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는 와인같다
배려는 와인같다
  • 승인 2016.09.01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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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윤 새누리교회
담임목사
최근에 집안 어른 한 분이 돌아 가셨다. 안타깝게도 윗대의 집안 어른끼리 과거에 좀 좋지 않은 일이 있어서 문상하기가 불편한 관계였다. 그런데 그 쪽에서 먼저 조심스럽게 부고를 알려 왔다. 우리도 불편한 마음을 뒤로 하고 함께 갈 수 있는 형제를 다 연락하여 문상을 하기로 했다.

문상을 하며 처음에는 불편한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불편함이 마음 속에서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이십여 년 동안 불편한 관계로 지냈던 그 쪽의 작은 배려 때문이었다. 하긴 어색함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문상하기로 한 우리의 마음을 그쪽이 눈치를 채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장례식 마지막 날까지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눈에 띠지 않지만 느낄 수 있었던 그 쪽의 작은 배려는 이십여 년 동안의 불편함을 말끔히 씻어 주었다.

요양원에 계시면서 돌아가시기 전 몇 년 전에 겨우 세례를 받은 고인에게 집사라는 감투를 씌어 마지막 가시는 길을 정성스럽게 배웅해 주는 교회의 배려도 작은 감동이었다. 우리에게 다가와 고인과 어떻게 되시느냐고 묻는 그 분들의 물음에는 따뜻함이 묻어났다. 이십여 년 동안 불편했던 양 쪽의 관계가 삼일 간의 장례를 계기로 큰 변화를 맞았다. 이전처럼 앞으로도 서로 많이 왕래할 사이는 아니어서 자주 뵐 기회는 없을 것이었다. 그러나 생각하면 스트레스를 받고 말을 하면 좋은 말이 나오지 않은 불편한 관계가 서로 살짝 기분이 좋아지고 참 좋은 분이네 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만큼 달라졌으니 큰 변화임에 틀림없다.

배려는 와인같다. 함께 마셔야 좋을 듯하고 분위기는 시끄럽지 않고 조용한 게 어울린다. 그리 비싸지 않아서 더욱 좋다. 마시면 과하지 않은 취기가 살짝 돈다. 살짝 취하니 상대방이 더 좋아 보인다.

장례식에서 돌아오니 상담 요청이 있었다. 만나서 들어보니 여간 심각한 것이 아니다. 서로가 다른 사람을 만나지 않았어야 할 사람,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으로 여긴다. 원인은 퉁명스러운 태도, 예의없는 말과 행동 때문이었다. 목사스럽게 중재한답시고 해도 쉽지 않다. 목사님에게라도 얘기하니 속이 후련하다니 다행스럽긴 하지만 흥분한 그의 얼굴은 위스키를 마신 듯 불그레하다.

몇 주 전에 대전을 방문할 일이 있었다. 마침 아는 분이 있어서 그 분 댁에 묵기로 했다. 저녁 식사와 함께 한참 동안 이야기하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날씨가 더워 이불을 덥지 않고 있다가 무심결에 이불을 끌어당겨 덮었더니 이불에서 따뜻함이 묻어 나온다. 여름 밤이었지만 조금 사늘해진 몸이 한결 편안하게 침대에 뉘어진다.

잠결에서 기분이 좋아졌다. 이불의 따뜻함에 온 몸의 피로가 풀리는 기분 좋음과 아울러 집주인의 따뜻한 배려가 느껴져 더 기분이 좋아진다. 요즘 세탁기에 그런 기능이 있다는 얘기도 듣긴했지만 내가 놀란 것은 세탁기의 기능이 아니라 집주인의 배려였다.

배려는 정말 와인같다.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서로를 품위있게 만든다. 수년간 비싼 등록금을 내고 취득한 학위와 십 수년 간의 노력으로 성취한 성공으로도 받지 못할 감동을 배려라는 한 잔의 와인은 우리에게 선사해 준다.

밤늦은 시간, 딩동하며 한 통의 문자가 온다. 무언가하여 열어보니 어떤 목사의 교회 행사 초청 문자였다. 여러 가지 관계로 생각해 보면 이런 내용은 단체 문자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보내야 함직하고 한번쯤은 미리 전화로 알려 주었어야 될 내용이었다. 단체 문자로 보낸 초청 글을 읽고 있으려니 얼굴이 다시 얼굴이 불그스레해 진다. 밤늦게 그가 내게 내민 무례함이라는 위스키 한잔에 취한 것이다.

맨 정신으로 살아가기엔 쉽지 않은 세상이다. 그 쉽지 않은 세상을 맨 정신으로 감당하지 못해 천금같은 목숨을 스스로 끊는다. 어저께는 가깝게 지냈던 어떤 분의 소식을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되었다. 결코 그럴 분이 아닌데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다는 것이다. 그 소식에 더위를 식히는 반가운 빗소리마저 우울하게 들린다. 취기가 좀 있어야 살아갈 힘이 나고 사는 것이 좀 재미있을 것 같다. 배려는 와인같다. 살짝 우리를 기분 좋게 하는 와인, 상대를 참 좋게 보이게 하는 와인.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라 느끼게 해 주는 배려라는 와인을 건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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