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을 맞으며 생각하는 며느리의 의무와 딸의 권리
설을 맞으며 생각하는 며느리의 의무와 딸의 권리
  • 승인 2017.01.23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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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희 대구시여성
행복위원장 행정학
박사
설 차례상을 준비하면서 드는 생각 하나.

차례상을 며느리가 아니라 딸이 차린다면 명절증후군이 없어질까? 남편의 부모가 아니라 내 부모를 위한 상차림을 준비니까 힘들어도 덜 억울할 것 같은데….

결혼했는데 내 부모와 네 부모가 어디 있냐고, 너무 따지지 말라고 할 수도 있겠다. 친정 내지는 처가 제사를 같이 챙겨온 분이라면. 어차피 준비하는 차례상이라면 앞으로는 친정부모를 위한 차례상도 같이 준비하면 어떨까?

이쯤에서 다시 드는 생각 하나. 선친을 위한 차례상을 차리는 것은 딸의 의무일까, 권리일까?

사전적으로 의무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면 권리는 어떤 일을 주체적으로 자유롭게 처리하거나 타인에 대하여 당연히 주장하고 요구할 수 있는 자격이나 힘이다.

주지하다시피 사료에 의하면 조선전기까지만 하더라도 아들과 딸은 동등하게 재산을 물려 받았고 제사에도 참여했었다. 재산이 있는 양반들의 경우겠지만 부모의 재산을 차별 없이 똑같이 상속받았으니 장자 혹은 남자들만이 제사를 맡아 지낼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재산을 고르게 상속받은 자녀들은 제사의 의무 또한 동등하게 짊어졌다. 같은 권리는 같은 의무를 낳았다.

부모가 죽은 이후에 자식들이 모여서 부모의 재산을 나누는 경우도 많았는데 이러한 분재 방식을 ‘화회(和會)’라고 한다. 이때는 상속 내용과 그 취지를 명확하게 밝힌 ‘분재기’라는 문서를 작성하여 서로 나누어 가졌다. 그러고 보면 여성차별의 역사는 조선 중기 이후에 만들어진 짧은 역사일 수도 있겠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이 그리 오랜 역사를 가진 것도 아니고 더구나 누군가를 힘들게 한다면 바꿔야 할 필요성은 더 커진다.

전통문화의 진수가 형식에 있지 않고 그 정신에 있다면, 조상을 모시는 일에 성별이 문제되지는 않을 것이다. 시집조상이 아니라 친정 조상을, 처가 조상을 위한 명절 준비는 여성에게는 의무를 권리로 만드는 적극적인 과정이 될 수 있으며 남성에게는 부모와의 당연한 관계에 다양한 감정을 불어넣을 수 있는 새로운 문화가 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드는 생각 하나.

차례를 형제자매가 차례대로 모시는 문화가 일반화될 수 있을까?

십년 전 제사상 앞에서 아버지와 아들 2명이 엎드려 차례를 지내는 생활의 길잡이 교과서 삽화에 어머니도 함께 절하는 모습이 추가되고, 성묘 때 음식을 차려놓고 아버지와 아들이 절하는 사이 한복 차림의 어머니가 서 있는 모습의 삽화는 어머니와 딸도 함께 절하는 모습으로 정정되었듯이 십년 후에는 나와 내 여동생이 서로의 집을 오가며 명절을 지낼 수 있을지.

제4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급변의 시대에 살며 아직도 제사타령이냐고, 귀신 헷갈리게 무슨 차례대로 차례지내냐고 타박할 수도 있겠으나 여성으로 살면서 편하고도, 억울한 감정이 여기서 출발한다면 문제의 해결은 의외로 쉬울 수 있다.

어김없이 또 설이 다가왔다. 매년 이때쯤 되면 여성들은 집안 청소부터 차례상 마련 등 설 치를 준비를 하느라 몸과 마음이 분주하다. 남녀평등시대, 아니 여성상위시대에 시집살이는 사라졌다고 하지만 여성이 친정과 시댁의 차례와 제사를 모시는 데에는 그 역할이 명확히 다르다. 친정의 제사 및 집안 행사에는 부담 없이 참여하지만 시댁의 차례와 제사 및 집안 행사는 책임감을 가지고 잘 준비해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차례나 제사를 지내지 않는 집도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자녀세대엔 제사가 없어질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명절 문화가 변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명절은 가족관계에서 그 의미가 큰 만큼 아쉬움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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