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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대구논단

생업(生業)의 비애(悲哀)

기사전송 2017-02-26, 21: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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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윤 시인
더 이상 ‘시인’은 직업으로서의 당위성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가장 안정적인 시인의 직업은 교직이나 공무에 종사하는 이들이라고 한다. 시인의 직업이라는 말은 한마디로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혹자는 시인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서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 현격하게 줄어들었기 때문에 생업으로서의 존재가치는 거의 사라진지 오래라고 한다. 좀 더 사실적으로 묘사해보면 시를 쓸 수 있는 공간은 예전보다 더 늘어났다. 온라인이나 새롭게 발간되는 문예지들도 시인의 수만큼이나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증가하였고, 특히 블로그를 비롯한 SNS를 통해 개인의 글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든지 글을 올릴 수도 있음을 감안하면 글을 발표할 기회가 부족하다는 것으로는 핑계가 부족하다.

문제는 생존(生存)이다. 생존을 위한 생계로서 문학은 턱없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80년대만 해도 시집 선물을 주고받는 건 설레는 일이었다. 이성에게 마음을 건네는 소품으로 그만한 것도 드물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90년대로 접어들면서 많은 상황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인터넷과 함께 핸드폰이 본격적으로 상용화되기 시작했고, 문자 전송에 길들여지면서 실시간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에 시집처럼 그 혹은 그녀의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서 몇 번을 곱씹어서 읽어보는 일이 번거로워졌다.

흔히 ‘시인은 배가 고프다’라고 해서 문학 지망생들이 국어국문학과를 비롯한 관련학과로 진학을 하려 하면 부모님은 필사적으로 만류했다. 물론 그런 환경으로부터 필자도 자유롭지 못했던 탓에 엉뚱하게도 경영학을 전공하게 되었지만, 크게 후회가 되지 않는 걸 보면 어느 정도는 적성과 그리 멀지도 않았나보다. 하긴 경영학도 궁극적으로는 인문학과 동떨어진 학문이 아니어서 그럴 수도 있었으리라. 학교를 졸업하고 금융기관에 취업을 했지만, 조직생활에 적응하기 힘든 모난 성격 탓인지 어떻게든 그만 둘 빌미(?)를 찾던 차에 아는 교수님의 소개로 중소기업 대표를 만나 그와 의기투합해서 회사를 키우는 재미가 여간 즐겁지 않았다. 특히 새로운 기획안과 제품 개발 혹은 직원들의 복리후생과 관련한 계획을 세우느라 모두들 퇴근한 텅 빈 사무실에서 혼자 하얗게 새우던 그 밤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요즘은 최저시급을 비롯한 탄력적 근로시간제 등으로 노동자와 사용자간의 골이 깊어만 가는데 사실 안타깝기 그지없다. 열심히 일하는 데 알아봐 주지 못하는 사용자와 한 방울이 땀이라도 손해 보지 않으려는 근로자가 어찌 조직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보면 직업을 선택하는 기준으로 크게 두 가지 정도로 나누어 보면, 그 하나는 당연히 보수가 될 것이고 나머지 한 가지는 그 직장에서 얼마나 오래 재직할 수 있을지 정년보장에 관한 약정이 될 것이다. 정년(停年)은 어찌 보면 현대판 고려장이나 다름없다. 오랜 경력을 바탕으로 축적되어온 능력이 일정 나이가 되면 버려 지거나 단순노동에 재취업하는 국가는 미래지향적일 수가 없다. 고령화 사회가 본격적으로 접어든 지는 이미 오래다. 일본 등지에서 어떤 식으로 이를 극복해나가고 있는지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그네들도 그다지 극복된 것 같지도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따라 하기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우리는 우리식대로 모두 지혜를 모아야 하지 않을까. 과연 정년나이를 해마다 줄여 나가는 단순한 산술적 계산방식으로 청년 실업률이 줄어들 수 있을까? 정년이 보장된 공무원과 공사기업 등의 취업 준비생이 해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가는 건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고시원마다 밝힌 불이 하나 둘 꺼지고 그들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유망한 중소기업으로 발걸음을 옮길 때 비로소 나라경제는 균형을 이룰 수 있다. 국가라는 버스를 타고 미래로 향하는데, 매번 만나는 커브길마다 무리하게 한쪽으로 쏠리게 되면 위험하다. 한 나라의 미래의 척도는 다양한 직업군이 아닐까.

생업(生業)은 살아가기 위해서 하는 일이다. 어떤 직업을 가지든 생계를 위한 보수를 고민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그것이 전부여서는 안 된다. 속된 말로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마다하지 않고 할 수 있다면 어떻게든 돈이라는 것을 벌게 되어 있다. 극단적으로 남들을 속이고 힘들게 하고 갈취하는 일조차 마다하지 않는다면 어찌 그 돈이 모이지 않겠는가. 다만 그렇게 부를 축적하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중요한 한 가지를 포기해야 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인간으로서의 ‘가치’다. 사람이 아니어도 좋다면 그리 살아도 좋다. 사랑하는 이를 지키고 ‘나’의 가치와 더불어 ‘사회적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직업이 인정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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