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청산 의병운동이 일어나다
부패청산 의병운동이 일어나다
  • 승인 2016.09.18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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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열 객원大記者
전북대 초빙교수
장기표는 오랫동안 운동권에 이름을 올린 인물이다. 서울 법대를 늦게 다니면서도 심재권 이신범 조영래 등과 함께 소위 서울대 내란음모사건에 연루하기 시작하면서 그의 정치행보는 항상 독자적이었다. 기성정당의 영입요청도 완강히 뿌리치고 정의로운 내일을 위한 시대정신으로 일관해 왔다. 어떻게 보면 외톨이 같기도 했지만 그의 주변은 항상 따뜻한 마음을 가진 동지들로 넘쳐났다. 정치적으로 좌절할 때에는 낙망과 실망이 없지 않았겠지만 그럴수록 그의 굳은 결의는 오히려 활활 불타올랐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재야에서의 활동반경은 그를 더 넓고 높은 곳으로 인도했지만 그것은 찬란한 여명이었을 뿐 개인적인 출세나 이재와는 완전히 담을 쌓은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그의 명성이 오랜 세월 이어져오는 것은 그만큼 올바르고 정직한 삶을 이어오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장기표를 가리켜 ‘국회의원 안 되는 길만 골고루 찾아다니는 사람’이라고 안타까워하는 것은 모두 그 자신이 선택한 길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선배가 되지만 1977년도에 긴급조치9호로 성동구치소에서 함께 징역살이를 한 바 있다. 당시 성동구치소는 서울구치소에 수감자가 너무 많다고 해서 신축되었는데 정치범으로는 우리들이 첫 번째 수감자였다. 해가 긴 여름철에도 구치소 저녁시간은 오후 4시 반이면 끝난다. 해가 뉘엿뉘엿 지려고 하면 어디선가 스님의 독경소리가 들려왔다. 스님들도 간혹 투옥되는 사람이 있는 터여서 나는 내방 윗 층에 장기표를 큰소리로 불러냈다. 이른바 통방이다. “어이, 여기에 스님이 한 사람 들어온 모양이네. 독경을 아주 잘하는 것 같네.” 그러자 장기표는 한참 웃었다. “형님, 제가 한 것입니다” 그제야 깨달았다. 그가 수배중일 때 절에서 숨어 지내며 중노릇을 했다는 사실을….

그 뒤 사회에서도 그가 하는 일이라면 마음속으로라도 언제나 지지하는 입장을 취했으며 특히 나의 친구인 시나리오 작가 박용진은 장기표의 절대적 지지자였다. 그는 신병이 악화되어 연전에 세상을 떴지만 장기표에게는 천군만마를 잃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런 장기표가 이번에는 의병깃발을 들고 나섰다. 지금 우리나라는 부정부패를 척결하겠다고 국회에서 통과한 소위 ‘김영란법’이 시행되기 직전이다. 9월28일부터 효력을 발생한다고 하는데 이로 인해서 추석을 앞둔 백화점 등은 5만원 이하의 선물만을 준비하느라고 밤잠을 설쳐야 했다. 그까짓 선물을 주고받지 않으면 될 일을 왜 그렇게 부산을 떨어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든 대목도 있지만 오랜 세월 관행으로 이어져온 일이라 쉽게 발상전환을 하기는 어려운 모양이다. 한가위를 맞이하며 가까운 이웃과 친척들에게 가벼운 마음의 선물은 인정을 나누는 미풍양속이다. 이를 널리 권장하여 아름답고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것은 사회를 한층 부드럽게 만드는 윤활유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 기회를 악용하여 청탁을 전제로 한 뇌물성 선물이 전달되는 수도 있고, 보험성 뇌물이 되는 경우도 있어 이를 경계하기 위한 것이 김영란법의 취지다.

이 법은 아주 광범위하게 단속대상을 구체화하고 있는데 원안에 들어있던 ‘국회의원’은 국회심의 과정에서 쏙 빼버려 가뜩이나 특권 논란에 휩싸인 국회의원의 갑질을 구조화하고 말았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게다가 언론인과 교사를 추가하여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았으나 이번에 부각된 조선일보 주필의 행태를 보면 제4부로 불리는 언론의 현주소를 확인한 셈이어서 아무도 변명하지 못한다. 이처럼 어수선한 사회 움직임 속에서 ‘의병’ 깃발을 높이 든 장기표의 쾌거는 많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9월 7일 오후2시 종로 네거리 종각 앞에는 흰 두루마기를 입은 수백 명의 시민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한민족의 상징인 백의로 치장한 백성들은 죽창과 곡괭이 대신 태극기와 선언문을 들고 소리 높여 외친다. “부패로 얼룩진 사회를 바로잡자!” “썩어빠진 부패를 청산하고 깨끗한 사회로 환원하자!” 그들은 바로 현대판 의병이다. 의병부대의 맨 앞에 장기표와 이범관이 우뚝 서있다. 이범관은 요즘 현직 검사장과 부장검사 등의 추문으로 얼굴 들기도 부끄러운 서울 지검장 출신이다. 돈과 출세의 길이 훤히 뚫린 너른 길을 외면하고 외롭지만 정의로운 장기표와 짝을 이뤄 이 나라의 가장 취약한 부문인 부패구조를 척결하겠다고 동참한 것으로 보인다.

이 자리에 참여한 많은 시민들이 참으로 입어보기 힘든 하얀 두루마기를 입고 동학혁명을 일으킨 전봉준장군처럼 의기충천(義氣沖天)한 것은 패션이 주는 힘도 있었지만 그만큼 썩은 사회에 대한 분노 때문임을 알 수 있었다. 행정부의 고위직, 법원과 검찰의 고위인사, 언론계의 중진 등 총체적인 부정부패가 어디까지 갈 것인지 이정표도 없이 질주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나라는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 청년실업으로 인한 젊은이들의 좌절은 듣기에도 역겨운 금수저 흙수저를 탓하고 있다. 스스로 일어나 새로운 길을 모색하려고 해도 위에서 썩은 물이 흘러내려오면 어느 누구도 견딜 수 없게 된다. 거제도에서 발생한 콜레라는 바닷물이 오염되었기 때문으로 판명되었다.

지금 사회전체에 흐르고 있는 썩은 풍조는 나라를 좀먹는 병균이 된다. 씩씩한 의병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부패청산 의병연합’이 조대용 박종구 홍정식 등 참여인물들이 살아온 삶처럼 우리 사회를 맑고 깨끗하게 정화시켜주기를 기원하며 힘차게 만세삼창을 선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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