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緣)의 연(鳶)
연(緣)의 연(鳶)
  • 승인 2016.12.12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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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윤 시 인
시간의 강은 늘 한 방향으로 흐르네./유영하되 거스르지 못하는 미련스러움에/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바라보네. 휴//빈 얼레를 되감으며 하늘을 바라보네./가슴을 찢고 짓이겨 흐트러진 구름들이/대지에 내려앉아 슬픔으로 쌓여가네.//햇살 한 줌 흩뿌리는 오후 한나절에/하얀 슬픔들이 녹아들고 멈춰진 발자국도/지워지고 사람도 하나 둘 지워지고//끊어진 연은 점점 사라져 가네. 필자가 2013년에 발표한 시집<가랑잎, 별이 지다>에 수록 된 ‘연(緣)’이라는 작품의 전문이다. 이 작품의 제목을 보면 흔히 방패연이나 가오리연등에 쓰이는 솔개 연(鳶)을 쓰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레’등의 날리는 연을 연상하는 시어들이 쓰이고 있다. 인연(因緣)등에서 쓰이는 묶음 연(緣)을 사용하면서 중의적(重義的)인 의미를 주기 위해서이다. 연(鳶)을 통해서 연(緣)을 표현하고자 했다.

요즘 최순실의 국정농단사태로 인해서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주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의 결과를 지켜보는 것 같아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게다가 최태민에서 최순실에 이르기까지 2대에 걸쳐 이어져 온 그들의 악연은 그야말로 집요하다 못해 처절하기까지 하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까지 이어지게 해온 것인지 모르겠지만, 세간의 추측과 의혹에는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본의 아니게 들려오는 이야기들은 그야말로 추하기 그지없어서 사실관계를 떠나 사실이 아니기를 간절히 믿고 싶을 따름이다.

법(法)은 상식이라고 믿는다. 물 수(水)변에 갈 거(去)가 결합한 회의(會意)문자이다. 회의문자란 두 개 이상의 단어가 만나서 하나의 의미를 가지는 문자를 말한다. 실질적으로 법은 이렇듯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가야 한다는 뜻이다. 즉 공평(公平)하고 바르게 죄를 조사해 옳지 못한 자를 제거한다는 뜻을 나타내는 한자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상식과 크게 다른 이야기가 아니다. 누군가 옳지 않은 선택을 하더라도 이를 누군가 제어하는 것을 의(義)라고 할 수 있다. 매일 접하는 뉴스와 기사들을 접하면서 이렇게 의롭지 못한 사람들이 여태 어떻게 국민을 대표해서 의원(議員)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는지 경이롭기 그지없지만, 어찌되었건 청문회를 지켜보면서 과연 지금 저들에게 완장을 차고 제 할 일을 하라고 한 주체가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국민들이 맞는지조차 의심스러울 만큼 생소하다.

대통령 연설문 한회 분량도 안 되는 헌법이 크게 현학적인 표현이 쓰인 것도 아니고 복잡하기 그지없어서 여기 저기 손볼 것이 많은 보험회사 약관도 아닐 진대 무슨 헌법이 수십 년이 경과하도록 아직도 개헌할 부분이 남아 있는 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총 10장 130조 그리고 부칙 6개조로 구성된 헌법은 어지간한 초등학교 동창회 모임 회칙만큼 근본에 충실할 만큼 집약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집권 정당이나 절대적인 권리를 가진 소수의 이해관계자 집단으로 인해서 개정된 바도 없지 않을 수 있다. 헌법이 육법(六法)중에 가장 간결하게 성문화된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여겨진다. 이는 ‘상식’이기 때문이다.

상식을 벗어난 모든 인연은 기괴하다. 호의로 맺어진 인연이 악연으로 변질되는 데에는 재산적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잣대에 기인한다. 과거 역대 집권자들의 말로가 하나같이 피고의 위치에 섰지만, 이를 부끄럽게 여기고 스스로 세상과 인연을 끊어버린 한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 보란 듯이 잘 살고 있다. 정치인들로부터 명예를 기대할 수 없다. 슬픈 현실이다. 정당의 목적이 정권획득이라고 교육받아 온 과거의, 어쩌면 현재까지도 우리는 그 어떤 것들도 기대할 수 없다. 명예는 신독(愼獨)에 힘쓸 때 유지할 수 있다. 어떤 절차와 과정이 있더라도 부를 축적할 수만 있다면 명예를 이어갈 수 있다는 오만과 착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비로소 명예로울 수 있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부를 축적하고 조직을 결성하고 이권쟁탈에 최선을 다해서 명예의 위치에 설 수 있을지는 몰라도 명예로울 수는 없다. 이는 지금의 현실에서도 충분히 알 수 있지 않은가. 유유상종(類類相從)은 비단 과거의 고사성어에 그치지 않는다. 무리에서 한사람이 거부감 없이 공존하고 공생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그 무리의 일원임을 인지해야 한다. 혹자는 ‘그 혹은 그녀’는 피해자일 뿐이고 그 주위의 무리들만이 가해자 또는 모사꾼으로 몰아가지만, 그렇지 않다. 그럴 수는 없다. 우리가 원해서 세상과 인연을 맺지 않았을지는 모르지만, 사람과 사람의 인연은 결국 본인이 만들어 가는 거고 이어 가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수많은 연(緣)의 연(鳶)들이 관계와 관계 속을 날아다니지만, 얼레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손에 쥐어져 있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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