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사람 붙잡을 방법이 없을까
가는 사람 붙잡을 방법이 없을까
  • 승인 2016.10.30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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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열 大記者
전북대 초빙교수
인간은 누구나 한번 왔다가 한번 간다. 그것도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간다. 지극히 생물학적인 표현을 쓴다면 인간은 아메바로부터 시작된다고 하지만 세상에 태어난 이후로는 모든 족적이 낱낱이 드러나게 된다. 인간의 두뇌는 자신의 족적을 남기기 위한 치열한 노력을 할 수 있게끔 구조적으로 형성되어 있다. 이미 원시시대부터 보고들은 얘기들을 바위에 암각화로 남겼다. 별다른 도구가 없을 때임에도 불구하고 바위를 쪼아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은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본능의 발동이었을 것이다. 문자를 발명하고 그것을 대량의 기록으로 남길 수 있도록 인쇄기술을 갖추게 되며 목판에서 금속활자인쇄로 발전하면서 모든 기록을 비약적으로 양산할 수 있게 된다. 더구나 우리 선조들은 쿠덴베르크보다 훨씬 앞서 금속활자를 발명했다는 것이 실증으로 판명되었다. 기록의 능력은 사진기술로 절정을 이룬다. 그림으로 남기려면 많은 시간을 소비해야 되었지만 사진은 순간적으로 대량기록을 담아둔다. 흑백사진은 어느덧 총천연색으로 변했고 정지 상태에서 동영상으로 바뀌었다. 이제 컴퓨터 그래픽으로 발전해 어느 장면이 실제 촬영한 부분인지조차도 구분하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아날로그 기계들이 디지털로 바뀌면서 인간의 기록능력은 극대화되었으며 이제는 스마트폰이라는 가공할 전화기 하나로 세계 어느 곳에 있던지 시공을 초월한 화상통화로 스스로 만족해 한다. 아무리 먼 길을 돌고 돌아서 오더라도 어디에 설치되어 있는지 알 수도 없는 CCTV에 고스란히 찍힌다. 이런 기록들을 우리는 역사로 간직한다. 위대한 족적을 남긴 사람의 족적은 더욱 소중하다. 자신의 지적능력을 최대한 활용하여 국가와 민족을 위한 위대한 기록을 남긴다. 수많은 과학자들은 남겨진 기록으로 자신을 알린다. 발견과 발명은 분명히 다르지만 그것이 미치는 영향은 똑같이 크다. 어느 가정을 막론하고 가족들의 기록물이 있다. 우리나라 특유의 족보를 비롯하여 이미 누렇게 변한 조부모님들의 사진까지 대대로 물려가며 걸어둔다. 선조들의 일기장, 음식 만드는 법, 제사상 차리는 순서 등등 시시콜콜한 기록들이 남아 있다. 한낱 집안에서만 뒹굴던 이런 기록들만 찾아다니는 눈 밝은 수집가를 만나면 그 기록은 어느 사이에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귀중한 자료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물리적으로 남아있는 기록보다는 정신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교훈을 남기며 세상을 뜬다. 평소에 사랑을 베풀고 이웃을 아끼며 가족들을 위해서 헌신했던 일들은 남은 이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된다. 비록 재산을 남기지 않았으면 어떠랴. 세상을 뜨기 전 병마에 시달리며 온갖 고초를 겪던 모습까지도 이제는 자랑스러운 정신적 유산이 된다. 죽음은 분명히 불행한 것이지만 이를 어떻게 수용하느냐 하는 자세 여하에 따라서 아름다운 행적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은 산 사람의 능력이요 사명이다. 슬픔에 잠겨 손을 놔버리면 먼저 떠난 사람을 다시는 불러볼 수도 없는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일이다. 아내 김순련의 죽음은 너무나 허망하다. 1년을 넘는 투병기간에 삶의 끈을 굳세게 부여잡고 결코 무너지지 않겠다는 확실한 신념으로 버티던 아내는 끝내 숨을 거뒀지만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으로 평화스런 얼굴이었다. 식어가는 뺨에 가만히 손을 얹어도 조금이라도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오히려 따스했다. 평생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주장하면서 모든 투약과 치료를 손수 선택했던 깔끔한 성정(性情)은 지아비로서도 간여할 틈을 내주지 않았다. 웰빙과 웰다잉의 차이가 무엇인지 알기 힘들지만 아내는 두 가지를 모두 해냈다.

누구에게나 떳떳하고 당당했던 사람이 마지막 가는 길도 그렇게 갔다. 비인두암이라는 평소 들어보지 못했던 병마와 싸우면서도 서울대병원의 방사선과 항암치료를 뿌리치고 재래 한방치료에만 매달리는 것을 막을 수 없었던 것을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극심한 통증이 찾아와도 웃으면서 “이 고비만 넘기면 된다.”고 큰소리치던 모습은 차라리 종교적 신념과 같았다. 구차스럽게 연명치료와 같은 현대의학보다는 웰다잉의 진정한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여준 아내의 선택을 나는 울면서 존중한다. 더 이상 남길 것도 없이 한줌의 흙이 되어 용미리 왕능식 추모의집에서 나와 함께 4.19국립묘지에 합장될 날을 기약하며 오히려 남은 이들을 걱정하며 사랑할 것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편히 잠드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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