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 앞의 오동나무 열매는 벌써 가을 소리를 내는구나!
계단 앞의 오동나무 열매는 벌써 가을 소리를 내는구나!
  • 승인 2016.09.19 10:5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news/photo/first/201609/img_207427_1.jpg"/news/photo/first/201609/img_207427_1.jpg"
박동규
전 중리초등학교장
‘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 어느 편일까? 나는 나의 슬픔과 괴롬과 있는 대로의 지혜를 일전에 응집시켜 이 순간 그의 눈 속을 응시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알고 싶은 것이다. 그의 눈 속에 과연 내가 무엇으로 비치는가?’

강신재의 1960년대 작품인 ‘젊은 느티나무’의 첫 부분이다. 이 글은 젊은 남녀의 사랑이야기이다. 좋은 문장은 가슴을 울린다.

문득 이 글귀를 떠올린 것은 안봉철 교장선생님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사실 그 교장에게서는 학생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교육하는 냄새가 난다.

전교생을 대상으로 마음을 밝게 하는 보배로운 거울인 ‘명심보감’을 배워 실천토록 하고, 학부모 교육은 인성 핵심 가치 덕목에 중점을 두고, 교사들에게는 동양고전을 통한 인성을 익혀 교육에 온고지신(溫故知新)하도록 한다. 그 교장은 확고한 신념과 교육관을 가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근래 몇 년 간을 나는 대구남부초등학교에 학생, 학부모, 교사를 대상으로 강의를 갔었다. 그 때마다 나는 온갖 낡아빠진 지식을 응집시켜 그 교장의 눈 속을 응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어느 편일까? 그 교장의 눈 속에 내가 무엇으로 비치는지 알고 싶었다.

교장실 문을 열면 바로 입구에 걸린 주자의 권학문을 볼 수 있었다. 이 글은 명심보감에 실린 학문을 권하는 유명한 문장이다.

‘소년이노학난성(少年易老學難成) 일촌광음불가경(一村光陰不可輕) 미각지당춘초몽(未覺池塘春草夢) 계전오엽이추성(階前梧葉已秋聲)’의 글이다.

‘소년은 늙기가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렵나니, 아주 짧은 시간도 가볍게 여기지 마라. 아직 연못가에 있는 풀들이 봄꿈을 깨기도 전에, 어느덧 세월은 흘러 계단 앞에 있는 오동나무 열매는 벌써 가을 소리를 내는구나!’하는 문장이다.

주제는 시간을 아껴서 쓰자는 내용이다. 해와 달은 쉼 없이 흐르고 세월은 나를 위해서 더디 가지 않는다. 매우 짧은 동안의 시간일지라도 학문하는데 소홀히 하지 말 것을 권장한 글이다.

어느 위치에서든지 바로 그 글이 교장의 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생각은 항상 권학에 머물러 있을 듯하다. 권학은 교육이념인 홍익인간을 기르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다운 삶을 살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인성교육의 목표가 되는 ‘핵심 가치 덕목’은 여덟 가지이다. 마음가짐이나 사람됨과 관련되는 핵심적인 가치나 덕목을 말한다. 예, 효,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 등의 덕목이다.

예(禮) 한 가지만 잘하면 모든 덕목의 인성에 귀결된다. 다른 항목은 교육 대상에 따른 가르치는 사람의 몫이고 방법일 뿐이다.

공자는 예(禮)를 사회적 약속이라 했다. 개인의 사심과 사욕을 억제하는 규율이라 하였다. 인륜과 규범을 포함해 국가 사회의 모든 문물제도, 의례, 예악 등을 일컬어 말했다. 당시 예의 기준은 가정을 비롯해 사회와 국가라는 공동체의 질서와 기강을 유지시켜주는 규범이었던 듯하다.

핵심 가치 덕목을 실천 실행하는 자세는 ‘핵심 역량’이다. 물론 여기에는 서로 간 공감하고 소통하고 때로는 갈등을 해결하는 통합적 능력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인간의 도덕생활 첫 출발점은 자기를 이기는 것이다. 그 방법은 먼저 개인의 이익과 개인의 욕심에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만 모든 잡스러운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다. 진정한 의미의 자유를 얻는 길은 고집스런 집착을 끊어버리는 것에서 비롯된다. 자기를 이기는 것은 구속이 아니고 억제가 아니며 자유이다. 개인 욕심을 버리고 보다 큰 삶의 자유를 얻는 길이다.

공자는 ‘예가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행동하지도 말라.’했다. 학생의 인성 핵심 역량을 함양하는 방법으로 그 교장은 예(禮)를 택하였으리라.

지금은 월암초등학교에서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교육하는 냄새가 나는 안봉철 교장선생님이 그립다. 그 덕분에 나는 용기를 얻어 고전을 안고 웃고 있다. 온 하늘로 퍼져가는 웃음을 웃고 있다. 나는 그 교장을 더 그리워하여도 될까?

아아. 계단 앞의 오동나무 열매는 벌써 가을 소리를 내는구나!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