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호 선생의 ‘가족’
최인호 선생의 ‘가족’
  • 승인 2016.09.12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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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윤 새누리교회
담임목사
민족의 명절, 추석 연휴를 앞두고 있다. 추석에 대한 옛날같은 설레임이야 사라진지 오래지만 그래도 변함없는 것은 가족에 대한 소중함과 애정이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원근 각처에 떨어져 있는 가족들이 명절을 맞아 먼 길을 마다않고 고향을 찾는다.

가족을 생각할 때 내가 가지고 있었던 강한 이미지는 샘터라는 작은 잡지에 연재된 최인호 선생의 ‘가족’이었다. 최인호 선생은 그의 가족에 대한 알콩달콩한 이야기를 특유의 필체로 풀어내어 당시 내겐 아직 미지의 세계였던 부부관계와 아빠의 역할에 대한 소중한 팁을 제공해 주었다.

당시 철학가 김형석과 안병욱 교수의 글을 좋아하셨던 아버지는 내가 즐겨 읽던 최인호 선생의 재기발랄한 글을 싫어하셨다. 두 분 교수의 글과 달리 최인호 선생의 글은 진중함이 없고 가볍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보니 철학자의 진중한 글은 기억에 없는데 최인호 선생의 통통튀는 가족이야기는 여전히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이 신기하다. 심지어 때때로 아내에 대해 고마움과 실망감을 느끼는 순간에도 ‘아 그 때 최인호 선생도 그랬었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나도 그와 같이 가족 안에서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보람을 느끼기도 하고 때로는 상처를 주며 함께 살아 온 것이다.

그런데 최인호 선생의 ‘가족’에 대한 공감이 바뀌는 사건들이 발생하게 되었다. 그중 하나는 막내 동생의 결혼이었다. 중국에 유학 중인 동생이 중국인과 결혼하게 된 것이다. 동생의 결혼 생활을 지켜보며 같은 민족끼리 동일한 언어로 소통해도 소통이 잘 안되는 시대에 모국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른 두 사람이 가족이라는 멍에를 쓰고 살아간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아빠네 식구와는 중국어로, 엄마네 식구와는 한국어로 대화하는 아이가 던지는 삶의 문제는 우리 가족이 전혀 예습하지 못한 것이었다.

최인호 선생의 ‘가족’에서 전혀 등장하지 않은 소재가 연이어 발생하는 동생의 가족 이야기는 우리 사회에서 어느 듯 ‘다문화 가족’이란 이름으로 자리 잡았다. 만나고 헤어지는 가슴아픈 사연들 속에 동생네 부부는 한국과 중국, 양쪽 가족의 애를 태우기도 하고 또 지원을 받아가며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다.

이번 추석을 앞두고 동생네 가족에게 선물을 보내기로 했다. 필요한 게 무언가를 몇 번이나 묻고, 초등학교 다니는 조카가 무엇을 좋아하겠는지를 또래 부모에게 자문도 구했다. 그렇게 구한 물건을 포장하여 우체국에 가서 국제 우편으로 보내고 나니 받기에 는 별 것 아닌데 보내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선물 보냈다고 문자를 보내었더니 받기도 전에 다들 고맙다고 야단이다. 전화도 아닌 문자로 보내오는 인사에 피곤이 풀려진다. 그래 다음에 또 보내주마. 쉽지 않은 약속을 또 하고 만다. 그래 정말 그깐 선물 몇 개로 너희들이 더 행복해질 수 있다면 얼마든지 또 보내주마. 우리는 가족이니까.

정말로 오랜만에 옛 친구와 만났다. 서울 사는 그 친구가 대구로 문상을 왔다가 갑자기 나를 찾아 온 것이다. 특별한 추억이 많았던 그 친구와 반갑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제 애들도 다 컸지? 결혼할 나이가 되지 않았나?’ 물었더니 한동안 말을 않는다. 그리고 어렵게 하는 말이 ‘물으니 말하지 않을 수 없는데 사실 우리 애가 장애가 있어. 이십대 후반의 아이가 지능은 초등학교 수준밖에 안되거든. 집사람이 고생이 많지. 나도 좀 어려웠고.’

어릴 때부터 유능했고 성숙한 친구여서 정말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고 있으리라 기대했던 친구의 예상치 못한 얘기에 당황함과 안스러움에 할 말을 잊어 버렸다. 장애 자녀를 가진 친구의 가족이 내 마음 한 편에 아리게 스치는 것이다. 목사랍시고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몇 번 방문하고 위로하고 기도해 주곤 했지만 친구의 아픔은 또 다른 무게로 내게 다가온다. 가족은 그래도 우리의 행복이고 우리의 기쁨이라고 최인호 선생은 말하지 않았던가. 나도 그렇게 말해 왔는데 가슴이 저려오는 친구의 가족이야기는 최인호 선생의 ‘가족’을 잊게 되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그 옛날 샘터에서 알콩달콩한 ‘가족’이야기로 우리를 즐겁게 해 주었던 최인호 선생이 암을 극복하고 살아 계셨더라면. 그의 죽음을 넘은 농익은 경륜과 필력은 이 복잡하고 가슴 아픈 가족들을 넉넉히 위로해 줄 수 있었을텐데. 돌아가신 최인호 선생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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