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關契)의 관계(關係)
관계(關契)의 관계(關係)
  • 승인 2017.01.22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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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윤 시인
유유상종(類類相從)이란 말이 있다. 말 그대로 ‘끼리끼리 어울린다.’라는 의미이지만, 이 단순하고 식상한 한자어에는 동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형성하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는 여러 가지의 동류(同類)로서의 조건이 따른다. 학연, 지연, 혈연을 바탕으로 한 이들의 아집과 교만은 급기야 각종 농단(壟斷)을 배양하기에 이른다. 요즘 국정을 농락하고 있다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농단은 이익을 독점한다는 것과 의미는 조금 다르지만, 실제로 농단을 위해서는 농락을 기반으로 하는 거니, 큰 이해의 차이는 없을 듯하다. 이런 ‘어울림’에 대한 기본은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해야 아름다운 관계(關係)가 이루어지고 지속적으로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다.

요즘에는 IC칩으로 만들어진 출입증처럼 예전에는 관계(關契)라는 것이 있었다. 나무로 만든 이 관계는 군사적인 임무를 띠고 있는 병사들이 주요 군사시설을 지나갈 때 주는 일종의 출입증 같은 표찰이었다. 언젠가부터 지금 우리 모두에게는 알게 모르게 관계(關係)를 맺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관계(關契)를 제시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어느 지역 출신이고 학교는 어디를 졸업했는지를 확인하고서야 비로소 경계를 풀고 친밀도를 격하게 표현하는 모습은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특히 혈연과 동문에 대한 관심은 남다르다. 핵가족화가 되어 혈연은 응집력이 많이 약화된 모습이지만, 그래도 동문으로 맺어진 선후배간의 관계는 여전히 어떤 부정한 사실 앞에서도 비이성적인 결집력을 보인다. 오죽하면 학력위조를 공공연하게 자행해가면서까지 그 무리에 끼고 싶었을까.

다수의 인간관계로 폭넓은 교류를 가지는 것보다는 소수의 만남을 선호하는 필자의 경우에는 그다지 많은 관계(關契)는 필요하지 않았는데, 평소 알고 지내던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의 전문 강사로 활동 중인 엄미영 작가에게서 ‘선생님, 정말 좋은 분들이어서 함께 식사를 하고 싶은데요?’라는 요지의 전화가 왔다. 솔직히 달갑지는 않았다. 평소 문단에서 활동하는 사람들 간의 ‘패거리문화’에 많은 반감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이 출판계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정중하게 거절을 했더니, 그녀가 ‘만나보면 분명히 시인님이 좋아하실 분들인데…’라고 아쉬움을 덧붙이는 바람에 혹시나 좋은 인연을 놓쳐 버릴 수도 있겠다 싶어서 그러마고 전화를 끊고 나간 자리였다.

그날 소설 <안낭아치>의 작가 박희주와 성덕댐 ‘수달캠핑장’을 운영하는 황윤구 대표와 함께 한 저녁 식사자리는 유쾌하기 그지없었다. 나의 우려와 걱정은 기우(杞憂)에 불과했다. 소설가 박희주는 본인의 작품을 ‘버리고 싶었다.’라는 겸손과 솔직함으로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해 주었고, 황윤구 대표는 남이섬과 공동 프로젝트로 진행한 청송군의 ‘장난끼공화국’에서 손수 만든 조형물들을 소개하면서 ‘키덜트(Kidult)’에 가까운 필자의 동심을 감동케 하는 데 충분했다.

엄미영 작가는 등단의 가치에 의문점을 품은 채 시나리오 작업등을 주로 하고 있는데, 그녀의 활동 영역은 그야말로 광범위하여 여태까지 그녀의 업(業)이 무엇인지 가늠하기 힘들 지경이지만, 가만히 그녀의 행보를 들여다보면 그녀의 페미니스트적인 성향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가 알리미로 활동하는 음식디미방은 1670년(현종 11년)경 정부인 안동 장씨(貞夫人 安東 張氏)가 쓴 동아시아 여성 최초의 조리서이며, 한글로 쓴 최초의 조리서이기도 하다. 이 책은 궁체로 쓰인 필사본으로, 표지에는 ‘규곤시의방’이라 이름 붙여졌으며, 내용 첫머리에 한글로 ‘음식디미방’이라 기재되어 있다.

음식디미방은 한자어로 그중 ‘디’는 알 지(知)의 옛말이며, 제목을 풀이하면 ‘음식의 맛을 아는 방법’이라는 뜻을 지닌다. 음식디미방 이전에도 음식에 관한 책은 있었지만, 모두 한문으로 쓰였으며, 간략하게 소개하는 것에 그쳤는데, 반면 음식디미방은 예로부터 전해오거나 장 씨 부인이 스스로 개발한 음식 등, 양반가에서 먹는 각종 특별한 음식들의 조리법을 자세하게 소개하여 그 가치를 더한다. 아마 엄작가는 안동 장씨 뿐만 아니라 허난설헌 등의 당대 최고의 여류 작가들의 가치를 널리 알리는 과정에서 스스로여류작가로서의 가치를 찾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이렇듯 관계(關契)는 그들만의 관계(關係)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마음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여긴다. 비록 기우(杞憂)에서 비롯한 만남이었지만, 이들과는 지속적으로 관계(關係)를 오랫동안 이어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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