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 집착하고 있으면 작다는 것 알지 못하고
작은 것 집착하고 있으면 작다는 것 알지 못하고
  • 승인 2016.09.08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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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동광
현광사 주지
불교에서 사람 사는 세상을 비유로 밝힌 가르침이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비유품 (譬喩品)제3”이다. 조용하게 사물을 보거나 생각할 때 일어나는 어두운 마음으로 인해서, 이기적으로 마음이 혼란하게 되어 사회가 어지러워지는 현 시대상을 실재하는 현상으로 부처님은 비유로써 밝히신 것이다.

비유품 제3에서 “여우, 늑대, 야간이들이 짓밝고, 씹으며, 죽은 송장을 뜯어먹어 골육이 낭자하니, … 먹을 것을 찾되 다투고 … 시끄럽게 짓는지라, 곳곳마다 도깨비, 헛깨비, 야차, 악귀들이 있어 사람의 고기를 씹어 먹으며, 독한 벌레들과 모든 악한 짐승들은 새끼를 쳐서 젖을 먹이되 제각기 감추어 두호하건만, 야차가 달려와서 다투어 잡아먹으며, 먹은 뒤에 배가 부르면 악한 마음이 점점 더하여 다투는 소리가 심히 두렵고…” 하셨는데, 이 뜻은 악한 짐승들을 탐욕의 마음에 비유한 것이며, 중생을 바른 인과에서 멀어지게 만든다는 뜻으로 비유한 것이다.

용수보살(龍樹菩薩)의 대지도론(大智度論)에 보면 “바른 인과를 뒤집고, 벽신으로서 복을 구 한다”라고 하셨다. 이것은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경계하신 말씀이다. “벽신”이라고 한 것은 좋은 인과를 지었을 때 반드시 그 갚음이 온다는 뜻으로, 불법을 믿으면 반드시 때가 되면 좋은 인과가 나타날 것인데도 기다리지 못하고 불법을 믿는 마음만으로 금방 좋은 일이 생겨서 빨리 복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은 잘못된 생각이다. 이렇게 잘못된 믿음으로 복을 구하는 것(기복신앙)을 용수보살은 벽사라고 한 것이다.부처님께서 설하신 가르침을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생각해서 사견을 말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혼돈하게 만든다는 것은 결코 모든 사람들을 벽사로 만드는 것이 되는 것이다.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기복적인 신앙심은 깊어지게 마련이다. 작은 것을 구하고자하는 마음으로 기복신앙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큰 것을 잃게 마련이다.

이렇듯 모든 사람들이 인과를 부정하는 것은 성급한 마음 때문이다. 예를 들어 씨를 뿌리면 싹이 나오고, 이것이 잘 자라서 꽃과 열매가 열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수확을 하는 것과 같은 순리를 생각하지 않고, 씨를 뿌리면 바로 수확을 하고자 하는 마음과 같은 것이다.

비유품에서 “구반다 귀신은 흙 위에 걸터앉아 혹 어느 때는 땅에서 한 자나 두 자씩 뛰며, 오고 가고 방종하게 놀고 장난하며 개의 두 다리를 잡아 태질쳐 소리 내지 못하게 하며, 두 발로 목을 눌러 개를 무섭게 하고는 스스로 즐거워 하느니라” 이 뜻은, 자기 마음대로 생각해서 남에게 괴로움을 주거나, 남이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겉으로는 생각해 주는 것처럼 말 하지만, 속으로는 다른 사람이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스스로 즐거워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이 사회는 이기적 사고가 만연해서 남이 잘되는 것은 자신의 것을 빼앗긴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왜 그럴까? 그것은 시기질투가 자신도 모르게 마음에 크게 작용해서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 스스로 못났다고 한탄하거나 자학하는데서 생기는 마음이다. 지신을 학대하는 것은 모든 것을 읽게 할 수도 있는 것이며 자신의 소중함을 전혀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나쁜 마음이다. “모든 귀신이 있어, 그 몸은 길고 큰데 벌거숭이에다 검고 여윈 것들이 항상 그 가운데서 살며, … 그 목구멍이 바늘구멍과 같으며”, “또 모든 귀신이 있어, … 혹은 사람의 고기를 먹고, 혹은 개고기를 먹으며 … 잔인 흉악하며, 기갈이 핍박하여 부르짖으며, … 짐승들이, 배고프고 굶주려서 사방으로 흩어져서 틈새로 엿봄이라” 이 뜻은 각자의 몸을 가지고 복잡한 사회 구조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면서 남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자기만 생각하고 행동하며 살아가고 있고, 자기가 생각한 것에 대해서 바른 것이거나 잘못되었거나 간에 그것에 스스로 집착하고 있으며, 또한 자신이 지어온 그릇의 크기는 생각하지 않고, 큰 것을 가지고자 탐하는 것이 아귀와 같다는 뜻이다.

목구멍이 가늘면 물도 삼키기 어렵기 때문에 목구멍으로 아무것도 들어갈 수 없는 아귀가 더 많은 것을 먹기 위해서 탐욕하는 마음이 증장해서 각자 제멋대로 행동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모든 사물을 한쪽 면만 보지 말고 전체를 보고 해석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한쪽 면만을 보고 단정해 버리는 마음을 비유한 가르침이기도 하다.

작은 것에 집착하고 있으면서 작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 중생인데, 잘못 생각하고 행동한 것이 있으면 스스로 인정하고, 잘못에 대해서 반성하고 고쳐 나가야겠다고 마음먹고 이것을 실천하는데 노력해야 하지만, 다른 사람은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남의 눈치만 살피고, 알더라도 변명을 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기 때문에 중생들의 이러한 미혹한 견해는 짐승들의 흉악하고 배고파하고 남을 엿 보는 것과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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