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켜’의 역할 검증
‘떨켜’의 역할 검증
  • 승인 2016.12.13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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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규 전 중리초등학교 교장
들판은 황락하고 산에는 나뭇잎들이 떨어져 낙엽 되어 뒹굴고 있다. 발밑에 밟히는 낙엽을 보며 ‘떨켜’를 생각해 본다. 그동안 학교마다 학예회, 작품전시회, 체육대회, 독서축제로 야단법석이었고 온통 행사로 교정이 떠나갈 듯이 바쁜 나날이 계속되었으리라.

그 때 받아 두었던 행사 안내장을 훑어보았다. ‘울긋불긋 산과 들이 물드는 계절…’로 시작하는 인사말이 새삼스럽고 정겹다.

나무들이 단풍 드는 것은 ‘떨켜(이층, 離層)’의 작용으로 낙엽을 만드는 작업 과정이다. 떨켜는 잎, 꽃잎, 과일 등이 붙어있는 줄기의 경계부분이다. 이 경계 부분에 있던 잎, 꽃잎, 과일 등이 식물의 몸에서 떨어져 나갈 때 연결되었던 줄기 부분에 생기는 세포층을 말한다.

이 떨켜의 주요 임무는 잎에 있는 영양분이 줄기나 가지로 흘러드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한다. 떨켜 아래쪽에는 보호막도 있다. 이 보호막은 잎이 떨어져 나간 자리에 병균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예방 역할을 한다. 단풍은 수분과 양분의 통로인 잎맥이 서서히 세포층으로 닫혀버리는 것을 말한다.

결국 낙엽이란, 식물이 햇빛작용으로 생산 활동이 왕성할 때 발생한 모든 쓰레기들을 잎에 담아 두었다가 겨울나기를 위하여 제거하는 것을 말한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축제도 일종의 교육과정의 결실에 대한 결과물의 전시장이다. 옹골차고 알찬열매의 교육 결과를 거두어들여 겨울동안 잘 갈무리하였다가 내년 봄에 다시 교육하기 위한 것이다.

모든 일에는 계획, 실천, 반성의 순환과정을 거친다. 학교교육과정도 이러한 순환과정의 거듭된 반복이다. 여기에서 평가되어 나타난 실적은 최종적인 것만 결과로 기록된다. 옹골차고 알찬열매를 수확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가장 흐뭇한 순간이리라. 그런데 찬찬히 살펴보면 문제점도 찾을 수 있다. 행사 뒤에는 철저한 검증이 필요한 것이다. 교육적으로 검증이란 어떤 명제의 참과 거짓을 판별하는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글짓기 작품 전시회에서 순수한 자기의 작품인지 남의 작품을 표절하지는 않았는지를 살펴본 후 오관에 의한 오감의 판별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때 평가 기준이 있다면 이것이 바로 명제가 되는 것이다.

그림, 서예, 만들기, 보고서, 연극 등은 판별은 쉽지만 검증은 오히려 더 어려울 수도 있다. 모든 문장이 다 명제를 나타내지 않듯이 관람자들의 감탄하는 말이나 야유 또는 교사의 지시나 명령은 전부가 검증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것들은 참과 거짓의 진리치를 갖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학교의 가을 축제도 떨켜의 역할을 충실히 하여야 한다. 즐겁고 신나고 재미와 흥미는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검증이 빠지는 건 안 된다.

현재 유명인들의 글과 그림이 표절이나 모작이라는 비판을 받는 까닭도 학교교육과정에서 충분히 길러지고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무에서 잎자루가 붙었던 자리에 만들어진 떨켜의 역할은 단풍의 색깔과도 관계가 많다고 한다. 떨켜의 역할이 충실할 때 단풍의 색깔은 더욱 아름답고 곱게 물든다고 한다. 물론 여기엔 떨켜의 역할을 위한 여러 조건들이 맞아야함은 당연하다. 알맞은 수분 섭취, 적당한 온도는 필수적이다.

요즘 정상적이 아닌 말에는 ‘비(非)’라는 말이 들어간다. 비선정치, 비도덕적사회, 비윤리적가정 등이 그렇다. 그 동안의 잘못된 교육은 교육자의 몫이다.

낙엽은 나무의 겨울나기이다. 봄에 싹 틔워 여름에 몸집 키운 후 가을엔 수분 줄여 잎자루에 칸막이를 세운다. 영양분이 줄면 울긋불긋 단풍들고 잎이 떨어지고 한겨울을 대비해 몸집을 줄인다. 이 일을 ‘떨켜’가 한다.

천자문에 ‘한래서왕(寒來署往) 추수동장(秋收冬藏)’이라는 구절이 있다. ‘추위가 오면 더위가 간다. 가을에 거두어 들여 겨울을 위해 갈무리를 한다’는 뜻이다.

추위가 오기 때문에 더위가 가는 것이다. 더위가 가기 때문에 추위가 오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더위가 물러가고 찬바람의 추위가 온다고 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즉 계절의 조화에 맞추어 살아가라는 뜻이다. 그래서 봄에 씨앗 뿌리고 여름내 가꾸고 가을에 수확하고 겨울에 갈무리한다. 요즘 사람들은 이것을 잊어버리고 사는 것 같다. 아니 잃고 산다. 그래서 학교교육과정에서 ‘떨켜’에 대한 검증은 미래를 위해 더욱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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