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부는 날의 까치집 - 처해진 환경을 이용하는 지혜
바람 부는 날의 까치집 - 처해진 환경을 이용하는 지혜
  • 승인 2016.12.14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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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후섭 아동문학가
교육학박사
세상에서 가장 큰 새 알바트로스는 날아오르기 위해 태풍을 기다리고, 마을 둘레에서 먹이를 찾는 새 까치는 바람 부는 날에 집을 짓는다고 합니다.

알바트로스는 20kg이 넘는 몸이 너무 무겁지만 대신 날개가 길어 한번 날아오르면 4~500km를 날아갈 수 있습니다. 대신 무거운 몸을 하늘에 띄워 올리는 데에 힘이 많이 들기 때문에 마주 오는 센 바람을 기다린다고 합니다. 이 센 바람은 어민들에게는 폭풍으로 다가올 수도 있겠지만 알바트로스에게는 비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됩니다.

까치는 마을 근처나 가까운 산기슭에서 살아가는 만큼 쥐나 고양이 등 다른 동물로부터 위험한 일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비교적 높은 곳에 집을 짓습니다.

옹이가 없이 곧게만 자란 미루나무 중간에 집을 짓기도 하지만 가끔씩 시멘트 전봇대 위에 둥지를 마련하기도 합니다. 시멘트 전봇대는 옹이가 없어 설치류(齧齒類) 동물들이 올라갈 수 없으니까요. 그러다보니 지은 집이 함부로 흘러내리기 쉽습니다.

까치는 곧은 나무에 집을 짓는 만큼 가지를 이용해야 합니다. 바람이 웬만큼 불어도 부러지지 않는 굵기와 방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까치는 바람 부는 날에 방향과 세기를 계산하여 물어온 나뭇가지를 배치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람이 차갑기도 하고 속도도 점점 빨라지는 계절이 되었습니다.

필자는 아파트 10층에 살고 있습니다. 남쪽 창에서 내려다보면 옛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돌무덤인 고인돌이 내려다보이고, 그 옆에 우뚝 서있는 아파트 굴뚝 또한 바라볼 수 있습니다. 굴뚝은 30층도 넘을 정도로 높이 솟아 있습니다. 우리 아파트가 20층까지 있는데 그 보다도 훨씬 높으니까요.

이제 낙엽이 져서 나무들이 모두 옷을 벗었습니다. 그러자 그 동안 보이지 않던 풍경들이 더욱 자세하게 눈에 들어 왔습니다. 고인돌도 햇빛을 받으며 평온하게 누워있었고, 그 동안 나뭇잎에 가려져 있던 굴뚝 아랫부분도 훤히 드러났습니다.

“아, 저게 뭐지? 까치집 같은데!”

아파트 굴뚝 중간쯤 쇠사다리에 그 동안 보이지 않던 검은 나뭇가지 뭉치가 붙어있었습니다. 농구공 두어 개 크기만 한 큰 까치집이었습니다. 아파트 굴뚝에는 만약을 대비하여 굴뚝 둥근 벽면을 따라 쇠로 만든 사다리가 붙어있었습니다. 그리고 굴뚝도 중간에 이어져 있어서 이음새 부분 바로 밑은 비를 피할 수도 있을 정도로 마디가 있었습니다. 그 마디 바로 아랫부분 사다리에 까치가 나뭇가지를 물어다 몰래 집을 지어놓았던 것입니다.

“아, 까치가 언제 저기에 집을 지었지?”

나는 나 모르게 고개를 갸웃하였습니다. 이른 봄에 박새들이 아파트를 찾아와 산수유 꽃잎을 따먹으며 발바닥이 간지러워 이리저리 옮겨 앉는 것도 보았고, 가을에는 피라칸사 붉은 열매를 따먹으려고 모여든 이름 모를 시커먼 새들도 보았는데, 정작 가깝다고 생각했던 까치들이 집을 짓는 것은 몰랐던 것입니다.

그 동안 이 굴뚝은 중간까지 나뭇잎에 가려져 있어서 눈에 띄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낙엽이 지니 집이 드러났는데 그 때에는 이미 새끼를 다 키워 독립시킨 뒤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 동안 까치 소리를 몇 번이나 들었던 것 같은 생각도 났습니다.

그렇습니다. 까치는 아파트 한복판이지만 사람의 눈을 피해 집을 짓고 종족을 번식시켰습니다. 곧추 세워진 아파트 굴뚝 쇠사다리로는 사람들이 함부로 오를 수 없다는 것도 짐작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뭇잎이 활짝 피어난 4·5월 어디쯤부터 7·8층 높이에 집을 지어 눈을 피하였던 것입니다.

새들의 치밀한 계산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이쯤에서 우리는 얼마나 우리 삶에 대한 치열한 계산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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