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공약과 재벌개혁
대선공약과 재벌개혁
  • 승인 2017.01.25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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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광구 전 한국바
이오협회 상임부회
지난해 최순실 사태 발생 후 국회 청문회 과정에 우리나라 재계를 대표하는 대기업 총수들이 줄줄이 국회에 불려나와 전 국민이 보는 앞에서 그녀와 청와대 경제수석이 주도해서 만들었다는 문화·스포츠 재단에 수십억 원의 기금(?)을 준 경위에 대해 추궁당하는 장면을 보면서 필자는 화도 나고 씁쓸함도 느꼈다.

최순실 게이트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분노한 시민들이 광화문 광장에 모여 ‘대통령 하야’에 더해 ‘재벌해체’가 큰 소리로 울려 퍼지자 이런 촛불민심을 표로 연결하기 위해 시위에 참가했던 야권 대선주자들도 한목소리로 재벌개혁을 부르짖었다. 그리고 누구보다 발 빠르게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가 지난 10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재벌 가운데 10대 재벌, 특히 4대 재벌의 개혁에 집중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게다가 여당인 새누리당에서 떨어져 나온 바른정당도 정강정책에 재벌개혁을 명시하는 한편 잠재적 대권 후보인 유승민 의원과 남경필 경기도지사 모두 재벌 개혁을 주장하고 있다. 아울러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도 귀국 직전 공항대기실에서 한 보수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재벌의 문제점을 언급하면서 “원칙적으로 재벌개혁 해야 한다고 본다”고 했다.

‘재벌’은 경제학적·법률적 용어도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상호출자·채무보증제한 기업집단’으로 지정하고 있으며, 2016년 12월말, 27개이며 1천127개의 상장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고 약 118만명의 종사자를 두고 있다. 재벌은 산업화 초기 강력한 중앙집권국가(‘독재정권’)하에 정부 주도로 제한된 자원배분을 통해 산업화를 달성하는 가운데 나온 정경유착의 결과물이다. 가장 유명한 것이 1차 세계대전 이후의 독일 나치정권 시기의 콘체른, 군국주의 일본의 자이바츠(財閥),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이스라엘과 대한민국의 재벌일 것이다.

재벌개혁 문제는 이번 대선에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다. 재벌개혁 문제는 87년 6월 민주화의 열풍 후 노태우 정권이 ‘재벌 경제력 집중 억제’를 명분으로 한 공정거래법 개정이 그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뒤이은 김영삼 정권에서 ‘경제 살리기’ 명분 아래 재벌 개혁은 곧바로 후퇴 했고, 그 결과는 재벌의 부채비율 급증과 금융기관의 부실을 초래해 외환위기를 불러 왔고, 끝내 IMF 구제 금융을 받기에 이르렀다.

재벌개혁이 ‘대선 공약’으로 처음 등장한 것은 97년 대선이었다. 여야 유력 후보였던 이회창, 김대중 모두 재벌개혁을 공약하게 되는데, 주요 내용은 IMF가 구제 금융 조건으로 내건 프로그램을 거의 수용하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양측의 공약은 자발적이라기보다 외부로부터 강요된 것이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었다. 1945년 7월 포츠담선언에서 일본의 재벌해체가 결정되고 이후 연합군 극동사령부가 행동에 나섰던 것처럼 말이다.

이후 김대중 정권은 소위 ‘5+3 재벌개혁’을 시행했고, 뒤를 이은 노무현 정부는 초기에는 그 기조를 이어나가는 듯 했으나 후반부에는 ‘경제 살리기’를 명분으로 재벌 규제완화로 후퇴했다. 그 뒤를 이은 이명박 정부는 ‘금융위기 극복’과 ‘경제 살리기’를 핑계로 아예 재벌규제를 대폭 완화해 버렸다. 그 결과 2008년 30대 그룹 계열사가 806개였는데 정권말기인 2012년에는 1천220개까지 늘어났다. 뒤이은 박근혜 정부는 재벌개혁을 공약했지만 지금까지 아무 조치도 하지 않았다.

한편, 이명박 정부의 재벌 개혁 후퇴는 재벌들에게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하청업체에 대한 단가 후려치기, 골목상권과 재래시장 잠식, 비정규직 확대, 중소 벤처기업 기술 탈취 등의 기회를 제공하면서 우리경제에 대한 재벌들의 지배력을 강화시켰다. 게다가 박근혜 정부 들어서 재벌들은 742조 원(16년 9월말 기준)을 사내유보금을 쌓아놓고 신성장산업에 대한 투자나 중소기업 지원 등은 하지 않고, 청와대가 지시하는 문화·체육 재단에 수십억 원을 지원하고, 각 그룹별로 한개 시·도를 떠맡아 정부가 주도하는 ‘창조경제혁신센터’에 수천억 원을 지원하는 등의 정경유착에만 열을 올렸다.

재벌개혁의 당위성은 충분하다. 그러나 개혁에는 고통이 수반된다. IMF에 의해 강요된 김대중 정부의 재벌 개혁을 되돌아보라. 대우그룹 해체와 재벌간 사업 빅딜, 대기업 부채비율 축소라는 성과(?)를 얻기 위해 250조원의 공적자금(국민세금)이 투입되고, 얼마나 많은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으며 얼마나 많은 중소기업이 도산하고 자영업자가 망했는지를 말이다.

대선 후보들에게 말하고자 한다. 재벌개혁 반드시 해야 한다. 재벌의 어떤 부분을 개혁하고 어떻게 개혁하겠다는 공약을 하는 것은 자유다. 그러나 그 개혁과정에서 어떤 고통이 오는지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 그것들은 또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도 공약하기 바란다. 그것보다 재벌공약의 첫 번째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자신의 정부는 절대 재벌에 손을 벌리거나 무엇을 강요하지 않겠다. 그 증거가 발견되면 즉각 사임하겠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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