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수절복을 바르게 해야 할 때
섭수절복을 바르게 해야 할 때
  • 승인 2017.02.09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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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동광
현광사 주지
설 명절에 많은 국민들이 이동하여 고향을 찾아서 새로운 대한민국과 정치와 경제를 걱정했으리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정치도 경제도 진정한 섭수절복을 바르게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불교에서는 섭수(攝受)란 바른 법을 구하는 것으로 상대방이 잘못된 행동을 하더라도 수용해서 정법(正法)에 들어 수행하도록 인도하는 화도법(化導法)이다. 반면에 절복(折伏)이란 잘못된 것을 꺽어서 굴복시킨다는 뜻이지만 섭수절복은 서로 다르게 보는 것 보다는 잘못된 것을 인식시켜서 받아드리게 하여 같이 동반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와 같이 지금은 불교의 수행도 부처님의 가르침이 곧 신앙의 대상임을 인식하고 수행하는 것이 가장 빠르게 성불의 길에 들 수 있다는 것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수행 방법에 대해서 자신이 수행하는 방법만을 주장하여 논쟁하고 있다면 부처님의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로 불교를 혼란스럽게 하여 기복적 신앙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변해야 한다. 종교인들도 정치인들도 모두 국가와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은혜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자면 특히 불교인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르게 알아서 수행해야 할 것이며, 정치인들은 직업정치인이 아닌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진정한 봉사정신으로 여법한 길이 무엇인가를 깊이 고뇌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제는 섭수절복을 불교의 용어에서 보듯이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는 아량을 베풀 때 나도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것이며, 남의 허물을 들추어내는 것보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무량의경(無量義經) 설법품(說法品)에서, “선남자 자아도량 보리수하 단좌육년 득성 아뇩다라삼보리 이불안관 일체제법 불가선설 소이자하 지제중생 성욕부동 성욕부동 종종설법 종종설법 이방편력 사십여년 미현진실 시고중생 득도차별 부득질성 무상보리”(善男者 自我道場菩提樹下端坐六年得成阿뇩多羅三菩提以佛眼觀一切諸法不可宣說所以者何知諸衆生性欲不同性欲不同種種說法種種說法以方便力四十餘年未顯眞實是故衆生得道差別不得疾成無上菩提)

“선남자야 내가 일찍이 도량 보리수 아래에 앉아서 육년만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룩하여 얻었느니라. 부처님의 눈으로 일체의 모든 법을 관하였으되 선설하지 않았노라. 그것은 모든 중생의 성품과 욕망이 같지 아니함을 알았음이며, 성품과 욕망이 같지 아니함으로 가지가지로 법을 설함이니라. 가지가지의 법을 설하되 방편력으로써 설하였으니 사십여년에 아직 진실을 나타내지 아니하였노라. 이런고로 중생이 도를 얻음에도 차별이 있어 속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룩하지 못함이니라”

아야구린 등 다섯 비구는 소승수행자들이기 때문에 이들을 위하여 처음에는 아함경(阿含經)에서 사제법문을 설하신 것이다. 사제법문(四諦法門)은 고제(苦諦), 집제(集諦), 멸제(滅諦), 도제(道諦)다. 고제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괴로운 일이며, 집제는 마음이 미혹해서 생겨나는 괴로운 것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고, 하나에 집착해 있으면 결코 편안하지 못하니까 이렇게 집착하고 있는 마음의 고통을 없애는 것이 멸제이며, 마음의 미혹을 없애게 하는 수단과 방법이 도제라는 것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 아함경에서 사제법을 설하실 때도 모든 법은 본래부터 공적하지만 순간순간에 나고 멸한다고 설하시고 있다.

“공적하다”는 이 세상에 있는 사물은 제 각기 다른 성품과 욕망을 가지고 있지만 그 근본이 되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것은 하나의 큰 힘이 점차로 나타나서 갖가지의 사물이 생성되기 때문이며,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순간순간마다 생기고 없어지기 때문에 나고 없어지는 것이 지속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지위가 높다고 해서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면 물러나야 하고 새로운 사람이 그 자리에 앉게 되는 것과 같은 뜻이다.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을 위해서 사제법과 십이인연법(十二因緣法)을 설하시고 보살을 위해서는 육바라밀을 설 하시면서도 모든 법은 공적하지만 그 모습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쉼 없이 변하고 없어진다고 설하신 것이다.

모든 생명 있는 것은 과거의 인과로 지은 업으로 인해서 현재의 괴로움을 받게 되고, 또 현재 지어지는 업으로 인해서 미래의 고통을 초래하게 되는데 이것을 윤회(輪廻)라 한다. 모든 중생은 윤회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윤회의 굴레를 벗어나서 영원한 생명을 얻어서 안온락(安穩樂)을 얻기를 부처님께서는 간절하게 바라시는 것이다. 부처님으로부터 중생들이 사제법을 듣고 자신만을 위해서 수행하는 성문의 경계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므로 더 깊은 십이인연법과 육바라밀을 설하신 것이다. 모든 사물은 순간순간마다 변하지만 그러나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부처님의 지혜인 일불승(一佛乘)으로 절대적 유일신인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이다. 그 외의 경전은 이 법을 설하시고자 방편으로 설하신 것임으로 방편으로 분별해 놓으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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