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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대구논단

유토피아의 두레박

기사전송 2017-01-01, 20:3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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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윤 시인
영국의 인문주의자 토머스 모어(Thomas More)는 1516년에 ‘최선의 국가 형태와 새로운 섬 유토피아에 관하여’라는 책을 발표하면서 ‘유토피아(Utopia)’가 세간에 알려지게 되었는데, 원래 그리스어의 ‘없는(ou-)’, ‘장소(toppos)’라는 두 말을 결합하여 만든 용어인 동시에 ‘좋은(eu-)’, ‘장소’라는 뜻을 복합적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요즘 새롭게 인문학이 관심을 가지게 된 배경에는 바쁜 일상에 지친 ‘얼리힐링(early healing)족’의 등장과 무관하지는 않은 것 같다. 1960년대 전후 복구사업을 비롯해서 새마을 운동에 앞장서 왔다는 지금의 노년층이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사지 멀쩡한 놈’이 노는 꼴이 달갑지 않은 탓이다. 마치 대한민국의 경제성장과 더불어 국제적 위상은 그들만의 노력에 대한 결과인 듯 착각하는 다수의 노인들과 더불어 이에 자의건 타의건 수혜를 입은 4,50대의 장년층들조차 편승해 지금의 2,30대의 젊은이들을 닦달하는 모양새가 보기 좋은 것만은 아니다.

실제로 ‘한강의 기적’을 일군 근면, 자조, 협동의 사명을 띤 당시의 젊은이들은 새벽종이 울리기가 무섭게 전국 방방곡곡으로 흩어져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는 사업에 밤잠을 잊은 채 살인적인 노동력을 제공했고, 그 과정에서 정치적인 오류들조차 암묵적으로 이해하는 다수의 경제적 가치는 추후 국가 재건의 기반이 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젊은이들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과 능력들을 배제하고 잉여인력처럼 평가하는 것은 무리한 시선이 아닐 수 없다.

얼마 전에 본 영화 ‘주토피아(Zootopia)’는 약육강식의 원칙(?)을 깨고 맹수들과 초식동물들이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그야말로 동물들의 이상적인 도시를 일컫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어느 한 장면 버릴 것이 없을 만큼 크게 공감했다. 포유류 차량국에 근무하는 나무늘보의 느릿하게 민원을 해결하는 모습을 보며 한번쯤 민원실에서 경험해 봤던 경험으로 미소를 머금을 수 있었던 영화였다.

이 영화는 온갖 권모술수로 불법 상행위를 자행해서 부를 축적해오던 여우 닉와일드가 주인공 토끼 주디 홉스를 만나서 연쇄 실종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정보원으로 활약하며 마침내 개과천선하는 모습들이 그려진 해피엔딩의 줄거리를 그리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조금만 더 진지하게 들여다보면 지금 이 땅을 살아가고 있는 인간군상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나약한 초식동물인데다 암컷이라는 최악의 조건을 가진 우리의 주인공 토끼 주디의 꿈이 좌절되는 장면들을 보면서 함께 좌절하는 ‘나’를 보았고, 전 연령이 관람할 수 있는 영화답게 결말이 권선징악을 기반으로 할 것이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보는 내내 우울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가상의 영화였지만 토끼는 다른 포유류보다 몇 배의 노력과 좌절을 겪어야 했고, 하물며 낙향까지 해서 부모님을 도와 당근 농사를 짓는 과정도 곁들였다. 물론 이 모든 과정들은 화려하고 감동적인 피날레를 위한 감독의 배려였을지는 모르겠으나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지 않은가. 그럼 이곳이 유토피아와 다를 바 없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이보다 더한 억지가 어디 있을까.

주디는 우수한 성적으로 경찰학교를 졸업하고 주토피아 경찰서에 배정을 받게 된다. 그녀에게 주어진 임무는 주토피아의 귀엽고 예쁜 주정차 단속원을 가장한 상징적인 마스코트였다. 영화가 끝나고 나오는데 가시가 목에 걸린 것처럼 따끔거리는 장면이 남아 있었다.

처음으로 주디가 주토피아 경찰서에 부임하던 날 용맹성과는 거리가 먼 뚱보 치타 클로하우저와 인사를 나누는 장면이 그것인데, 치타가 먼저 놀라서 말을 건넨다. ‘진짜 토끼를 채용했네. 말도 안돼!’ 그리고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귀엽네’라고 한다. 그러자 토끼가 다소 주눅 든 모습이긴 하지만 ‘토끼끼리 서로 귀엽다고 하는 건 괜찮지만, 다른 동물이 그러는 건 실례가 아닐까?’라고 일침을 가한다. 중요한 건 다음 대목이다. 치타는 당황하며 ‘정말 미안해. 난 벤자민 클로하우저야’ 라고 진심으로 사과를 한다. 주토피아가 개봉한 후 흥행에 성공하면서 캐릭터들의 피규어를 비롯한 액세서리들이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갔는데, 그 중에서 주인공 못지않게 인기를 누리는 캐릭터가 단역에 가까운 조역 치타 벤자민이라고 한다. 비록 초면에 실례를 범했지만, 사과를 하는 그 장면이 진심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 대한민국의 수뇌부들이 흔들리는 걸 모르는 국민은 없다. 누구에게나 어느 곳에서나 손쉽게 실례를 반복하고 동냥치 대하듯 피해자에게 수모를 주는 사과문을 발표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오히려 재제를 가하는 적반하장의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일삼는 ‘갑’들이 넘쳐난다. 유토피아에서 길어 올린 두레박에 담긴 첫물은 ‘과거에 대한 반성’이어야 한다. 사과를 하기 전에 선행되어야 할 일은 자기반성임을 두 번 다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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