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차례 있었던 명예로운 국회
세 차례 있었던 명예로운 국회
  • 승인 2016.08.17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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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열 객원 大記者
전북대 초빙교수
‘국회’는 국민들의 손으로 직접 뽑은 국민의 대표자들이 모인 곳이다. 비례대표들도 정당투표를 통하여 정정당당하게 국회에 들어왔으니 지역선출보다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이들을 가리켜 선량이라고도 부르는데 가장 좋은 사람을 선출했다는 의미다. 따라서 국회의원은 국민으로부터 존경을 받으며 살아가는 정치인이다. 그들에게는 응분의 대우가 주어지는데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법으로 정해졌을 것이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만큼 사회적 책임도 중차대하다. 그래서 불체포 특권과 면책특권까지 부여하며 온갖 특혜를 향수할 수 있도록 제도로 보장한다. 이를 기화로 이른바 김영란법에서 가장 역점적으로 규정했던 부정청탁방지를 위한 광범위한 직업군에서 엉뚱하게 언론인과 교사를 끼어 넣고 국회의원과 시민단체 등을 슬그머니 뺀 것은 모든 청탁은 국회의원만이 독점할 수 있다는 권력과시였다고 단언할 수 있는 빌미를 줬다. 이런 국회가 지난 4·13총선까지 20대째가 되었다. 모든 언론과 국민들은 자기들이 뽑아놓고도 그동안의 국회에 대해서 후한 점수를 주지 않는다. 후한 점수는커녕 날이 갈수록 저질국회, 최악의 국회라는 오명을 덮어씌운다.

역대 국회의원들의 학력이나 경력을 살펴보면 과거와 달리 화려하기 그지없다. 대부분 외국 유학을 다녀왔고 박사학위 등 전문적 지식을 가진 사람이 많다. 겉으로 봐서는 모두 인격자들이고 건전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런데 배지만 달고 나면 사람이 달라지는 것일까.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행태를 보이는 의원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가장 깨끗한 정당을 표방하여 호남돌풍을 일으킨 안철수의 국민의당이 공천헌금과 홍보비용 리베이트 문제로 세 사람의 의원들이 구속될 뻔했다. 불구속으로 재판을 받아야 하니 제대로 된 의정활동은 물 건너갔다. 그래도 20대 국회는 이제 막 시작한 셈이니 앞으로 올바른 국가관과 확고한 역사관에 입각한 정치활동을 전개한다면 지금까지 보아왔던 국회보다는 훨씬 달라진 국회로 거듭날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된다. 그것은 개헌과 관련이 있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개원연설에서부터 이번 국회에서는 반드시 개헌이 되어야 하며 그것도 2년 이내에 완결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어떤 언론기관의 국회의원을 상대로 한 개헌여론조사는 203명이 개헌에 찬성한다고 발표했다. 국회개헌 정족수를 넘는 숫자다. 모처럼 들어보는 유쾌한 소식이다. 개헌은 나라의 기본을 새로 정하는 일이다. 헌법은 국가의 기본법이기 때문에 우리나라를 지탱하고 있는 모든 법적 제도적 장치가 모두 헌법에 기초하여 마련된 것이다. 대통령제냐 내각책임제냐 하는 권력구조를 바꾸는 것만이 개헌의 요체는 아니다. 생명 재산 안보 등 우리가 살아가는 수많은 문제점들이 모두 헌법 속에 녹아있는 것이다. 그동안 집권자들은 자신의 권력을 영구화시키기 위한 ‘나쁜 개헌’을 계속해 왔다.

이승만시절의 발췌개헌과 사사오입개헌 그리고 중임(重任)을 폐지하고 연임할 수 있는 삼선개헌 등 세 차례의 개헌을 모두 일인독재를 강화하고 영구집권을 위한 발판으로 강행했다. 박정희 역시 쿠데타를 합법화시키기 위한 민정참여개헌을 비롯하여 삼선개헌 그리고 유신헌법에 이르기까지 오직 개발독재를 영구화시킨 것으로 개헌을 이용했다.

전두환은 유신헌법을 폐기하고 단임제를 채택하는 개헌을 했지만 대통령 임기를 7년으로 하는 장기집권의 발판을 만들었다. 이처럼 집권자들에 의한 개헌은 한 번의 예외도 없이 오직 독재의 강화 이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국회는 집권자의 요구에 순응하는 거수기에 불과했을 뿐이다. 부끄러운 자화상이지만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의원들은 이에 대한 강한 비판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68세가 된 국회가 그처럼 오랜 세월동안 스스로 결정하고 국민의 뜻을 진정으로 받든 일이 한 번도 없었단 말인가. 나는 우리 국회가 탄생한 이후 세 차례의 영예로운 큰 결정을 한 사실을 말하고 싶다. 그것은 1948년 제헌국회에서다. 8월15일 정부수립이 되기 전에 5·10선거를 통하여 2년 임기의 제헌국회의원들이 선출되었다. 광복 직후였기 때문에 상당수의 애국지사들이 당선되었다. 그들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헌법을 제정하는데 성공했다. 이 헌법에 따라 이승만정부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며 제헌국회는 영광스런 대한민국을 수립하는데 일등공신의 영예를 가졌다.

두 번째 영예는 4대국회가 갖고 있다. 이승만은 4선에 도전하여 3·15부정선거를 획책한다. 이미 야당후보인 조병옥의 사망으로 대통령당선은 걱정이 없었지만 노쇠한 대통령 유고시 이를 승계하려면 부통령이 되어야 한다. 이기붕은 인기가 없어 낙선이 확실하다. 최인규는 1년 전부터 부정선거 계획을 완성했고 실천에 옮겼다. 이에 분노한 학생들의 궐기로 4.19혁명이 일어나 이승만은 하와이로 망명하고 이기붕일가는 자살로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이 때 4대 국회의원들은 혁명의 요구였지만 아무튼 내각책임제 개헌을 단행하고 스스로 국회를 해산하는 용단을 보였다. 세 번째는 13대 국회다. 직선제를 요구하는 6·10항쟁이 절정에 올랐을 때 전두환과 노태우는 6·29항복 선언을 했고 국회는 직선제 개헌을 하면서 자신들의 임기를 1년 줄였다. 모두 헌법과 관련한 영예다. 20대 국회에서도 실기하지 말고 개헌을 의결한 후 선배들의 명예로운 길을 따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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