려 잉어가 이리 오면, 그때 공주님이 나서시면 됩니다.” 공주가 대답했다. “그거 참 좋은 생각이야!”

이리하여 아름답기로 유명한 도도한 공주와 피리를 잘 부는 시종이 호수에 얼굴을 내밀고 피리를 불며 잉어를 기다리게 되었다. 어느 듯 해가 산을 넘어 가고 있었지만, 여전히 두 사람은 하염없이 어리석게 잉어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 장면이 슬픈 것은 정작 그들은 자신들이 어리석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안목과 식견과 특기와 지식을 맹신하고 자신이 잘 났다고 생각하는, 아니면 어리석지만 그 자리에 있기 때문에 그렇게 착각한, 정부의 도도한 고위관리들이 그런 것들이 통할 리가 없는 백성·잉어를 기다리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수면 밑에서 백성·잉어에게 통할 수 있는 낚시바늘,정책과 미끼,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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