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가 한국영토라는 역사적 증거는 완벽하다
독도가 한국영토라는 역사적 증거는 완벽하다
  • 승인 2016.09.29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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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근 대구대학교
일본어일본학과 교
수 독도영토학연구
소장
독도는 태초부터 울릉도에서 육안으로 보이는 섬이고, ‘삼국사기’에 의하면, 울릉도에 고대시대 우산국 사람이 살았고, 512년 우산국은 신라에 편입되었다. ‘고려사’에 의하면 울릉도에 고려 사람들이 살면서 육안으로 보이는 독도에 왕래했다. 세종실록과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조선 조정은 도민 보호를 위해 육지로 쇄환하여 울릉도를 비웠지만, 수토사를 파견하여 동해의 ‘울릉도’와 ‘우산도(독도)’ 2섬을 영토로서 관리했다. 숙종실록과 일본 사료인 돗토리번 답변서에 의하면, 1692년 부산출신 어부 안용복이 때마침 울릉도에 도해했을 때 밀항한 일본인들을 만났고, 2번에 걸쳐 도일하여 조선영토인 울릉도, 독도에서 일본인들을 몰아내었다.

한편 일본인들은 울릉도를 자신의 땅이라 주장하여 분쟁이 일어났다. 결국 당시 일본의 최고통치기관이었던 막부가 “죽도(竹島: 울릉도)와 송도(松島: 독도)는 일본영토가 아니다”라고 조선 조정에 알려왔다. 일본인들은 울릉도 독도 도항이 금지되고, ‘죽도(울릉도) 도해허가’도 취소되었다. 또 1833년 하치에몽이라는 자가 울릉도에 밀항했다가 발각되자, ‘일본령 송도’(독도)에 항해하려다가 울릉도에 표류했다고 둘러댔지만 결국 처형당했다. 왜냐하면 막부가 죽도(울릉도)와 송도(독도)를 조선영토로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에는 1868년 막부가 멸망하고 메이지 신정부가 탄생했다. 막부 말기(1860년)부터 해외영토 확장의 기운이 일어나 신정부 초기부터 해외영토 개척의 붐이 일어났다. 1869년 홋카이도, 1876년 오가사와라도를 개척하여 편입했고, 울릉도와 독도에 대해서도 1869년 “이 두 섬이 어떻게 해서 조선영토가 되었는지 그 경위를 조사”하도록 했다. 그때 막부가 안용복사건 때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영토로 인정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 후에도 1871~1879년 사이에 ‘죽도개척원’, ‘송도개척원’이라는 이름으로 울릉도 개척을 요구하는 제안서들이 접수되었지만, 메이지정부는 이들 모두 기각시켰다. 1876년 메이지정부가 전국 지적조사를 실시할 때, 시마네현으로부터 죽도(울릉도)와 송도(독도)를 편입해야한다는 제안을 받았다. 그러나 메이지정부는 ‘죽도’(竹島: 울릉도)와 ‘송도’(松島: 독도)의 위치와 모양이 상세히 그려진 ‘기죽도약도(磯竹島略?: 막부 인식)’를 첨부하여 “‘죽도(竹島)’ ‘외1도(外1島)’는 일본영토가 아님을 명심하라”라고 기각시켰다. 이때에 ‘송도’(松島: 독도)라고 하지 않고 ‘외1도(外一島)’하고 칭한 이유는 막부시대부터 송도(松島)라고 했던 섬이 개척원을 요구한 사람들이 울릉도의 명칭을 정확히 알지 못해 ‘송도’ 또는 ‘죽도’라고 하여 명칭의 혼란을 초래했다. 그래서 신정부는 울릉도와 독도 두 섬이 모두 일본영토가 아님을 명확히 하기 위해 ‘외1도’라고 차별화했던 것이다.

고종황제는 1881년 조선시대 내내 쇄환조치로 비워서 관리했던 울릉도에 일본인과 조선인들이 불법으로 거주한다는 사실을 보고 받고, 1882년 검찰사 이규원을 파견하여 울릉도 상황과 주변의 섬 ‘우산도’를 조사하도록 했다. 이규원은 조사결과, 울릉도 본섬과 죽도(댓섬), 도항(지금의 관음도)은 있지만 ‘우산도’는 없었다고 보고했다. 당시 청구도, 광여도 계통의 많은 지도들은 이규원이 조사한 ‘죽도’에 ‘우산도’라고 표기하여 ‘우산도’ 명칭의 혼란을 겪고 있었다. 고종황제는 이듬해 1882년 개척령을 내려 울릉도에 전라도 사람과 함께 약간의 경상도 사람들을 이주시켰다. 전라도 이주민들은 고인돌을 ‘고인독’이라 부르듯이, 저 멀리에 보이는 바위 섬(돌섬)을 ‘독섬’ ‘독도’라고 불렀다. 훗날(1904년) 일본군함 니이타카호가 울릉도를 조사하고 “‘독도(獨島)’라고 기록하더라”라고 보고했다. 고종황제는 1900년 ‘칙령41호’로 울도군을 설치하고, “울릉전도, 죽도(댓섬), 석도(독도)”를 관할한다고 칙령을 내려, 독도를 ‘석도’라고 표기했다. 당시 남겨진 여러 지도에 동해에 ‘울릉도’와 ‘우산도’ 2섬이 존재한다고 하면서도 지금의 ‘죽도(댓섬)’에 ‘소위 우산도’ ‘우산도’라고 표기하여 섬의 혼란을 초래했다. 그래서 ‘울릉도’와 ‘우산도’(독도) 두 섬이 대한제국 영토임을 명확히 하기 위해 ‘우산도’라는 명칭을 버리고 당시의 토속명칭이었던 ‘돌섬’ ‘독섬’을 한자로 표기하여 ‘석도(石島)’라는 새로운 명칭을 사용했다.

그런데 ‘죽도(竹島)=일본영토’론자들은 합리적인 아무런 논증없이 태정관지령의 ‘죽도 외1도(송도)’에서 ‘울릉도=죽도=송도’ 모두 같은 섬이라고 조작하여 지금의 독도와는 무관하다고 우기고, 칙령41호의 ‘울릉전도, 죽도, 석도’에서 ‘석도’는 독도가 아니라고 사실을 조작한다. 일본의 황당한 영토내셔널리즘은 야만스럽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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