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국가 그리고 국민
교회와 국가 그리고 국민
  • 승인 2016.11.21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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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윤 새누리교회
담임목사
신약성경 로마서 13장은 독재자들이 그들의 절대 권력을 유지하고 민주주의를 탄압하는데 이용되어 왔고 교회가 국가 권력에 부응하는 데 악용되어 왔다. 일제 강점기 때의 한국 교회는 로마서 13장을 통해 일본 군국주의와 총독부에 충성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가르쳤다. 또 해방 이후 군사독재와 국가폭력이 자행되는 가운데 정치적 침묵과 독재 부역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도 로마서 13장이 이용되었다.

그러나 사실 로마서 13장은 권력에 대한 충성의 근거가 아니라 권력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설명한다.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라는 1절의 말씀은 권력의 절대성이 아니라 오히려 권력의 상대성을 강조한다. 로마시대에 “모든 권력은 하나님으로부터 난다”라는 성경의 말씀은 신이라 자칭했던 황제에 대한 반역의 말씀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라는 4절의 말씀은 권력은 군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게 하기 위해 세워진 존재임을 밝힌다. 여기서 ‘사역자’는 ‘종’이라는 의미인데 왕과 같은 절대 권력을 “하나님의 종”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것은 그 시대의 로마 황제에게는 치욕적인 표현이다.

결국 하나님이 권력자를 세우시는 목적은 그가 가진 권력을 통해 사적 이익이 아닌 공적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다. 즉 4절의 내용은 권력을 위해 국민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권력이 존재한다는 혁명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공직은 국민을 위해 하나님이 허락하신 제도이므로 모든 공직자들은 대통령의 유익이 아닌 국민의 유익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또한 5절의 “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에서는 권세에 순종해야 할 이유를 설명한다. 그런데 권세에 순종해야 할 이유로서의 ‘양심’은 우리가 순종해야 할 이유이면서 동시에 항거할 수 있는 이유가 된다. 즉 양심에 따라 순종하라는 것이지 양심을 거스르면서 순종하라는 의미가 아닌 것이다.

이와 같은 로마서 13장의 내용은 근대 민주주의 이론의 근간이 된다. 국민들은 투표와 추대와 같은 과정을 통해 자신의 권리를 공직자에게 위임함으로써 국민과 공직자 사이에 일종의 계약이 성립된다. 즉 권한을 주는 대신, 공익을 추구하라는 사회적 계약이 형성되는데, 이때 공직자가 이 계약을 어기고 불의를 행하면 국민은 공직자에게서 공권력을 소환시킬 수 있다. 그러나 공직자가 자기를 보호하고 공권력을 내려놓지 않고 버티면 이때 국민은 시민 불복종으로 맞설 수 있다.

교회는 로마서 13장을 오해해 왔다. 지도자가 하나님의 심부름꾼이 아니라 하나님의 대적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양심을 거스르며 순종했고 그 권력에 부역해 왔다. 권력에 부역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오해하기도 하고 오해했기 때문에 부역하기도 했다.

로마서 13장은 국가 지도자들이 권력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 것인지 또는 국가 권력에 대해 교회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를 보여 주는 성경이다. 교회는 기본적으로 정상적 국가 기능에 간섭보다는 존중과 순종의 태도를 보여야 한다. 하지만 국가가 하나님이 세우신 목적을 떠나면 교회는 이를 바로 잡아야 하는 사명을 가진다. 하나님이 세우신 목적을 떠난 국가 권력에 항거하지 못하고 순종하는 교회는 더 이상 교회라고 할 수 없다.

국가 권력의 남용과 오용으로 인한 혼란으로 온 나라가 몸살을 앓고 있다. 한국의 교회는 로마서 13장을 통해 교회의 갈 길과 할 일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권력자들도 로마서 13장을 통해 자신에게 부여된 공권력이 어디서 나왔는지를 분명히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 권력자들이 국민들과의 계약을 어겼을 때 국민은 그 공권력을 소환할 수 있고, 공권력을 내려놓지 않고 버티는 권력자들에게 국민은 ‘시민 불복종’으로 맞설 수 있다. 교회와 권력자들과 국민들이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자리를 찾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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