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 상황에도 주변을 의식했으면
훈련 상황에도 주변을 의식했으면
  • 승인 2017.01.31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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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봉조 수필가
가까운 친지가 모인 자리에 질부가 업고 온 아기는 생후 6개월을 지나 눈만 마주쳐도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거실 한복판에 엎드려서 아기는 뒤뚱거리며 뒤집기를 하고, 어른들은 손뼉을 치며 신기해했다. 어른들이 즐거워하며 탄성을 지르는 소리에 매료되어 아기는 안간힘을 쓰며 몇 차례 더 뒤집기를 시도하다가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그렇게 본능적으로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 결과 서서히 앉고 서고 걸으며 뛰어다니게 될 것이다. 말을 배우고, 글을 익히는 데도 숱한 연습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다. 그렇다. 어떤 분야를 막론하고 연습이나 훈련은 성장의 과정에 반드시 필요하며 매우 중요한 일이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는 말도 있다. 더 자주 더 많이 익히고 단련이 될수록 실수를 줄이고, 만약의 사태에도 신속하고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며칠 전, 우연히 모의훈련 현장을 지나게 되었다. 불특정다수의 인파가 모이고 흩어지는 동대구역 복합 환승센터 주변인데다 명절을 앞두고 있기에 시기적으로도 잘 맞는 것 같아 더욱 관심이 갔다. 소방 훈련인지 긴급구조 훈련인지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소방차와 구급차가 나란히 대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화재로 인한 피해자를 구출하는 상황을 연출하는 것으로 짐작이 되었다.

전날에 비해 추위가 조금 누그러졌다고는 하나, 그래도 겨울이었다. 오가는 사람들 모두 두툼한 외투에 목도리를 동여매고 어깨를 구부린 채 종종걸음을 치는 아침.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훈련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가 섬뜩한 모습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건물 내부로부터 환자가 들것에 실려 나오는 장면이 그랬다. 훈련하는 당사자들은 가상의 시나리오에 의한 맞춤형 훈련이니 미처 생각을 못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 장면을 눈여겨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소름이 끼치지 않았을까 싶은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피해자로 연기를 할 대상을 찾지 못한 것인지, 구조의 대상은 사람이 아닌 마네킹이었다. 경우에 따라 충분히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들것에 실려 나온 마네킹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벌거숭이 상태로 반드시 누워있더라는 것이다. 누군가 멀리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면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 훈련 상황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면 더욱 소스라쳤을 것이다.

실제 현장과 다른 점이라면 만약을 대비한 훈련이라는 것. 하지만 가상의 피해자 역시 구조팀의 따뜻한 보호를 받는 것이 기본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싶다. 현실에서나 가상 상황에서 일상적으로 그런 일을 접하다보면 겉치레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으며, 일정부분 감각이 무디어질 수도 있으리라는 것쯤이야 이해를 하고도 남는다. 그렇지만 훈련이라는 것이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 모르는 사고에 대비한 연습인 만큼 주변을 의식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아무리 생명이 없는 마네킹이라 하더라도, 사람의 역할을 대신한 것이다. 계절 따라 옷을 맞추기는 어렵겠지만 얄팍한 천이나 흔한 수건이라도 걸쳐주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일까.

추운 날씨에 야외에서 훈련하는 것도 힘든데, 격려의 박수를 치지 못할망정 그런 세세한 요구까지 하느냐고 불만을 터트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훈련에 참여하고 훈련을 지켜보는 행인들의 시선이나 감정도 중요하다. 그중의 누군가가 마네킹이 누웠던 들것에 실려 나가지 않으리라고 장담을 할 수가 없지 않은가.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조금만 더 신경을 써서 형식적인 훈련보다는 실감나는 장면이 연출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길을 가다가 경음을 울리며 다급하게 지나가는 구급차를 볼 때마다 예사로운 눈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촌각을 다투며 누워있을 환자의 모습을 그려보게 된다. 필자의 가족과 이웃이 구급차의 신속한 조치를 받아본 경험이 있기에 더욱 그렇다. 뭇 생명의 은인으로 존경받아 마땅한 119 구급대원의 희생정신과 노고에 늘 감사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시민의 한사람으로서, 작은 것으로 그들의 명예에 티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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